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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연금술사, 셰익스피어
① 일상을 다시 발명한 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우리에게 최고의 극작가로 기억되지만 그를 단지 연극의 역사로만 남기기에는 그의 유산은 너무도 광범위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와 표현 중 상당수가 셰익스피어가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 시킨 말이라는 점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그가 남긴 문학적 자취는 무대 위의 인물들의 명대사에 머물지 않고 현대 영어의 구조, 감정 표현, 사유 방식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미지 출처 : pexels
세계적인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David Crystal)은 “셰익스피어는 영어에 2천 개가 넘는 단어를 기여했다. 그 단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영어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 말한다. 이는 단어의 양적 기여를 넘어, 셰익스피어가 영어의 표현력과 정서적 깊이를 본질적으로 확장시켰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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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의 기원과 최초 사용을 가장 체계적으로 기록한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역시 수많은 단어의 최초 문헌 사용 예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한다. 그는 단어의 품사를 바꾸고 의미를 확장하며 감정과 철학을 말로 조직해냈다. 이는 단지 문장력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생태계를 바꾸는 수준의 창조였다고 볼 수 있다.
단어 너머의 감정과 개념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단어들은 오늘날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 당시에 그는 존재하지 않던 감정과 개념을 말로 형상화한 선구자였다. 다음의 단어들은 그렇게 그를 통해 탄생한 말들이다.
• lonely (외로운) – Coriolanus 《코리올라누스》
• eyeball (안구) – A Midsummer Night’s Dream 《한여름 밤의 꿈》
• addiction (중독) – Othello 《오셀로》
• fashionable (유행을 따르는) – Troilus and Cressida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 swagger (으스대다) – Henry V 《헨리 5세》
• bedroom (침실) – A Midsummer Night’s Dream 《한여름 밤의 꿈》
• longevity (장수) – As You Like It 《뜻대로 하세요》
• eventful (사건 많은) – As You Like It 《뜻대로 하세요》
• gloomy (우울한) – Titus Andronicus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 assassination (암살) – Macbeth 《맥베스》
말이 관용이 된 순간들
셰익스피어는 단어만 만든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문장을 관용 어구로 정착 시킨 언어의 리듬 설계자였다. 오늘날에도 영어권 문화 속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 중에는 그가 처음 사용한 구절들이 놀라울 만큼 많다.
• “Break the ice” (서먹한 분위기를 깨다) – The Taming of the Shrew 《말괄량이 길들이기》
• “Green-eyed monster” (질투) – Othello 《오셀로》
• “Wild-goose chase” (헛된 추적) – Romeo and Juliet 《로미오와 줄리엣》
• “Wear one’s heart on one’s sleeve” (감정을 숨기지 않다) – Othello 《오셀로》
• “In a pickle” (곤경에 처하다) – The Tempest 《템페스트》
•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 The Merchant of Venice 《베니스의 상인》
• “Foregone conclusion” (기정사실) – Othello 《오셀로》
이러한 표현들은 단지 극의 대사를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그는 한 문장으로 인물의 감정과 그가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를 함께 설명해냈다.
그랬기에 그의 말과 글은 오래 기억되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단어에서 세계로, 표현에서 철학으로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단어와 표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뿌리는 셰익스피어에게 닿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가 단어를 많이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인간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이전의 영어는 지금처럼 감정이나 생각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고통, 갈망, 혼란, 외로움, 정체성, 사랑, 죽음 같은 복잡한 감정을 처음으로 깊이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덕분에 이후 세대는 감정을 설명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lonely(외로운)”, “addiction(중독)”, “gloomy(우울한)” 같은 단어로 마음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것도,
그가 그러한 감정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 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단어를 조합하고 바꾸는 언어의 실험자였을 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언어로 조형해낸 선구자였다.
셰익스피어는 왜 ‘언어의 연금술사’인가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당대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삶을 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과 질투, 침묵과 죽음, 권력과 몰락, 계절과 시간까지—삶의 거의 모든 측면을 언어로 붙잡고 표현했다.
그의 문장은 멈추지 않고 오늘까지 흐르며 고정된 의미가 아닌 열린 해석의 세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인용되고, 변주되며, 새로운 맥락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는 그의 작품을 읽고 보는 독자와 관객을 단순한 '해석자'가 아니라, 말의 여정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 만들었다.
그가 만든 말은 단순한 문장이나 대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변화시킨 말들이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끝난 문장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이며, 인간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살아 있는 문법이다.
바로 이 점에서 셰익스피어는 진정한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이정선 이라이프 연구원
동국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사와 작품연구를 강의하였다. 숭실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사회복지학 박사를 수료하였으며 초고령사회 보다 의미있는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기 위한 문화예술을 접목한 프로그램과 좋은죽음을 위한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에덴낙원의 기획실장 및 이라이프아카데미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