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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3

이스라엘 사례를 통해 본 노년층의 전쟁과 삶

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㉔ 전쟁과 휴전의 그림자, 그리고 희망 - 이스라엘 사례를 통해 본 노년층의 전쟁과 삶


전쟁과 무력 분쟁은 세대를 가리지 않지만, 노년층은 가장 취약하고 심각한 타격을 받는 집단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 약화나 안전 위협을 넘어서, 노년층이 가진 고유한 취약성, 복지 시스템 접근성 한계, 그리고 사회적 역할의 상실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에서 기인합니다. 강제 이주와 고립, 이동성의 어려움, 그리고 가족과의 단절은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을 파괴하며, 결과적으로 이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합니다. 노년층이 만성질환에 대한 일상적인 관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분쟁으로 인한 시스템 붕괴가 즉각적인 생명의 위협으로 변질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이미지 출처: pexels


실제 분쟁 현장인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사례는 이러한 위기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가자지구의 경우, 약 11만 명에 이르는 고령자가 만성질환(당뇨, 고혈압)이나 장애를 가졌음에도 의료 인프라 마비로 치료 접근이 극도로 제한되어 생명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인슐린이나 산소 공급 같은 기본적인 의료 지원마저 끊기면서, 만성질환이 치명적인 응급 상황으로 전환되며 영양실조와 감염 등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경 지역의 고령자들 역시 반복되는 피난 속에서 장기 요양 계획이 무산되고 기존 복지 서비스의 연계가 불안정해지는 등 삶의 질이 심각하게 저하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pexels


적인 위기는 곧 내적인 충격으로 이어져, 노년층의 정신적·심리적 트라우마를 장기화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노년층의 78%가 불안을, 52%가 우울을 경험한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단순히 포격의 위협 뿐 아니라 삶에 대한 통제력 상실, 익숙한 환경의 파괴, 그리고 대체 불가능한 가족 및 공동체 구성원의 상실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는 새로운 전쟁이 과거의 깊은 외상을 재발 시키는 심각한 재트라우마(Re-traumatization)로 작용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고립 문제를 심화시키는 총체적인 위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pexels


전쟁이 깊은 상처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분쟁 경험은 휴전 이후 사회적 복원력과 제도적 개선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노년층이 발휘하는 회복력은 사회적 치유의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2006년 레바논 전쟁 당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높은 적응력을 보였습니다. 이는 과거의 극심한 고난을 극복한 경험이 현재의 위협을 상대적으로 경미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심리적 면역력과 폭넓은 대처 능력을 제공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이러한 '역설적 회복력'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심리적 강인함으로 전환되어 위기 속에서 오히려 적극적인 적응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노년층이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강한 치유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는 주체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노인요양시설 직원들의 헌신적인 비상 대응 경험은 체계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직원들의 헌신은 단순한 임시방편이 아닌, 비재래식 공격에 대한 상세한 마스터플랜 개발, 건물 구조 보강, 자원봉사자 모집 및 훈련, 그리고 직원 역할 명확화 등의 제도적 조치로 체계화되었습니다. 이는 위기를 단순한 피해로 끝내지 않고 구조를 영구적으로 강화하는 기회로 전환하여, 향후 재난 상황에 대한 국가적 대비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이미지 출처: JDC 공식 홈페이지


휴전 이후 이스라엘 사회의 약 82%가 사회적 연대감이 강화되었다고 응답한 것은 노년층의 회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젊은 세대의 노인 돌봄 참여는 지속적인 지원 체계로 발전하였고, JDC(the American Jewish Joint Distribution Committee, 유대인 인도주의 단체) 노인 주간센터 사례에서 "함께 있다는 것이 활동보다 중요하다"고 강조되었듯이, 사회적 연결망의 유지는 물리적 지원만큼이나 고령자의 장수와 정신 건강에 직접적인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정부 또한 기능적 장애 노년층을 위한 특별 피난 절차 및 안전실 설치, 접근성 개선 등의 정책적 개선을 추진하여, 노년층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회복력을 제도화했습니다. 



가자지구 근처에 위치한 노인 주간센터 활동 모습 이미지 출처: JDC 공식 홈페이지

이스라엘 노년층이 겪은 전쟁과 휴전의 경험은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과 높은 사회적 고립도에 직면한 한국 노년층에게 중요한 정책적 교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제공합니다. 이스라엘의 분쟁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의 결과는 한국의 구조적 고립 문제와 맥을 같이합니다.


첫째, 역설적 회복력과 세대 간 연대의 제도화입니다. 한국 노년층 역시 격동의 시기를 헤쳐온 경험을 내재적 회복력의 자원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처럼 젊은 세대의 자발적인 돌봄 지원 네트워크를 제도적 지원 체계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봉사가 아닌, 디지털 교육, 정서적 교류, 공동 활동 등을 통해 세대를 연결하고 상호 의존성을 높이는 구조화된 복지 모델을 통해 실현 가능합니다.



이미지 출처: pexels


둘째, 커뮤니티 기반 복지망 복원입니다. “함께 있다는 것이 활동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은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국 노년층은 교회 공동체, 경로당, 복지관 등 커뮤니티 기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고 정서적 지지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커뮤니티 기반 복지망 복원을 가장 중요한 장기 재건 방향으로 설정하고, 정기적 자원봉사 및 맞춤형 정서 돌봄 프로그램을 복합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공동체 복원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강남구립 대치노인복지관에서 진행한 노인 프로그램 현장   이미지 출처: 대치노인복지관 공식 홈페이지


셋째, 위기 학습을 통한 제도적 안전망 구축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스라엘의 선례를 따라 재난 및 위기 상황에 대비한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노인 거주지의 안전성 확보(접근성 개선) 및 기능적 장애 노년층을 위한 특별 피난 절차 등 재난 안전 매뉴얼에 노년층을 위한 맞춤형 조치를 구체적으로 포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노년층의 안전과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속 가능한 재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경험은 전쟁과 휴전이 노년층에게 극심한 시련을 안겼지만, 인도적 지원과 사회적 연대, 구조적 개혁을 통해 불안을 극복하고 더 강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복지·정책적 지원과 시민사회의 연대가 노년층의 삶의 질 회복 및 공동체 재건에 핵심적임을 강조하며, 한국 노년층 역시 이러한 회복의 여정을 통해 더 안전하고 연결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 출저: unsplash


성경은 이러한 연대의 중요성을 명확히 합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전도서 4장 9-10절, 새번역) 노년층이 겪는 고립과 위기 앞에서 ‘함께 붙들어 일으키는’ 사회적 연대는 가장 강력한 회복의 원동력입니다. 한국 사회가 이스라엘의 경험을 거울삼아 정책적 지원과 시민 사회의 따뜻한 연대를 통해 노년층의 삶의 질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재건해 나갈 때, 우리는 불안을 극복하고 더 강한 사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