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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리카는 요리 연구가이자 푸드코디네이터로 에덴낙원 봉안당에 부모님을 모신 에덴가족입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엄마를 잃고 슬픔에 휩싸였을 때 우연히 엄마의 고향 통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으며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과 기억 속 엄마의 맛을 찾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찾아 떠난 봄
2021년 추운 겨울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폐암 판정을 받으신 어머니는 병과 싸우면서 마지막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건강하시던 아버지도 1년 후,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전신마비가 되어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의 힘든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저는 슬픈 마음에 어리석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처럼 이렇게 선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신 분들에게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실까?’
그러던 어느 날, 프로젝트가 생겨 어머니의 고향 외갓집이 있던 통영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통영 출신, 아버지는 신의주 출신으로 두 분의 고향은 참 멀고도 먼 길입니다. 어머니의 고향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아직 찬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붉은 동백이 탐스럽게 피어있던 통영의 바닷가는 푸근함이 느껴졌고 전 부모님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통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맛을 따라 할 순 없어도’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요즘 1인 세대가 늘어나고 조상이나 뿌리에 대해, 아니 가까운 내 형제, 자매까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우리는 늘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밀키트가 쏟아져 나오고 재료 손질부터 정성껏 준비하던 요리는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혼밥과 배달식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엄마 밥상. 그 앞에서 동생들과 도란도란 함께하던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집밥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책을 쓰는 동안 저는 부모님 세대를 넘어 조부모님의 세대까지 그 분들의 생활과 신앙이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내 뿌리에 대해 생각하는 첫 계기가 된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모태신앙으로 자라왔지만 익숙한 듯, 당연한 듯 생각했던 신앙생활에 대해 되짚어보면서 오래전 북한에서 한경직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아버지와
무속신앙이 많았던 통영 바닷가 마을에서 새벽마다 예배당에서 기도하신 외할머니 아래 성장하신 어머니, 그런 두 분이 만나 가정을 꾸리고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며 늘 교회 맨 앞자리에서 예배드리셨던
두 분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일본 속담처럼 좋은
신앙의 본이 되어주신 두 분, 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심을 어리석게도 저는
두 분이 돌아가신 뒤에야 깨닫고 있습니다.
낯선 곳, 익숙한 밥상
통영의 한 식당에서 주문한 백반을 먹으며 마치 어머니의 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젓갈을 많이 넣은 김치 맛도, 생선구이에 나물과 멸치볶음, 싱싱하면서도 부드러운 초록 파래무침, 식당 이모들과 나누는 대화 속 사투리까지 모든 것이 친숙했습니다. 외가 식구들에게 늘 듣던 말투였습니다. 어른이 되어 찾은 엄마의 고향 통영은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 밥상은 제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여기로 보내셨구나.’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사는 삶
긴 시간 외국에 나가 살면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아이 키우기 바쁘다는
이유로 마음만큼 동생들을 챙기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준비한 책이
출판 되면서 가족들의 기도와 지지가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호주에 있는
여동생은 때로는 언니처럼 좋은 상담자가 되어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며 조언해
주고, 남동생은 출판기념회 등 여러 행사에 시간을 내어 참석해주고 솔선수범해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런던에서 공부 중인 아들은 멀리서 엄마의 한국 생활을
위해 기도해 주고 있습니다. 엄마를 떠올리며 쓰게 된 이 책을 통해 저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 주신 소중한 내 형제, 내 가족과 화목하게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육으로 맺어진 가족뿐
아니라 신앙의 울타리 안에 맺어진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과의 교제를 통해서도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습니다.
에덴가든을 거닐며
어머니를 안식처에 모신 날은 추운 겨울이었지만 봄 햇살처럼 따뜻한 햇볕에 에덴가든이 반짝거리며 빛나던 날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어머니와의 이별에 눈에는 슬픔의 눈물이 맺혔지만 저희 삼남매는 ‘이렇게 좋은 날씨에 어머니가 하나님 품에 안기시고, 에덴처럼 아름다운 곳에 어머니를 모시게 되니 참 감사하다.’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에덴낙원을 찾을 때마다 혼자 조용히 에덴가든을 걸으며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 ‘라고 당부하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어머니께 대답을 합니다. “엄마, 그 맛을 따라 할 순
없어도 저도 엄마의 따스한 사랑이 담긴 음식처럼 이 세상에 사랑과 온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겠습니다.”
그 맛을 따라 할 순 없어도 리카 지음
리카의 요리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가장 행복한 음식은 추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 속 엄마의 맛을 떠올리며 요리 연구가 리카가 재해석한 따뜻한 맛을 에세이와 최초 공개하는 레시피로 담았다.
사골국의 온기
아침에 동네 상가 안 오래된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잠시 멈춰 섰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끓여 주시던 사골국 냄새가 났습니다.엄마는 찬물에 사골을 담가 핏물을 빼고 큰 들통에 넣어 몇 시간을 끓였습니다. 국물에 떠오른 기름을 걷어 내고, 고기도 삶아서 조물조물 무쳐서 넣어 주셨습니다. 그 진국에 송송 썬 파를 넣고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잘 익은 김치, 따뜻한 밥과 함께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든든하고 맛있었습니다. 엄마는 사골국을 자주 끓였습니다. “많이 먹어라.” 제 국그릇 가득 사골국을 담으며 말씀하시던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엄마는 사골국을 반 정도 먹으면 국물이 식었다며 김이 폴폴 올라오는 새 국물을 제 국그릇에 부어주셨습니다. 이 사골국에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해 졌습니다.
가족 구성원 수가 줄어들면서 큰 들통으로 요리할 일이 점점 없어집니다. 들통을 정리할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 그대로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올겨울에는 꼭 한번은 집에서 큰 들통에 사골국을 끓여 먹으려 합니다. 제가 끓인 사골국에서도 정성과 사랑으로 끓였던 우리 엄마 사골국 맛이 날지 궁금합니다.
아침의 계란말이
피난길에 밥을 못 먹어 고생했다던 아빠의 말이 떠오릅니다. 한국만큼 “밥은 드셨어요?”, “밥은 먹고 다녀라”, “밥 한번 먹자”라는 밥 관련 안부 인사가 많은 곳도 없을 겁니다. 먹을 것이 귀한 시대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밥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저희 엄마는 저희 남매가 학생일 때 늘 아침밥을 먹여서 학교에 보내셨습니다.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과 알맞게 익은 김치, 된장찌개, 노릇하게 구운 생선 한 마리, 제철 밑반찬.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담긴 사랑과 정성을 먹으면서 성장했고 그게 참 큰 행복이었다는 걸 이제야 느낍니다. 이제 다시는 엄마가 차려 주신 밥을 먹지 못하게 되니 얼마나 엄마 밥이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쪽파를 송송 썰어 넣고 노릇하게 구운 자국 남은 큼직한 엄마의 계란말이가 눈앞에 그려집니다.
엄마를 닮아 저도 아들이 집에 있을 때면 꼭 찌개와 국을
끓이고 계란말이라도 합니다. 당근과 버섯, 파를 다져 넣은 계란물을 사각 팬에
부어 노랗게 말아 냅니다. ‘계란말이라도’라고 쉽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거기에는
영양 가득한 계란으로 든든한 집밥을 만들겠다는 속뜻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따끈한 밥을 차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힘이 되어 주는지 가족을 이어주는 집밥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리카 요리 연구가
일본홈메이드협회 정식제과사범, 일본 푸드라이센스국제협회(FBLJ) 정식 일본요리 연구가이자 푸드 코디네이터. 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 살면서 현지의 문화와 음식을 접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요리 연구가, F&B 브랜드를 총괄 기획하는 푸드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역 곳곳의 음식과 전통문화를 재해석하여 전 세계에 소개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