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연금술사, 셰익스피어
② 나이 듦과 생의 마지막을 표현하다
삶의 끝자락을 비추는 말들
셰익스피어는 인간 존재의 모든 순간, 모든 국면을 언어로 직조해낸 작가였다. 그가 사랑을 말할 때는 말이 노래가 되었고, 권력을 말할 때는 말이 칼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죽음과 노년을 말할 때에 말은 시간의 주름을 따라 흐르며 삶의 끝자락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다.
그는 노년의 시간과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닌 오히려 인간이 자기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사라짐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그만의 언어를 통해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풀어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나이 듦과 죽음을 지혜롭게 때로는 비극적으로 통찰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살아 숨 쉰다.
죽음을 말하는 언어의 깊이
죽음을 말하는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종종 시적이면서도 놀랄 만큼 사실적이다. 《햄릿 Hamlet》의 3막 1장에서 햄릿은 죽음을 이렇게 말한다. “The undiscover’d country from whose bourn no traveller returns.” (누구도 돌아오지 않는, 발견되지 않은 나라) 이 문장은 죽음의 불가해함과 인간의 공포를 시적으로 압축해낸 대표적 예다.
《줄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2막 2장에서 브루투스가 말한다. “Death, a necessary end, will come when it will come.”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는 끝이며, 올 때 오게 되어 있다) 이 말은 죽음을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결말로 받아들이고, 그 시기를 조급해 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태도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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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Macbeth》5막 5장에서는 멕베스가 충직한 시종으로부터 아내의 죽음 소긱을 듣고 난 직 후, 인생의 허무함을 절규하듯 “Out, out, brief candle!”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라고 외치며 생의 짧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작고 연약하며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덧없고 허무하다는 뜻이다.
《템페스트 The Tempest》3막 2장에서는 스테파노가 “He that dies pays all debts.” (죽은 자는 모든 빚을 갚는다)라는 말로 죽음을 삶의 마침표로 묘사한다. 겉으로는 유쾌한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죽음이 모든 인간적 계약과 책임, 심지어 죄책감까지도 끝내는 종착점이라는 것을 말한다. “He gave up the ghost.” (그는 영혼을 놓아주었다)라는 표현은 이후 영어 속 관용어로도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죽음을 단순히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그리면서도,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게 만들고 있다.
노년의 고통과 존엄
그의 희곡 속 노인들은 단지 연약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리어왕 King Lear》에서 리어는 늙고 병든 몸으로 광야를 헤매면서도 “I am a man more sinned against than sinning.” (나는 죄를 지은 자가 아니라, 더 많은 죄를 당한 사람이다)라고 절규한다. 그는 노년의 몸으로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며 노년의 고통과 혼돈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지막 투쟁을 보여준다.
희곡《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에서는 자크가 인간의 삶을 일곱 단계로 나누어 말하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온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며, 모든 남녀는 그저 배우일 뿐이다.) 그 대사에서 자크는 마지막 단계를 “second childishness and mere oblivion.” (두 번째 유년기, 완전한 망각)이라 묘사하며, 오늘날 인간이 다시 아이처럼 퇴행하는 치매걸린 노인들의 모습을 담담히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비극적 묘사가 아니라 인생의 전체적인 순환을 언어로 사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죽음을 표현한 관용어구들
그가 죽음을 말할 때 사용하는 어휘 중에는 셰익스피어가 처음으로 조합하거나 대중화시킨 표현들도 다수 존재한다.
“shuffle off this mortal coil”
: 이 필멸의 고통을 벗어나다
《햄릿 Hamlet》 3막 1장, 햄릿의 독백 "To be or not to be" 중 대사이며 인간의 삶을 괴롭히는 세속적 고통(mortal coil)을 벗어나는 것, 즉 죽음을 암시한다.
“quietus”
: 조용한 죽음, 완전한 종결
《햄릿 Hamlet》 3막 1장
빚을 청산하듯 삶을 정리하고 떠나는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to sleep no more”
: 다시는 잠들지 못하다
《맥베스 Macbeth》 2막 2장, 맥베스가 살인을 저지른 후
죄책감으로 인해 더 이상 평온한 잠(또는 내적 평화)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He gave up the ghost.”
: 그는 영혼을 놓아주었다 (죽었다)
《햄릿 Hamlet》 5막 1장
원래는 성경(KJV)에서 쓰인 표현이지만 셰익스피어가 문학 안에서 널리 퍼뜨렸다.
“Thou know’st ’tis common; all that lives must die.”
: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것, 너도 알고 있지
《햄릿 Hamlet》 1막 2장, 거투르트 왕비의 대사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보편적 운명으로 인정하는 대사다.
“Death lies on her like an untimely frost.”
: 죽음이 때 이른 서리처럼 그녀 위에 내려앉았다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5막 3장, 로미오의 대사로 줄리엣의 죽음을 자연의 비극적 이미지로 묘사한 시적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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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그려낸 인생의 늦가을
그의 소네트 역시 죽음과 시간의 흐름에 대한 깊은 통찰로 가득하다. 짧은 시구들에서 그는 나이 들어감과 죽음, 소멸의 기운을 시적으로 압축하며 인생의 끝을 감각적으로 들려준다.
소네트 60번 “Like as the waves make towards the pebbled shore, / So do our minutes hasten to their end.” (파도가 자갈 해변을 향하듯, 우리의 시간도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소네트 73번: “That time of year thou mayst in me behold / When yellow leaves, or none, or few, do hang.” (너는 내 안에서 늦가을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 / 누렇게 변한 낙엽, 거의 다 떨어졌거나 몇 개만 매달려 있다)
삶의 허무, 언어의 형상화
《맥베스 Macbeth》5막 5장에서 맥베스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두고 허무를 말한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삶은 그저 걷는 그림자, 무대 위에서 잠깐 으스대다 사라지는 가련한 배우일 뿐) 셰익스피어는 죽음을 허무하게 그리면서 언어의 격조와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고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여름 밤의 꿈》3막 2장에서 장난꾸러기 요정 퍽은 인간의 짧고 불완전한 삶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Shall we their fond pageant see? Lord, what fools these mortals be!” (우리 저들의 어리석은 연극을 지켜볼까? 세상 사람들 참 어리석기도 하지!) 인간의 삶은 허망한 연극이며, 그 안에서 진지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은 어리석다는 시선이다.
《템페스트 The Tempest》4막 1장에서 프로스페로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이렇게 담담히 정리한다:
“We are such stuff as dreams are made on, and our little life is rounded with a sleep.” (우리는 꿈으로 지어진 존재이며, 우리의 짧은 인생은 하나의 잠으로 마무리된다) 인간의 존재는 꿈처럼 허망하고, 그 끝은 잠처럼 조용히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삶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다.
삶을 되새기게 하는 언어
셰익스피어는 죽음을 단지 끝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이야기하며 오히려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했다. 죽음은 그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죽음은 종종 유머와 함께 혹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죽음이 등장한다. 그것은 인간이 누구인지,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지를 묻는 질문이자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었다.
그의 언어는 지금도 살아 있다. 누군가를 애도할 때, 인생의 끝을 생각할 때, 혹은 스스로의 노년을 준비할 때, 삶의 마지막조차도 언어로 품어낸 그의 작품 속 대사들처럼 우리는 말로 상실을 견디고 말로 존엄을 지키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는 삶의 끝자락을 위한 언어들을 만들어 냈으며 그 언어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긴 시간을 건너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