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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컬처
2022-09-23

마티스의 그림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



미술관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지난 2년여 ‘코비드19’사태는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비슷한 일들이 계속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만은 없다. 미술관에 다시 찾아가겠다는 기대를 갖고 앞으로 찾아가고 싶은 여러 미술관들에 관해 강두필 교수와 함께 공부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마티스 작품들을 한 곳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곳


처음 소개하려는 미술관은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 위치한 BMA(Baltimore Museum of Art)이다. 이 미술관은 존스 홉킨스 대학의 관리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존스 홉킨스 대학 내에 위치하고 있다. 유명한 존스 홉킨스 대학교도 한번 구경할 수 있고 무료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의 작품들을 한곳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볼티모어 미술관을 소개하려면 먼저 프랑스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시기에 대하여 간단히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BMA를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것은 그 시기 파리에서 체류, 여행하던 미국인들의 맹활약 때문이기 때문이다. 마티스의 팬들이라면 당연히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하여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니스 마티스 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그리고 미국의 BMA를 찾는 루트가 자동으로 정해진다. 이곳 BMA는 벨 에포크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클라리벨 콘과 에타 콘 자매(Claribel and Etta Cone)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벨 에포크는 그 시점이 학계에서 완전하게 일치된 것은 아니지만 대략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로 보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 혹은 유럽 사람들이 “아름다웠고, 행복했던 시절”이라 부르던 시기이다. 영국에서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1815-1914)라고 부르는 정치적 평화시기와도 약간은 비슷한 개념과 시기라고 하겠다.


27 rue de Fleurus, 거트루드 스타인, 벽에는 피카소가 그려준 초상화가 걸려있다(1930).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에서 런던을 거쳐 프랑스 파리로 갔던 소설가이며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의 친오빠 레이와 마이클과 함께 파리로 이주하고 종국에는 파리로 집합했던 예술인들의 대모라는 거창한 닉네임을 얻게 된다. 철도 거부였던 유태계 아버지의 유산을 받고 미국 레드클리프 대학과 존슨 홉킨스 대학에서 심리학과 약학의 학위를 갖고 있던 그녀는 파리로 이주 후 ‘27 rue de Fleurus’(룩셈부르크 공원 근처) 아파트를 임대하여 세계 최초의 현대 미술관이라고도 불리는(뉴욕 타임스에서 비유적으로 불렀던) 시타인 살롱을 운영하였다. 상업행위를 하는 살롱은 아니었고 당시 문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어려운 예술가들에게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누구나 참석해 와인을 마시며 작품과 예술과 인생에 대해서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곳의 주요 멤버는 열거하는 순간 악소리가 날 정도로 초호화 메머드급 인사들인데 당시 그들이 모두 신인이었으며 무명 예술가였다는 점이 더 놀라운 일이다.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기욤 아폴리네르, 피카소, 마티스, 조지 브로크, 앙리 루소 등 현대 문학과 미술의 주요 예술인들이다. 그들은 파리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초라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힘겹게 헤쳐나가던 신예들이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들의 초기 작품들을 구입하여 그들에게 용기와 생활비를 지원해 준 사람이었다. 그녀를 만난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클라리벨 콘과 에타 콘 자매도 있었다. 그녀들 역시 부유한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1901년부터 거의 매년 유럽 여행을 다녔다. 파리에서 만나 그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 바로 거트루드 스타인이었던 것이다.


콘 자매의 엄청난 기증 작품들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BMA


스타인 살롱에 자주 출입하던 콘 자매는 거트루드의 조언에 따라 마티스와 피카소 화실 방문 후 초기 작품들을 사 모았고 드가와 마네의 작품들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에타 콘은 마티스와 피카소의 스케치 작품들을 2-3불 정도에 대량 매입하였다. 에타 콘은 마티스의 그림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아마 세계에서 마티스의 작품을 마티스보다 더 많이 소장했던 유일한 개인이었을 것이다. 1929년, 언니인 클라리벨 콘이 사망할 때 유언으로 자신의 소장품들을 고향인 볼티모어의  BMA에 기증하라고 의사를 밝혔고, 동생 에타 콘이 사망하던 1949년에 총 3000여 점에 달하는 자매의 모든 수집품이 BMA에 기증된다. 이 일로 BMA는 개관 초기부터 큰 명성을 얻게 된다.



파리 루 드 라 투어 아파트에 있는 클라리벨 콘과 에타 콘 자매(1926), BMA아카이브


BMA에서 절대 스쳐 지나가면 안 되는 작품 몇 점을 소개하자면 마티스의 1907년작 블루 누드(Blue Nude)와 1935년작 누워있는 큰 누드(Large Reclining Nude)이다. 블루 누드1은 같은 제목의 마티스 말년 가위로 자른 Cut Outs 작품 Blue Nude 2(퐁피두 센터 원본 소장)와 혼돈하기도 하는데 ‘Suvenir de Biskra’라는 제목으로 모로코 여행 중 목격한 기괴한 쇼에서 보았던 여인을 그린 것이다. 발표 당시부터 수년간 사람들로부터 불편하고 기괴하다는 원성을 들었다. 콘 자매가 구입하여 현재 BMA에 전시 되어되어 있으며 입체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원본 그림 중 하나로 유명하다.

마티스의 1907년작 블루 누드(Blue Nude), BMA 소장


누워있는 큰 누드 역시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마티스의 마지막 조수 겸 간병인으로 헌신한 러시아 출신의 화가 겸 모델 리디아(Lydia Delectorskaya)의 누드화이다. 마티스가 수 없이 수정하고 모델의 사이즈를 바꿔가며 수정한 후에 완성한 작품이다. 마티스의 아내 아멜리에는 리디아와 마티스의 관계를 의심하며 말년에 이혼을 요구했고 이후 리디아가 마티스의 사망까지 그의 작품과 간병을 모두 책임지고 수행하였다고 한다. 마티스가 사망하며 리디아에게 남겨준 최종 작품 40여 점은 리디아의 기증으로 현재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마티스의 1935년작 누워있는 큰 누드(Large Reclining Nude), BMA 소장


BMA에 마티스 작품만 전시된 것은 아니지만 마티스를 중심으로 BMA를 소개해 보았다. 피카소나 마네, 모네, 피사로, 르누와르 등 벨 에포크 당시 젊은 작가들의 초기 작품들이 많아서 공부를 하고 방문하면 하루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정원의 조각 공원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모든 관람을 위해서는 시간 조절이 꼭 필요할 것이다. 미술관 내의 거트루드 레스토랑(이름이 정말 어울리는)에서 조각 공원을 바라보며 식사도 가능하다. 참고로 필자는 아직 이 곳을 방문한 적이 없다. 상당히 오랜 기간 마티스 덕후로 살아온 필자는 미국에서도 아직 볼티모어를 방문한 적이 없었는데 기회가 되면 꼭 가서 마티스의 작품들과 스케치들을 확인해 보려고 준비하였다. 이 공부 내용이 마티스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BMA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길 기대해 본다.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