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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3

이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⑦

이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⑦ 
마티스 '붉은색의 조화'


야수파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Henri Emile BenoIt Matisse, 1869-1954)는 1869년 프랑스 북부 노르 파드 칼레에서 태어났다. 법을 공부하러 파리로 유학을 갔다가, 병으로 입원한 병실에서 옆 병상 환자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것이 그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이후 그는 전통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대담한 색채와 단순한 형태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으며,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미술의 양대 거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Henri Émile Benoît Matisse    이미지 출처 : wikipedia.com


비슷한 사연을 가진 화가들이 의외로 많다. 부모의 권유로 법학이나 의학을 공부하다가, 혹은 병상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우연히 붓을 잡았다가 위대한 화가가 되는 이야기들은 미술사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마티스처럼 법을 공부하던 중 병으로 입원한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 에드워드 호퍼 역시 상업미술을 공부하다가 뒤늦게 회화로 전향했고, 빈센트 반 고흐는 젊은 시절 목회자의 길을 가려다 정착하지 못하고 27세에 처음 붓을 들었다.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던 중 거울 앞에서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툴루즈 로트렉은 선천적인 골격 질환으로 병약한 삶을 살며 그림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삶의 굴곡과 전환은 대가들의 공통된 ‘back story’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티스 [삶의 기쁨(Le bonheur de vivre, 1905)]    이미지 출처 : wikipedia


마티스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림’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하늘은 하늘색, 나무는 초록, 바다는 파란색이라는 고정 관념을 과감히 벗어던졌고,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색상의 대담한 조합을 제시했다. 그는 ‘색채를 해방시킨 화가’로 불리며 야수파(Fauvism)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한때는 피카소의 멘토였지만, 피카소가 그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고 모욕적인 언사를 한 이후, 두 사람은 평생 의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9년 노년기의 마티스    이미지 출처 : www.artlilited.net


마티스의 전성기


1887년, 마티스는 파리로 유학을 가 법을 배우고 이듬해 자격시험에 합격해 잠시 법률사무소 서기로 일한다. 하지만 미술 교본을 독학으로 익히고 풍경화를 그리며 점점 화가의 길로 전향하게 된다. 1904년, 그는 시냐크와 크로스 등 신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생트로페에 머물며 신인상주의 기법을 수용한다. 이 경험은 1905년 야수파 운동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니스 마티스 미술관 올해 전시회 안내    출처 : www.musee-matisse-nice.org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시작한 야수파 운동은 20세기 회화의 혁명으로 평가 받는다. 이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자연의 형태나 색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빨강·노랑·초록·파랑 같은 원색을 사용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1905년 파리 가을살롱전에서 그들의 작품은 “야수 같다(Fauves)”는 비평가의 평가로 인해 ‘야수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이는 20세기 회화의 한 획을 긋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마티스는 이 시기를 통해 ‘색채의 해방자’라는 명성을 얻었고, 단순함 속에 감정을 응축시키는 독창적 화풍을 통해 현대미술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나갔다.


《붉은색의 조화 (La Desserte rouge)》, 1908


《붉은색의 조화》는 마티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원래는 《푸른색의 조화》라는 제목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는 푸른색에 만족하지 못하고 붉은색으로 덮었고, 제목도 바꾸게 된다. 불어 원제는 La Desserte rouge, 즉 ‘붉은 서빙 테이블’이라는 뜻이다.


붉은 색의 조화(The Dessert Harmony in Red, 1908),  이미지 출처 : wikipedia.com


이 작품은 러시아 섬유 재벌이자 미술 후원가였던 세르게이 슈츠킨이 1908년 살롱전에서 처음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 하지만 마티스는 이후 파란색을 전부 붉은색으로 바꾸었고, 슈츠킨은 놀라기는 했지만 오히려 붉은색이 더 좋다며 기꺼이 작품을 소장했다. 이후 슈츠킨은 마티스의 열렬한 후원자가 되었다.


작품 속 붉은 벽과 붉은 테이블, 그리고 그 위에 과일을 정성껏 디스플레이하는 여성은 한눈에 평범한 가정의 식사 풍경처럼 보이지만, 테이블과 벽이 이어진 듯한 덩굴무늬는 전통적인 구분을 흐리게 만든다. 한편 그림 속 창틀을 통해 보이는 푸른 자연은 붉은 실내와 대조를 이루며 오묘한 조화를 완성한다. 마티스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원근법이나 명암법 없이, 오로지 색채만으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에르미타쥬 박물관


필자는 2010년 2월 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았다. 목적은 단 하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겨울, 새벽 1시에 도착한 공항 밖은 영하 20도의 매서운 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마가 얼어붙는 느낌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에르미타쥬 미술관 마티스 그림 앞에선 필자와 아들     이미지 출처 : 필자 제공


예약한 저렴한 호텔에 도착했지만, 접수에 아무도 없었고, 결국 내가 예약한 방은 보일러 고장으로 매우 추울 거라는 안내를 받았다. 다른 호텔로 이동할 수도 없었던 상황에서 나는 그대로 옷을 입은 채 이불을 덮고 밤을 보냈다. (이 이야기는 더 길어질 수 있으므로 여기서 줄인다.)


세계 최대의 예술 창고, 에르미타쥬


에르미타쥬 박물관(The State Hermitage Museum)은 1764년 예카테리나 2세가 개인 컬렉션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설립되었고, 1852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에르미타쥬’는 불어로 ‘은둔처’라는 뜻인데, 본래 겨울 궁전(Winter Palace) 옆에 위치한 작은 궁전에서 황제와 가까운 인물들만 조용히 미술 작품을 감상하던 왕실 전용 공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귀족들로부터 몰수한 수많은 예술품들이 이곳으로 이관되었고, 현재 약 300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에르미타쥬 미술관 앞에서 필자와 아들    이미지 출처 : 필자 제공


건물 자체도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18세기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어우러진 겨울 궁전을 포함해 여섯 개의 주요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 면적만 해도 6만 여 제곱미터에 이른다. 회화, 조각, 고대 유물,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렘브란트, 루벤스, 반 고흐, 피카소, 마티스 등 세계적 거장들의 대표작들이 소장 되어 있다. 연간 평균 관람객 수는 약 250만 명에 달하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보고로 평가 받고 있다.


마티스와 에르미타쥬


마티스의 러시아 출신 연인이자 조수였던 리디아 데렉토르스카야는 1967년, 마티스의 작품 40여 점을 에르미타쥬에 기증했다. 이로 인해 에르미타쥬는 마티스의 대표작 《댄스》와 《뮤직》, 그리고 《붉은색의 조화》 등을 소장한 대표 미술관이 되었다.



에르미타쥬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_램브란트의 탕자의 비유가 보인다. 


한편 이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희귀한 작품인 《베누아의 마돈나》와 《리타의 성모》도 소장하고 있다. 다만 두 작품이 다빈치의 진작인지, 그의 제자들의 작품인지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며, 에르미타쥬 측의 완강한 입장으로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


마티스의 색채는 단순한 시각적 실험을 넘어, 예술이 지닌 자유와 위로의 본질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단순함 속의 깊이, 색채 속의 생명력이 살아 숨 쉬며, 보는 이의 내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에르미타쥬 한켠에 자리한 그의 작품은 지금도 관람객들에게 조용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에르미타쥬 미술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생전 마티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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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