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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0

이스라엘에서 배우는 우리 동네 해법 찾기

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⑲ 노인 고독과의 전쟁: 이스라엘에서 배우는 우리 동네 해법 찾기


한국과 이스라엘은 모두 65세 이상 인구 중 독거노인의 비율이 20% 이상으로, 노인 고독 문제에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의 돌봄 문화와 활발한 지역사회 활동이 존재하지만,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로 인해 여전히 고독과 돌봄 인력 부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은 급격한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 개인주의 확산으로 전통적 가족 돌봄 체계가 약화되며 노인 고독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양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과제에 접근하고 있으며, 문화적 차이를 넘어 효과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스라엘의 혁신적인 모델을 소개하고, 한국의 독거노인 문제 해결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Intuition Robotics CEO 도르 스쿨러(Dor Skuler)는 “외로움은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 해를 끼친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노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노인 고독 문제 해결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노인 고독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적 과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족 중심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기술과 공동체 기반의 접근법을 접목해 노인 고독 문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노인 돌봄 철학은 레위기 19장 32절의 말씀에 잘 나타납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히브리어로 '노인'을 의미하는 ‘자켄(זקן)’은 탈무드에서는 ‘지혜를 얻은 사람(זֵה שֶׁקָּנָה חָכְמָה)’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는 노인을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닌, 지혜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합니다. "우리는 젊은이의 몸을 동경하지만, 노인의 지혜를 구한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처럼, 이스라엘 사회는 노인의 경험과 지식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 위에 이스라엘은 다양한 돌봄 모델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공동체 중심의 돌봄과 '키부츠'의 변화


공동체 중심의 돌봄은 이스라엘 노인 복지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키부츠(Kibbutz)입니다. 본래 젊은 세대를 위한 공동체였던 키부츠는 시간이 흐르며 노인을 위한 공간으로도 진화했습니다. 키부츠의 80%가 노인을 위한 클럽을 운영하며, 학습·운동·문화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는 공동체 내 노인의 활발한 참여를 장려하는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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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키부츠에서는 90세 노인도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키부츠 케파르 글리크손의 한 주민의 말입니다. 한국에서도 아파트 단지나 마을, 혹은 교회 단위로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한 ‘장수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경기도 수원시의 한 마을에서는 노인들이 주도하는 ‘마을 역사 보존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바꾸는 돌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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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은 노인 돌봄 방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할머니, 제 매력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드실 거예요.” 파주시의 한 독거노인 가정에서 돌봄 로봇 ‘효돌’이 건넨 인사말입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 본사를 둔 Intuition Robotics는 인공지능 로봇 ‘엘리큐(ElliQ)’를 개발했습니다. 대화, 오락 제공, 건강관리 지원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엘리큐는, 미국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외로움을 95% 감소시켰다는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이나 ‘효돌’ 같은 기술이 일부 지역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보다 광범위한 보급과 정서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주간 돌봄센터와 지역 사회의 역할


‘카사 이스라엘(Casa Israel)’은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사회적·여가 활동까지 제공하는 주간 돌봄 센터입니다. 2002년 설립 이후 약 170개의 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13,000명 이상의 노인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나이 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센터의 핵심 목표입니다.


한국의 노인복지관 또한 다양한 교육 및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처럼 노인이 집에서 머물면서도 충분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지역 기반 복합 모델'로의 전환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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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연계와 CCRC 모델


세대 간 연계를 촉진하는 이스라엘의 ‘BINA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들이 노인의 가정을 방문해 대화하고 사 진을 찍는 세대 간 교류 프로젝트입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도 주기적으로 노인을 찾아 교류하며 정서적 지지를 제공합니다.


“아이들이 방문할 때마다 내 마음은 젊어집니다. 그들의 질문과 호기심은 내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줍니다.” — 텔아비브의 87세 노인 라헬


이와 함께, 연속돌봄 퇴직 커뮤니티(CCRC)는 독립성과 돌봄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주거 모델입니다. 예루살렘의 ‘베이트 토베이 하이르(Beit Tovei Ha’ir)’는 종교 공동체 기반의 안정된 노년 삶을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35년 넘게 외국인 거주자를 포함한 다양한 배경의 노인들에게 안전하고 품격 있는 노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삶의 도서관, 그 지혜를 잇는 길


이스라엘에서 얻는 가장 깊은 교훈은 노인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품은 존재’로 존중한다는 점입니다. 한국 사회도 노인의 지혜를 귀하게 여기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활용하는 데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말리 출신 작가 아마두 함파테 바는 유네스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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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Afrique, quand un vieillard meurt, c’est une bibliothèque qui brûle.” (아프리카에서는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의 노인은 단지 돌봄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삶의 도서관입니다. 이스라엘의 공동체 문화와 기술 융합 모델은 한국의 노인복지 정책에 깊은 영감을 줍니다. 이스라엘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더 따뜻하고 지혜로운 노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