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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2

어둡고 낯선 곳에 스며드는 따스한 한 줄기 빛 - 영화 <미나리>



익숙하기 그지없는 것으로부터 뜻밖의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별다르지 않은 듯 싶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여운이 오래 가는 이 영화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4월의 영화 <미나리> 리뷰.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연이은 해외 영화제 수상으로 인해 국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다. 최근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석권과 더불어, 극 중 외할머니 역을 감동적으로 소화한 배우 윤여정 씨의 미국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에 몇 주 후 미국 아카데미 수상까지도 기대하게 하는 참으로 기쁜 이슈를 가져다주었다. 재작년 <기생충>에 이어 한국적 정서로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는 영화 <미나리>의 작품세계를 조용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재미교포 2세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는 우리에게 익숙한듯 낯선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출처: 네이버영화> 


<미나리>는 재미교포 2세인 정이삭 감독의 작품으로 미국 아칸소에서의 정착을 꿈꾸는 한국 가족의 이야기이다. 병아리 감별사 일에 지쳐 아칸소로 떠난 제이콥(스티븐 연)은 낯선 땅에서 농장을 일굴 생각에 들떠있다. 미국 땅에서 한국 채소를 재배하는 것은 그의 오래된 꿈이었기 때문. 하지만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의지할 친구도 없고, 영어도 턱없이 부족한 모니카는 자신의 상황은 그럴지언정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남편이 안정적인 병아리 감별사 일을 계속하길 바란다. 아들 데이빗(앨런 킴)이 어릴적부터 심장병을 앓고 있어 되도록 병원과 가까운 도시 생활을 원하는 모니카와는 달리 제이콥은 외딴 아칸소의 트레일러에서 자신의 꿈 그리고 그로 인해 행복해질 가족의 미래를 생각한다. 하루하루 버티던 부부는 급하게 한국에 있는 순자(윤여정)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영화는 친정엄마의 방문과 함께 일어나는 한 가족의 삶을 잔잔하게 조망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민자의 삶, 그리고 조용한 가족의 균열

영화를 볼 때 어떤 캐릭터에 몰입하는가의 문제는 영화를 해석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 시종일관 모니카의 우울한 표정이 눈에 서려 영화를 보는 내내 함께 가슴을 쳤고 함께 눈물을 훔쳤다. 확실치도 않은 남편의 꿈을 따라 머나먼 아칸소까지 온 ‘아내’, 온종일 아들의 건강에 온 신경을 쏟으며 언제 또 아픔이 찾아올까 걱정하는 ‘엄마’, 그리고 홀로 한국에 두고 온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데, 거기에 또 어쩔 수 없이 미국까지 모셔와 도움의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한없이 미안하고 면목 없는 ‘딸’.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딸로 이 무게를 견디는 모니카의 모습은 영화를 본 지 몇 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음을 스산하게 한다. 물론 제이콥 역시 벼랑 끝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신세이다. 10년 넘게 병아리 감별사로 입에 풀칠은 했지만, 언제까지 이 낯선 땅에서 가족의 하루하루를 고민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점차 나이는 들어가고 아마 제이콥은 더 이상 그 삶에는 가망이 없다고 봤을 것이다.

“10년이야, 10년! 내가 언제까지 병아리 똥구멍만 쳐다보고 살아야겠어!”

조금은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이 대사는 극 중 제이콥이 내뱉은 가장 비참한 현실에 대한 은유이다. 이 비참함에서 하루빨리 가족을 끌고 나오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처음 아칸소로 이사 온 날 ‘다 같이 자자’는 아빠의 말에 아이들은 ‘노’를 외친다. 힘겨운 아내와 무덤덤한 척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 이 가족을 감싸던 얇은 막이 깨져간다. 아쉬운 것은 이런 균열이 일고 있다는 것을 다들 애써 모르는 척한다는 것이다. 큰 자신의 농장을 운영하고자 하는 꿈 제이콥의 꿈, 꿈꾸는 자 야곱의 모습이 스쳐 간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가족 안에서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아이들의 모습은 다소 암담한 가족의 상황과 대비를 이룬다. <출처: 네이버영화>


어떤 가족에게 준비된 ‘큰 그림’

감독이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지만, <미나리>의 등장인물을 비롯하여 설정, 태고적 이미지들에서 서구사회의 근본이 되는 기독교 세계관이 전적으로 묻어있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인상적인 인물은 제이콥을 도와 농장일을 하는 폴이다. 성경 속 선지자 바울(Paul)을 연상케 한다. 항상 신에 대한 이야기로 제이콥을 부담스럽게 하는 폴은 주일마다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메고 마을을 걸어 다니며 고행을 하거나, 순자가 쓰러졌을 때 집으로 와 기도를 해주는 기괴하면서도 따뜻한 캐릭터이다. 제이콥은 항상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폴은 제이콥의 가장 성실한 파트너가 되어주고 진심으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위로를 전한다. 폴은 처음 제이콥을 만나 하늘을 향해 깊은 기도를 드리고는 이윽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가족을 향한 큰 그림(Big picture)이 있다”

실상 폴의 이 말을 들은 제이콥의 첫 반응은 퍽이나 냉랭하다. 극 중 시종일관 서구인들과 달리 자신은 머리를 쓰는 똑똑한 한국 사람임을 자처하던 그는, 큰 사건이 일어난 후 (어쩌면 그 사건이 이 가족을 향한 큰 그림의 실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변화되어 주변의 것들에 믿음을 가지게 되고 다시 일어선다. 그렇다면 폴이 말한 큰 그림은 과연 무엇일까.



순자가 등장하면서 가족은 변화의 시점을 맞이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관객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손자와 할머니의 에피소드들.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중반부 순자가 미국으로 넘어와 모니카와 대면하는 자리는 이 영화 최고의 압권을 이룬다. 타향살이에 지치고 가족 걱정에 잠 못 이룬 딸을 향해 순자는 한국에서 가져온 멸치와 고춧가루를 건넨다. 이를 받아들고 울먹이는 모니카의 얼굴은 이 영화 전반에 서려 있는 고된 이민자로서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감정적 울림이 된다. 중요한 것은 순자의 등장으로 인해 이 가족은 찬찬히 변화의 시점을 맞이한다는 것인데, 이 지면을 빌어 그 변화를 ‘기적’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죽음이 두려운 아이를 감싸 안은 할머니의 기도는 아이의 회복을 가져오고, 헤어지기로 결심한 두 부부는 불타오르는 농장에서 서로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또 다음날을 함께 맞이한다. 생각해볼 지점은 이 기적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극적인 환희으로서의 기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삶 속에 수없이 경험할 사건들, 혹은 그 지점마다 어느 누구의 보살핌이나 어느 누군가의 기도 같은 회복의 능력들이 겹겹이 쌓이고 뭉쳐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네 삶을 지속하게 하는 이미 존재하는 ‘기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기적의 한 가운데에 이 모든 사건을 치르고 함께 뒤엉켜 잠든 가족을 아침 햇살 속 바라보는 순자가 있다. 영화가 끝날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함께 누워있는 가족의 모습이야말로 이 가족의 큰 그림, 바로 기적일 것이다. 이런 기적을 어떠한 표정도 없는 순자의 얼굴에서는 인간의 감정으로 섣불리 캐치할 수 없는 그 너머의 거룩함마저 느껴진다.


순자가 '위험지역'에 뿌린 미나리 씨앗은 가족의 불행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자라났다.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미나리>는 가족 안에 우리네 삶을 지속하게 하는 이미 존재하는 ‘기적’을 이야기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빛은 항상 그들 곁에 존재한다. 어떤 모습으로든.

영화의 엔딩씬을 보면, 제이콥은 데이빗과 함께 평소 ‘위험지역’이라 부르던 물가로 간다. 햇볕이 돌아돌아 반사되어 들어오는 태고적 공간과도 같은 이 습지에는 과거 순자가 뿌려놓은 씨앗의 결실이 풍요롭게 자라있다. 신기하듯 바라보던 제이콥은 무성하게 자라난 그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하지만 이전엔 불가능했던) 한국 채소 미나리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며 한마디 한다. “맛있겠다” 과연 제이콥은 깨달은 걸까. 머나먼 미국 땅에서 그가 그렇게 원하던 한국적인 채소를 지금 눈앞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그것도 본인이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곳, 다른 상황으로 만났다는 것을. 이렇듯 기적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힘든 맨바닥에서 버티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 위로 내리는 따사로운 위로는 분명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닐 터. 미나리를 캐는 이 부자의 어깨위로 태고적 신비가 느껴지는 작은 빛들이 스며들며 영화는 엔딩을 맞는다.

낯설고 외로운 어떤 곳에도 분명 빛은 존재한다. 우리가 강렬하게 인지하지 못할지언정, 작은 구멍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온 작은 한 줄기 빛은 어느 순간 포근한 위안으로 그곳을 가득 채운다. 신이 우리에게 주는 따사로운 위로처럼 말이다. 

장다나 영화 칼럼니스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CJ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와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의 프로그래머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외래교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