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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2025-11-27

이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⑮

퐁텐블로파 -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매], 루브르 미술관(Louvre Museum)


영화보다 극적인 사건


2025년 10월 19일 프랑스 파리 한복판 루브르(Louvre Museum)에서 영화 같은 설정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왕실 보석 도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었다. 전 세계 시민들은 2019년 파리 노트르담 화재만큼이나 관심을 갖고 사건의 추이를 주목했다. 사라진 거대한 다이아몬드들은 아마 잘게 부수어져 암시장에서 팔리고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이미지 출처 : www.deluxefrance.com


일주일 후인 10월 25일, 4인조 범인 중 2명이 검거되었고 이어 전체 루브르 직원의 디지털 기기에 디지털 포렌식을 시행하여 한 명의 보안 요원이 내부 정보를 알려주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지만, 아직까지도 잃어버린 보석들의 소재에 관한 공식 발표는 없다. 이런 영화적 상상과 실제의 긴장 사이에서, 오늘은 루브르의 알쏭달쏭하고 수수께끼 같은 작품인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매(Portrait of Gabrielle d'Estrees with Her Sister)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충격적인 장면 뒤에 숨겨진 궁정의 비밀


루브르 박물관에는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초상화들이 꽤 전시되어 있다. 작자 미상의 작품인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매도 그중 하나이다. 화면 왼쪽의 한 여성이 본인과 닮은 다른 여성의 젖꼭지를 손끝으로 집고 있는 모습은 강한 충격을 주며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현재의 일반적인 시선에서 이 작품은 동성애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읽힐 수도 있다. (지금도 이 그림이 동성애를 표현하는 작품이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자세한 배경을 알게 되면 동성애와는 전혀 관계없는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매, 작자 미상   이미지 출처 : wikipedia.com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 부르봉 왕실(Maison de Bourbon)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해주는 작품이다. 제작 시기가 종교전쟁으로 혼란스럽던 16세기 후반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동성애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동성 간의 사랑은 당시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보수적인 시기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매는 누구이며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포즈로 그려질 수 있었을까?


임신을 암시하는 상징들


이 그림은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 1571-1599)의 임신을 공표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되어 왔다. 가브리엘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시작이 된 앙리 4세(Henri IV, 1553-1610)가 가장 사랑했던 정부였다. 그림의 오른쪽 인물이 가브리엘 데스트레, 왼쪽은 그의 여동생 줄리엔(Julienne-Hippolyte-Joséphine, 1575-1667)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의 화가는 실명이 확인되지 않았고 당시 퐁텐블로 학파의 일원으로만 알려져 있어 구체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화면 왼쪽 인물의 해석의 중심이 되는 손짓은 언니 가브리엘의 임신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는 상징적 행동으로 여겨진다. 화면 뒤편에서 바느질을 하는 여인은 아마도 배내옷을 정리하는 모습일 것이다.


앙리 4세와 가브리엘, 그리고 비극의 그림자


앙리 4세는 상당히 이색적인 이력을 가진 프랑스의 왕이다. 신구교도의 충돌 속에서 위그노의 우두머리였던 그는 결국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조언을 받아들여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개종 이듬해 대관식을 갖게 된 앙리 4세는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정식 결혼을 하기 위해 정략결혼 관계였던 왕비 마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 1553-1615)와의 이혼을 교황청에 정식 청원한다.



앙리 4세의 초상화  이미지 출처 : wikipedia


하지만 앙리 4세의 정식 왕위 등극이 다가오던 때, 가브리엘 데스트레는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이미 3명의 자녀를 낳아주었고 넷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급사하게 된 것이다. 독살설을 포함한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명확한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진실은 역사 속에 가려져 있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루브르에서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녀들 작품 앞에 잠시 서 보시기를 권한다.


퐁텐블로 학파의 미학적 배경


이 그림의 양식적 배경으로 알려진 퐁텐블로 학파(School of Fontainebleau)는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후기에 파리 근교 퐁텐블로 궁전을 중심으로 발흥하였다.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Flanders, 벨기에 북부 지역) 출신의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프랑스 궁정 특유의 매너리즘 양식을 만들어냈다.



퐁텐블로 성    이미지 출처 : www.chateaudefontainebleau.fr

퐁텐블로 학파는 두 시기로 나뉘는데, 첫 번째 시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흠모하고 그의 말년을 곁에서 보살핀 프랑수아 1세(François I, 1494-1547)의 적극적 후원으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출신 거장들은 궁전의 벽화, 장식,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화려하고 감각적인 미술 세계를 보여주었다. 우아하게 늘어진 인물과 신화적 주제가 주로 등장한 시기였다.


전쟁 이후 다시 피어난 예술의 중심지


36년간 이어진 종교전쟁으로 침체되었던 퐁텐블로 학파는 전쟁 이후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이 시기는 ‘퐁텐블로파의 두 번째 시기’로 불리며, 주로 플랑드르 출신 화가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의 성취를 계승하면서도 보다 환상적이고 장식적이며, 인물의 비례를 과장한 매너리즘적 특징을 강화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냈다. 화려한 색채와 복잡한 구성은 1기와 구별되는 대표적 특징이다.

퐁텐블로성은 후일 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했던 거처이자 퇴위 문서에 서명한 역사적 장소이다. 조세핀 황후와 함께 거주했던 곳으로, 나폴레옹이 수집한 상당한 미술품들을 지금도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