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교회에 다닐 때에는 성경책을 늘 손에 들고 다니며 성경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각자가 성경을 몇 번 읽었는지 서로 나누기도 했고, 교회에서는 이를 격려하며 시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필자도 성경을 한 번 완독하면 원하는 선물을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모두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성경을 읽으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록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수고했다며 부모님께서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큰 과자 종합선물세트를 사주셨고, 그때 느꼈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그때 느꼈던 성경 완독의 기쁨은 시간이 흐른 후 이스라엘의 심하트 토라 전통을 이해하는 중요한 감정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경 완독의 기쁨을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날을 심하트 토라(Simchat Torah)라고 합니다.
기쁨의 절기, 비극의 날이 되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 전체를 54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안식일마다 순서대로 한 부분씩 읽는데, 이를 파라샤트 하샤부아(Parashat HaShavua)라고 부릅니다. 이 연중 낭독이 모두 끝나는 시점이 바로 심하트 토라이며, 말 그대로 ‘토라의 기쁨’을 뜻합니다. 모세오경의 일년 완독이 마무리되는 순간을 공동체가 함께 기뻐하는 날입니다.
텔아비브 시청 광장에서 열린 심하트 토라 축제 출처 : wikipedia
이날 유대인들은 토라 낭독과 함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말씀을 완독한 기쁨을 나눕니다. 특히 ‘하카폿’이라는 행사가 열리는데, 이는 심하트 토라의 가장 상징적인 의식입니다. 회당에서는 토라 보관함을 열어 모든 토라 두루마리를 꺼내고, 사람들은 두루마리를 품에 안은 채 회당의 단상 주변을 빙글빙글 돕니다. 이러한 회전을 가리켜, 둘러 도는 것을 뜻하는 ‘하카폿’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일곱 바퀴를 도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 행사에서는 몇 시간 동안이나 말씀 두루마리를 서로 안아 보고, 입을 맞추며 기쁨을 표현합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토라 두루마리를 안아 보는 기회를 가지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은 거리로 나와 춤을 추기도 합니다.
요크네암 일릿에서 열린 심하트 토라 축제 출처 : wikipedia
특별히 이날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안식일의 회당 예식에서 성경을 낭독할 기회는 보통 어른들에게만 주어지지만, 이날만큼은 아이들 모두가 단상으로 불려 올라옵니다. 어른들은 기도할 때 머리에 두르는 큰 탈릿(기도 숄)을 아이들 위에 넓게 펼쳐 덮어 주고, 그 아래에서 아이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합니다. 축복이 끝나면 아이들은 종이로 만든 심하트 토라 깃발을 흔들며 어른들이 춤추는 행렬을 따라다닙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릿을 던져 주거나 나누어 주며, 성경 완독의 달콤한 기쁨을 함께 맛보도록 합니다. 예식을 마친 어른들은 회당에서의 기도를 마무리한 뒤 풍성한 음식을 차려 놓고 식탁을 나누며 서로를 축복합니다.
유대력은 한국의 음력처럼 태음태양력 체계를 따르기 때문에 매년 절기의 날짜가 달라집니다. 2025년의 경우 심하트 토라는 10월 13일 저녁부터 14일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2025년을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 이 절기는 기쁨보다 먼저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는 2023년에 일어난 ‘심하트 토라 학살(Simchat Torah Massacre)’ 때문입니다. 2023년 심하트 토라는 10월 7일이었는데, 바로 그날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이스라엘 남부에 대한 대규모 침투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사망하고 250명 이상이 인질로 끌려가면서 유대인들은 이날을 심하트 토라 학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사에 따르면 하마스는 2023년 5월 군사회의에서 공격 날짜를 논의하면서 9월의 욤키푸르(대속죄일)와 심하트 토라 중 하나를 선택하려 했고, 최종적으로 심하트 토라를 공격일로 정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25년의 심하트 토라는 앞서 언급했듯 10월 13일~14일에 해당했지만, 유대인들에게 10월 7일은 여전히 깊은 아픔의 날짜로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2025년의 10월 7일은 초막절과 겹치면서, 절기의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애도의 정서를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3일에는 생존해 있던 인질 20명이 일괄 송환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 사이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수만 명의 가자 주민들이 희생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결국 피해자만 남기는 비극임을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각자의 삶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현실 속에서 깊은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다시 심하트 토라의 기쁨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 출처 : free.messianicbible.com
기쁨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는 한 가지 작은 논쟁이 제기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날짜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스라엘의 절기는 유대력을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그레고리력으로 보면 매년 날짜가 조금씩 달라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10월 7일을 침투 공격이 있었던 애도의 날로 기억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이 사건이 심하트 토라 절기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레고리력의 10월 7일을 중심에 두기도 하고, 유대력에 따라 심하트 토라 시기를 기념해야 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한 현지 인터뷰에서 한 이스라엘 여성은 “이번 공격이 샤밧(안식일)이자 심하트 토라라는 기쁜 절기에 일어났다는 사실과 분리할 수 없어요. 하마스는 그 기쁨을 영원히 빼앗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절기의 의미와 비극이 얽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매체 ‘이스라엘 하욤’의 한 칼럼니스트는 추모행사의 날짜를 그레고리력으로 정하는 것에 반대하며, “유대 정체성을 위해서는 유대력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025년의 심하트 토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유례없는 날이었습니다. 가장 기쁨이 넘치는 절기에 가장 큰 비극의 기억이 겹쳐졌고, 동시에 인질 귀환이라는 희망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춤추면서 울고, 울면서 춤추는” 복합적 감정 속에서 집단적 슬픔과 집단적 희망을 동시에 경험하였습니다. 한 유족의 말처럼 “우리 모두 슬퍼하지만, 이스라엘 민족, 유대 민족에게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고 하듯,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 시대에도,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도 공동체를 붙들며 끊임없이 전진해 왔습니다.
상실과 회복,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힘
이러한 공동체적 회복력(resilience)은 노년생활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스라엘 사회가 비극과 희망을 동시에 경험하면서도 공동체를 중심으로 균형을 회복해 왔듯, 노년기 역시 상실과 기쁨이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신체적·사회적 상실이 찾아오지만, 관계와 의미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트라우마 속에서도 회복을 시도하는 방식은, 개인이 노년기에 겪는 상실과 회복의 과정과 구조적으로 유사성을 지닙니다. 무엇보다 공동체의 연대감은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노년기의 고립은 삶의 만족도를 가장 빠르게 낮추는 요소이지만, 친구와 가족, 이웃, 신앙 공동체로 구성된 관계망은 위기의 순간마다 다시 일어설 힘을 제공합니다. 이스라엘 사회가 깊은 슬픔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고 춤추었던 것처럼, 노년기 개인 또한 ‘함께하는 힘’ 속에서 회복과 생동감을 되찾습니다.
아울러 노년기는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심하트 토라에서 기쁨과 비극이 겹쳐지며 새로운 의미가 형성되었던 것처럼, 노년 역시 단순한 쇠퇴의 시간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다시 해석하는 단계가 됩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무엇이 자신을 이끌어 왔는지를 재정의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새롭게 설계하는 능력은 노년기의 중요한 자원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 희망을 지속하게 하는 문화적·신앙적 토대 역시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수천 년의 역사적 고난 속에서도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야기의 힘, 곧 자신을 둘러싼 신앙적·문화적 내러티브가 존재했습니다. 노년기 또한 자신을 지탱하는 이야기를 회복할 때 삶의 만족도와 정신적 안정이 크게 높아집니다. 신앙, 전통, 가족사, 혹은 개인이 품어 온 사명감은 노년의 삶을 견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절기의 빛을 밝히는 유대인의 촛불 출처 : wikipedia
마지막으로 세대 간의 연결은 노년생활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비극의 순간에도 이스라엘 공동체가 서로를 붙들었던 것처럼, 노년기에도 세대 간 상호작용은 의미와 정서적 안정감을 크게 강화합니다. 젊은 세대와의 관계는 노년층에게는 활력과 목적을 제공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정체성과 지혜의 원천을 제공하며, 양방향의 생명력을 만들어 냅니다.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회복력은 노년의 삶을 비추는 또 하나의 빛이 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