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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지금을 살아가야만 하는 어떤 자매들의 이야기-영화 <세 자매>



가족, 특히 형제, 자매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좋든 싫든 할 말이 많을 터. 별다르지 않은 듯 해도, 이따금 진가를 확인하게 되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5월의 영화는 우리와 닮아서 또, 달라서 공감될 자매의 이야기다. 관객의 마음으로 느끼고 풀어낸 칼럼으로 먼저 만나보자.


자매들에 대한 부러움의 단상

나에게는 7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지금은 세월을 함께 먹으며 친구 같은 관계에 이르렀지만, 각자 주어진 시간의 속도가 달랐던 어릴 적 나는 그 아이의 콧물과 용변을 닦아주고 24시간을 돌보는 엄마의 역할을 해야 했다. 나름 성숙한 유년기를 보냈던 나에게 동생은 오로지 ‘지켜줘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다만 우리 남매의 모습과 다른 집 형제자매의 모습이 뭔가 다르다, 라고 느낄 때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쉬움의 감정이 올라오곤 했다. 대부분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던 형제자매들은 함께 야구단에서 활동하거나, 편을 먹고 고무줄놀이를 했다.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돌림노래를 함께 불렀으며, 때론 서로 치고 박고 싸우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 싸웠냐는 듯 같은 편에 서서 나를 거칠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어린 동생에게 딸랑이를 흔들어줘야 했던 나는 그것조차 부럽게 느껴졌다. 특히 자매 관계가 그렇게나 부러웠다. 겨울방학을 맞이하던 12월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정미를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 내내 짝꿍이었던 친구이다. 때마침 정미는 언니와 팥 호빵, 야채 호빵을 반씩 나눠먹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언니랑 목욕탕 다녀오는 길이야. 인사해 우리 작은 언니야” 이미 나는 누군지 알고 있었다. 큰 키에 예쁜 얼굴을 가진 정미네 언니는 동네가 다 알고 있는, 당시 적당히 주목받는 체육 특기생이었기 때문이다. 한 팔에 목욕 바구니를 걸친 채 언니를 소개해주는 정미의 모습은 몹시 즐거워보였고, 나는 이내 서글퍼졌다. 내가 수시로 질투를 느낄 만큼 정미는 언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언니의 걸 스카우트 옷을 물려받아 입고 한껏 기뻐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생대회에서도 도시락을 먹으면 항상 언니가 싸준 초콜릿, 언니가 달아준 뱃지, 언니가 코팅해준 연예인 사진을 자랑해왔고 그 무렵 부터 내 머릿속 자매라는 존재들은 항상 서로를 이해하고 비밀이 없으며, 세상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친구관계로 인식되었다. 물론 살다보니 그게 다가 아닌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영화 <세 자매> 공식 포스터 출처: 네이버영화


조금은 ‘무언가’ 이상한 세 자매

그런데 여기에 조금 어색한 자매들이 있다. 얇디얇은 줄로 이어져 있지만 또 쉽게 끊기지 않는 줄 때문에 여전히 ‘자매’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이들이다. 꽃 가게를 하면서 딸과 살아가는 소심한 첫째 희숙(김선영), 완벽한 중산층가정을 이루었지만 위태로움을 감추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미연(문소리), 남편의 아들과의 관계로 골머리 앓는 셋째 미옥(장윤주)이다. 영화가 이 세 자매를 바라보는 방식은 매우 일관적이다. 그저 각각의 일상을 조용히 관찰할 뿐이다. 첫째 희숙은 몸과 마음이 완전이 망가진지 오래되었다. 항상 알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면서 ‘죄송해요’, ‘미안해요’를 입에 달고 산다. 어떤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주기적으로 돈을 뜯어가는 전 남편과 항상 욕을 입에 달고 다니며 엄마를 길거리 똥개정도로 취급하는 딸이 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가족의 멸시가 당연하다는 듯, 어두운 꽃집 구석에 유령처럼 박혀있는 희숙은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내며 처절하게 삶을 버텨낸다. 세 자매 중가장 안정적인 삶을 사는 미연은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교수 남편과 두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기고 주일에는 성가대 지휘를 하는, 누가 봐도 완벽한 아내이자 엄마지만 어딘가 하는 행동들이 불안해 보인다. 바람피우는 남편과 그 상대를 능청스럽게 무너뜨리면서도 남들이 보기에 완벽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기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폭발하거나, 기도를 안 한다는 이유로 딸에게 모질게 구는 폭력성을 보인다. 셋째 미옥은 알코올중독 수준이다. 창작을 하고 싶지만 되는 일이 없고, 아들이 있는 남자와 재혼한 그녀는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지만 오히려 술을 마시고 학교에서 난동을 피우는 대책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이렇게 답답하고 이해불가 한 세 자매의 일상으로 촘촘하게 채워나간다. 어쩌다 이 자매의 삶은 이렇게나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 진 것일까.



평범해 보이는 이들 자매에게는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느껴진다. 출처: 네이버영화


폭력의 희생자. 여전히 상처를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

세 자매의 일그러진 삶의 이유는 영화의 후반부에 거대한 폭탄이 되어 떨어진다. 사실 이 세 자매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당한 경험이 있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특히 희숙과 막내아들 진섭은 혼외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주기적으로 폭력을 행사당하는 실질적 희생자였고, 이를 말리기 위해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하러 맨발로 뛰쳐나온 미연과 미옥 또한 폭력을 외면하는 현실세계의 가부장적인 규율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오히려 아버지를 신고해달라는 미연에게 한 남자는 크게 꾸지람을 한다. “어떻게 아빠를 신고할 생각을 하니. 어서 가서 아빠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 어느 덧 폭력이라는 이름은 한 가정뿐만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외부, 더 나아가 가부장적 질서가 외골수로 뿌리박혀 있었던 과거 대한민국의 씁쓸한 뒷모습처럼 보인다. 영화는 세 자매의 일상을 고스란히 전함으로써, 이런 폭력의 희생자들이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그 상처와 고통 가운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지막 아버지의 생신축하 자리에서 과거의 이 모든 상처를 끄집어낸 자매들은 아버지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요구한다. 과거 폭력의 상흔을 완벽히 대속할 방법은 없을지 몰라도 지금 자매는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만이라도 붙잡고 싶다. 깊은 상처를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게. 또, 그래야 다음 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러나 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권위가 무너짐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유리창에 머리를 박으며 자학한다. 신기할 정도로 현재 세 자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모습이다. 장미 가시로 자학하는 첫째, 신실한 척 하며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둘째, 소통할 수 없어 폭주하는 셋째. 어쩌면 클라이막스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폭력성과 끔찍한 자기파괴는 이 아버지가 세 자매들에게 강제로 물려준 대물림 같은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매들은 가장 피하고 싶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닌 채 어른이 되어버렸고 , 아직도 현재 진행중인 끔찍한 폭력에 놓여있다. 이 가족에게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이다.



삶을 함께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존재가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함께 길을 걷는 것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몇 달 전 정미와 어렵게 통화가 되었다. 사는 게 참 바쁘다 등등 의미없는 수다를 떨던 정미는 갑자기 작은 언니가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긋지긋하다고 집안 살림 다 부수고 나가버렸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평생 이 자매를 부러워했던 나는 머릿속에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걸 느꼈다. “아니 그게 무슨 일이래” “그럴만도 해. 언니 운동해서 평생 우리 식구 벌어 먹이고 살았거든. 지금은 나만 몰래 언니랑 연락하고 있어. 애기들 때문에 자주 같이 놀러가고 그래” 나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둘이 여전히 관계를 이어가려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것도 역시 부러움에서 시작된 감정일까.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세 자매 역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예전에 함께 갔던 물회집을 찾아간다. 어떠한 사죄도 없이 여전히 엉망이 된 세 자매의 삶이지만, 유년의 끔찍한 기억위에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들을 쌓고 쌓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들은 어릴 적 고통스러운 순간이 그려진 세 자매의 첫 흑백사진 위에 다시 쓰여 질 세 자매의 모습을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찍는다. 뾰족한 것들도 품고 다듬어 둥글게 만들어주는 바다의 놀라움이 세 자매를 크게 품어주기를 바라며. 

장다나 영화 칼럼니스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CJ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와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의 프로그래머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외래교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