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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컬처
2022-07-11

소리에서 울림으로 향하는 ‘진심’이라는 언어 <코다> 2021



감동. 삭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많은 것의 의도이자, 목적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더 사라져 가는 그것. 이번 영화를 통해 장다나 칼럼니스트는 잠시 잊혀졌던 감동에 필수조건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지 보여주는 것 같다. 에디터. 황은비



한 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들의 축제라고 불릴 정도로 편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뭄에 콩 나듯 흑인 영화인이 수상을 할 때면, 항상 아카데미의 편협한 시선에 대한 수많은 기사와 가십거리가 넘쳐흘렀다. 이를 의식한 것일까? 언젠가부터 아카데미는 조금씩 다양성이라는 이름을 걸고 모든 경계를 낮추려는 모습을 보였다. 아카데미는 올해 남우조연상으로 <코다>의 트로이 코처를 지목했다. 그는 주인공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농인 아버지로 분하여 즐거움과 여유 그리고 감동을 자아내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이는 몇 년 전 봉준호의 <기생충>이 작품상 및 감독상등 주요부문을 석권할 때 우리도 목도했듯,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국가 그리고 항상 후자로 내몰리던 이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모두를 품는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아카데미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트로이 코처의 수상소감 장면이다. 수상자들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실제 청각 장애인인 그는 소감을 말하기 위해 처음으로 트로피를 쥐지 않은 채 수어로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수상소감을 마칠 때 까지 옆에서 묵묵히 그의 트로피를 들고 있어준 대한민국 윤여정 배우의 모습은 그 감동을 배가 시켰다.



실제 청각 장애를 가진 배우 트로이 코처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장면은 전세계에 감동을 안겨주었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속으로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듣고 말할 줄 아는 루비(에밀리아 존스)는 부모와 오빠를 대신해 세상과 소통하는 소녀이다. 가족의 품을 떠나 자유를 만끽하고픈 마음이 가득하지만 항상 가족 곁에서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는 현실은 항상 루비를 주눅 들게 한다. 어업을 하는 가족들은 루비 없이는 외부인과 소통이 불가하다. 부당한 대접을 받기도 하고 면전에서 욕을 먹기도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가족들은 그저 열심히 일을 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 루비는 속상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어 오히려 가족과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킨다. 어느 날 루비의 엄청난 잠재력을 알아본 합창반 선생님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을 목표로 열과 성을 다해 루비를 가르치고, 이 과정에서 자유로움을 경험한 루비는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에 매진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게 되지만, 루비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노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정작 사랑하는 가족이 이해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가족의 삶을 짊어지고 있는 루비로써는 이 도전을 두고 심하게 갈등할 수밖에 없다. 결국 루비는 오디션을 포기하고 가족의 곁을 지키기로 하지만, 기적적으로 가족들은 들리지 않는 루비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그녀의 미래를 위해 마음을 모으기 시작한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에서 시작점을 지닌 이 작품은 실제 농인배우들이 출연해 깊이감을 더했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다리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children of deaf adult의 줄임말인 ‘coda’는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의미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사회화 과정 속 ‘청인자녀’의 위치를 고민한 연구들은 상당수 접해봤지만 실제 이들 삶을 하나의 서사로 생각해볼 기회는 지극히 적었던 것 같다. 영화의 경우 농인이 핵심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그러기에 그들의 코다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소리>(2015)와 김진유 감독의 <나는 보리>(2018)등 최근 코다를 소재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대중의 귀와 마음을 조금씩 비집고 들어왔다. 특히 실제 코다의 삶을 살았던 베로니크 풀랭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2014)는 자국에서 크게 흥행한 성공작이 되었고 이는 할리우드로 넘어와 영화 <코다>(2021)의 시작점이 되었다.

<미라클 벨리에>와 <코다>는 소통할 수 없는 두 세계의 다리가 되는 이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으면서도, 다리의 역할과 그들의 자아성찰이 충돌하게 될 때 발생하는 내밀한 고민으로 관객을 초대했다는 점은 크게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두 작품의 연출방식에서 조금 다른 점이 발견된다. <미라클 벨리에>의 경우, 가족드라마의 전형으로써 유쾌하고 즐거운 정서가 작품전반에 균형적으로 녹아있는 것에 비해 <코다>의 경우 각 인물의 깊은 내면의 고민을 최대한 끄집어내고 그 갈등을 극에 정면으로 흡수시켜 긴장감 및 몰입감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서사구조가 확실하고 갈등의 진폭이 큰 할리우드의 전통적 접근법이다. 배우 캐스팅 방식을 보더라도 <미라클 벨리에>의 배우들이 수어를 배워 농인의 모습을 연기한 것과 다르게 <코다> 속 루비의 가족은 전부 실제 농인배우들이 출연하여 리얼함의 깊이를 더 한다. 이는 픽션을 다루면서도 최대한 인물의 내면을 다각화 하여 사실감의 호소에 많은 공을 들이는 할리우드의 서사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청각 장애를 지닌 환경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 감독은 사운드의 유무를 활용했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소리가 아닌 울림이라는 언어

<코다>의 전개는 수많은 메타포를 통해 해석의 키를 던지는 방식보다는 직설적이고 꾸밈없이 얘기하는 솔직함을 무기로 한다. 그리고 주인공 루비가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거치는 일련의 과정에서 만나는 두 가지 고민을 정확하게 관객 앞에 내려놓는다. 하나는 코다로써 가족들에게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서운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가족들에게 알려줄 수 없음에서 느끼는 무력함이다. 영화는 들을 수 없는 루비의 부모가 루비의 노래를 듣기 위해 공연에 참여하는 장면에서 몰입의 극대화를 보여주는데 바로 공연장에 울려 퍼지던 모든 소리를 순식간에 삭제해버리는 연출이다. 이제껏 당연한 듯 소리의 세상에서 살던 관객들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영화 속 세상을 체험하며 루비의 가족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한다. 고요하지만 미묘한 울림이 있는 세상. 그리고 이따금씩 느껴지는 희미한 진동. 감격에 울고 있는 옆 사람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루비의 가족은 루비가 가진 아름다운 소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이 가족의 일상을 경험한 관객들은 이윽고 들리는 소리에 안도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 루비가 처한 고민이 과연 해결될 수 있을지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루비를 좌절의 끝으로 내모는 것은 앞서 말한 후자, 즉 무력감일지도 모른다.



가족, 부모, 자식 간의 애정과 간절함이라는 불변의 가치는 어떤 환경에서도 통하는 것임을 영화는 말해준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하지만 루비는 소리가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또 다른 소리이자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언어, 바로 ‘울림’이다. 딸의 목소리가 궁금하지만 알 방법이 없는 아빠는 별 빛이 반짝이는 밤, 루비에게 노래를 청한다. 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을 아빠는 어떤 방식으로든 딸이 쏟아내는 모든 언어에 귀 기울인다. 유심히 루비를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레 루비의 목에 손을 댄다. 강하고 약한 떨림과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공명들. 그 날 아빠는 루비의 울림 속에 누구보다 강한 그녀의 열정을, 그리고 가족에 대해 품어 온 사랑과 미안함의 마음까지도 모두 알아챘을 것이다.

은은하게 퍼지는 울림이 담은 ‘진심’ 이라는 언어. 과연 우리는 그 언어를 충분히 사용하며 살고 있는 걸까.

장다나 영화 칼럼니스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CJ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와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의 프로그래머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외래교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