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문의031-645-9191

에덴 미디어

컬처
2020-09-24

그곳에 가면 #5 빛, 바람, 물의 건축가



빛과 바람과 물은 공간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채광, 환기, 습도 같은 기능적 의미가 아니다. 공간에 자연을 들여,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자연과 함께 살도록 하는 것. 빛과 바람과 물은 공기와 함께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도록 돕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요소를 활용해 사람에게 보다 유익한 공간을 만든 건축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쳐 있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기대하며.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

루이스 폴센*의 조명은 아무리 낡은 공간이라도 금새 품위 있고 아름답게 바꾸는 마력을 갖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이 브랜드의 빼어난 디자인과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조명에 열광한다. 그런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인공 조명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빛이 있다. 바로 자연광이다. 신이 인류에게 준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바로 빛이 아닐까? 태양의 흐름에 따라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절기에 따라 변화무쌍함을 만들며 인간의 일상을 규정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이스 칸Louis Kahn은 자연광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 안에 들이고자 했던 건축 거장이다.


* 1874년 설립한 덴마크 조명 제조업체. PH시리즈 조명으로 유명하다.


1901년 에스토니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했다. 이런 배경 때문일까? 루이스 칸은 비록 미국에서 자라 교육을 받았지만, 유럽의 고전 건축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그는 영감 가득한 사색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빛을 창의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공간은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빛에 의해 성격이 규명되고, 인지되기에 그는 초기 설계 단계부터 자연광을 받아들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이스 칸은 측광창, 고측창뿐 아니라 스스로 고안한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창을 건축에 도입했으며, 특별히 바닥에서부터 지붕까지 이어지는 아트리움atrium을 즐겨 사용했다.



루이스 칸 자화상 ⓒlouiskahn.org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소크 생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를 꼽을 수 있다. 이 건물은 일반적인 연구소와 전혀 다른 외관 및 내부를 갖고 있다. 특이한 형태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사방을 향해 뚫린 창을 지니고 있으며, 정중앙의 텅 빈 광장에는 마치 바다로 흐르는 강물처럼 가운데 수로가 자리하고 있다. 루이스 칸은 1965년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어낸 노벨상 수상자 조너스 에드워드 소크Jonas Edward Salk 박사의 의뢰로 연구소를 디자인했는데 어느 층에서나 빛을 들이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삼각형 형태의 구조에 창을 바깥으로 돌출시켰다. 층고는 무려 3m에 이르는데 이는 창의력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건축주 소크 박사의 의뢰를 받아들인 것이다.** 중심 공간인 광장에 나무 한 그루 없이 모두 비워낸 점도 눈길을 끄는데 이 또한 하루 종일 사색하며 빛을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다. 이 덕분인지 몰라도 이 연구소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다섯 명이나 나왔다.

**실제로 2007년 미네소타 대학교 칼슨경영대학원의 조앤 마이어스레비Joan Meyers-Levy 교수는 ‘천장 높이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사람들은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각을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따라 층고가 창의적인 일에 고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크 생물학 연구소 외관. 빛을 들이기 위해 창들이 사방으로 나 있다.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소크 생물학 연구소 중앙 광장. 바다로 시선을 잇는 수로가 광장을 관통한다.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킴벨 미술관Kimbell Art Museum’ 역시 루이스 칸의 빛을 구조에 잘 적용한 건물이다. 당시 미술관의 전형을 탈피한 이 공간은 아치 지붕을 가진 롤 케이크roll cake 형태의 개별 건물이 병렬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특징. 각 건물동은 모두 천창을 통해 자연광을 받아 들이는데, 집에서 편안하게 명화를 감상하는 듯한 자연스럽고 영감 가득한 분위기를 연출해 크게 각광을 받았다.

킴벨 미술관 외관. 롤케이크 모양의 아치형 건물이 병렬로 나열돼 있다. ⓒKimbellart.org

킴벨 미술관 내부. 천청에서 자연광이 전시장을 비춘다. ⓒKimbellart.org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
제주 수·풍·석 박물관으로 유명한 이타미 준(한국이름 유동룡)은 대표적인 재일교포 건축가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는 물, 바람 그리고 돌을 활용한 그의 건축 세계를 잘 그려냈다.

 
이타미 준 자화상 ⓒ국립현대미술관

이타미 준을 ‘바람의 건축가’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가 오래도록 견지한 독창적인 건축관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그는 대지를 관통하는 바람의 흐름을 살폈고, 바람이 건물을 지나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지형과 바람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를 건축물에 이어내 자연과 공간과 사람이 한 곡의 노래를 하모니를 이뤄 부르듯 완성도를 높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풍風 박물관’***이다.

***정지연 편집장의 '그곳에 가면 #2 우중 산책'편은 풍 박물관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타미 준이 말하는 바람은 모든 것의 근원인 자연을 대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2014년에 열렸던 그의 회고전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에서도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건축에 관한 다각도의 해석이 이뤄진 바 있다.



이타미 준의 건축세계를 조망한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그는 말년에 제주에 안착했는데 이곳에서 제2의 건축 인생을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이타미 준이 남긴 많은 건축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을 품었는데, 이중 ‘방주교회’는 이름 그대로 364일간 이어졌던 대홍수의 시대를 버텨낸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바닥에 고인 물에 투영된 교회는 마치 바람의 흐름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건축은 이타미 준이 후대에 남긴 큰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을 품은 ‘방주교회’ ⓒ국립현대미술관

물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콘크리트를 활용한 미니멀리즘 건축물을 선보였다. 재료에 충실한 특유의 건축 기법은 그를 노출 콘크리트의 대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육중한 콘크리트 질감에 눈이 빼앗겨 놓쳐서는 안될 포인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연이다. 실제로 안도 타다오의 건축 세계는 빛, 물, 바람 등 자연의 요소로 가득하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콘크리트는 시간,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맞물려 다채롭고 풍부한 공간감을 제공한다. 특히 그의 교회 시리즈는 그가 건축에 자연을 들이고자 얼마나 애를 썼는지 보여준다.

안도 타다오 자화상 ⓒmuseum san

그의 대표작 ‘물의 교회Chapel on the water’는 일본 홋카이도 섬의 개인 소유 예배당으로 1988년 완공됐다. 역시나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완성한 이 작품은 기하학적 구조로 극도의 절제미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교회 앞에 자리한 인공호수다. 일본 전통 정원의 조원수법을 차용해 만든 이 호수는 미닫이 구조의 유리벽을 통해 자연의 변화를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 현대식 차경으로 유명하다.

**** 물의 교회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는 말씀을 실현할 심플한 건물을 원했다.


봄을 맞은 ‘물의 교회’ ⓒlikejp.com

교회 안에 들어선 방문객 혹은 예배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잔잔한 물살과 호수 중앙의 십자가. 건축가는 이들이 고요히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물에 비친 자연의 모습은 우리를 태초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겨울이 한창인 ‘물의 교회’ ⓒlikejp.com

대대로 빛, 바람, 물은 수많은 건축가들의 연구 주제이자 영감의 원천, 실험의 소재가 되었다. 사람과 자연을 잇는 건축. 어쩌면 그것은 건축계에 남겨진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정지연 <브리크brique> 편집장

브리크컴퍼니 설립자, 공간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브리크brique>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정치학사를,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를 각각 취득했다. 방송 구성작가, 신문기자, 뉴미디어연구소장 등을 거쳐 2017년 6월 브리크컴퍼니를 세웠다. 온오프라인으로 발행하는 <브리크brique>는 도시와 공간, 사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축은 기술이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 삶 그 자체임을 깨달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