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㉓학생과 노인이 함께하다 – 시니어 퓨처(Senior Future)
이스라엘은 흔히 ‘스타트업 네이션’, ‘젊은 나라’라는 수식어로 불립니다. 혁신적인 기술 기업, 활발한 창업 생태계, 빠른 의사 결정과 실행력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국가의 평균 연령 역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이어서,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회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의 이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라는 숙제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 사회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입니다. 단순히 연금을 늘리거나 요양시설을 확충하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세대 간 관계를 새롭게 디자인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바로 그 대표적 사례가 2025년 3월에 출범한 시니어 퓨쳐(Senior Future) 프로그램(Atid Bakir, עתיד בכיר)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복지 정책을 넘어 세대 간 연대를 통한 사회적 혁신을 지향합니다. 특히, 사회평등부와 전국학생연합이 공동으로 추진하여 시니어들의 외로움을 ‘사회적 질병’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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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를 통해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전국 204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됩니다. 학생들이 시니어와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활동을 하고, 그 대가로 장학금을 받습니다. 단순히 ‘도움 주고받기’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 맺기와 상호 학습을 추구한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학생들은 시니어를 방문하거나 동행하며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함께 지역사회의 작은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시니어들은 사회적 연결망을 회복하고, 학생들은 세대 경험에서 배우며 공동체적 책임을 내면화합니다. 이는 노년을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기여하는 시민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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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퓨처는 전국 204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시에 운영됩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단순한 ‘좋은 아이디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통합 프로젝트라 할 만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된 시니어들의 외로움 문제는 단순한 개인적 고통이 아니라 사회적 리스크로 떠올랐습니다. 고립과 단절은 건강 악화, 경제 불안, 심리적 불안정으로 이어집니다. 시니어 퓨처는 바로 그 취약 지점을 공략합니다. 학생들에게는 학업을 이어갈 장학금이 주어지고, 시니어들에게는 새로운 사회적 활력이 더해집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세대 간 불신을 줄이고 공동체의 복원력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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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밋빛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주도로 이루어지는 운영이기에 사회평등부의 운영을 둘러싼 논란은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흔드는 요인입니다. 아랍 사회 개발 예산의 동결, 핵심 인사의 공석, 예산 집행 지연 등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시니어 퓨처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적 관리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런 부분에서 해결해야 할 점도 많아 보입니다. 결국 제도적 안정은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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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이스라엘의 실험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역시 초고령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르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년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강합니다. 부담으로서의 노년이 아니라, 자산으로서의 노년을 어떻게 사회가 활용할 수 있을까요? 시니어 퓨처는 그 답을 암시합니다. 노년은 단순히 끝자락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의 보고입니다. 삶의 경험과 지혜, 신앙과 가치관은 다음 세대를 키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산입니다. 그런데 이 자산을 꺼내 쓰려면, 창고 문을 열어주는 연결고리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역할을 학생들에게 맡겼습니다. 한국은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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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시니어 퓨처는 결국 단순히 보면 ‘외로움과 장학금의 상호교환’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세대 간 신뢰와 사회적 연대라는 보이지 않는 통화가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이런 보이지 않는 통화를 넉넉히 발행해야 합니다. 현금과 부동산만이 자산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도 가장 귀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노년층이 그 자산의 발행 은행이자 핵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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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퓨처는 이스라엘이 고령화 문제를 단순히 부담으로만 보지 않고, 세대 간 협력을 통해 기회로 전환하려는 시도입니다. 한국 사회와 교회가 이 모델에서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합니다. 시니어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주체로 세우고, 청년과 노년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노년은 신앙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고 다음 세대를 축복하는 시간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 속 유대 전통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열두 아들을 불러 하나하나 축복하며, 단순한 당부를 넘어 자손들의 미래와 사명을 선포했습니다. 신명기 33장에서 모세 또한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를 불러 축복하며,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71:18을 통해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고백하며, 노년의 사명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신앙의 유산을 전하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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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노년은 끝자락이 아니라, 삶의 여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다음 세대에 흘려보내는 통로입니다. 이 인식이 사회와 공동체 안에 자리 잡을 때, 고령화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라 성숙과 성장을 향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결국 노년은 인생의 겨울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나누는 계절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