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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로마 박물관에 소장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대리석 조각 이미지 출처 : wikipedia.com
로마 전체에 '안토니우스 역병'으로 알려진 전염병이 번졌을 때(후에 그도 역병으로 사망한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병사들과 함께 전장에 머물렀고,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의연히 임무를 다했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그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명상록]에 담긴 그의 글은 단순한 사색이 아니라 실제 경험 중인 고난 속에서 평온을 유지하려 한 철학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NHK방송을 바탕으로 저술한 기시미 이치로의 [지금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명상록]의 메시지는 오늘의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넬슨 만델라는 감옥에서의 고된 시간 동안 그에게 위안을 준 책이 바로 [명상록]이었으며, 존 스튜어트 밀은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 기초가 스토아 정신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빌 클린턴은 1년의 두 번은 반드시 읽는다고 말했으며, 최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로 인기 있었던 [미움받을 용기]의 작가 기시미 이치로는 [명상록]의 인상적인 문구들을 적은 뒤 그에 대한 자신의 인사이트를 정리한 책 [지금이 생의 마지막이라면]을 출간하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가 개선문을 지나는 장면을 담은 고대 로마 시대의 부조(Capitoline Museums, Rome) 이미지 출처 : worldhistory.org
[명상록]은 총 12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쓰여진 개인적인 글이지만 그 안에 담긴 통찰은 매우 일관되고 심오하다. 특히 죽음에 대한 접근과 노년기 삶에 대한 자세와 죽음에 대한 준비에 대한 글은 웰다잉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지혜를 주고 있다.
1. 죽음의 자연스러움과 준비
"죽음을 기다리는 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단지 모든 사물이 변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삶이 네게 주어진 자연의 순리라면, 죽음 또한 자연이 마련한 것이니 어찌 두려워할까?" [명상록 II.17]
아우렐리우스는 죽음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기원 전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치지 못한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에게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준 순리"이자 또 하나의 변화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맞이하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평온에 이르는 길이라 말하고 있다.
2. 내면의 평온과 자기 통제
"타인이 너에게 던진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그들의 행동은 그들 자신의 것이다.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네 자신뿐이다.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너의 몫이다."[명상록 IV.7]
외부 상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나의 마음과 태도는 통제할 수 있다는 아우렐리우스의 말은 스토아 철학의 핵심인 '자기 통제'의 원칙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상처 받고 흔들린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말과 행동은 그들 자신의 것"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오직 나 자신의 생각과 반응만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삶의 주도권을 나의 내면으로 가져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노년기에는 육체의 약화와 사회적 고립으로 외부 환경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처럼 삶의 불안정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존엄과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3. 현재를 사랑하라
"과거는 네 것이 아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현재만이 네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명상록 VII.29]
우리는 과거의 후회에 얽매이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오직 현재의 순간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진짜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라)이라는 유명한 라틴어 표현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노년기에는 지나온 세월에 대한 후회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두려움이 커질 수 있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이야말로 삶을 온전히 누리는 길일 것이다.
4. 각자의 몫을 다하라
"너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라.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말고, 네게 맡겨진 일과 길에 집중하라. 그것이 네가 해야 할 전부다."*[명상록 V.1)]
이 문장은 성경의 마태복음 16장 24절의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한 삶과 고난 앞에서 타인과 비교하며 불평하기보다 주어진 몫을 묵묵히 감당할 때 삶은 더 의미 있고 평화로워질 것이라 말하고 있다. 특히 노년기에는 다른 세대와의 삶의 차이를 느끼며 불안과 소외를 경험하기 쉽다. 이 때 “각자의 삶에는 고유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존엄과 지나온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마르쿠스가 실제 연설하고 사색했던 로마의 포로 로마노(Forum Romanum) 출처 : wikipedia.com
시대의 벽을 넘어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
2024년 10월,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 결과가 발표 되었다. 3년 주기로 1만 명의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국가 차원의 가장 큰 규모의 조사다. 이번 조사의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년층의 경제적 불안, 독거노인의 증가, 돌봄과 의료의 필요성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신적 고립과 죽음 준비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해결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피톨리노 박물관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2세기 작품) 출처 : wikipedia.com
초고령사회의 문턱에서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니 아우렐리우스의 가르침이 더욱 가치 있게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닌 그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그리고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책적 지원 못지않게 정신적 준비와 성찰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접근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이자 남은 세대에게 전해야 할 중요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내면의 평정을 유지하며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았듯이 우리도 자기 몫의 삶을 받아 들이고,죽음과 노년을 존엄하게 준비하며 오늘을 사랑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역시 쉽지만 어려운 것, 단순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 시간이 한 없이 지나도 변함없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의 '마음가짐' . 이것이 명상록의 출발점이자 끝맺음이다.
이정선 이라이프아카데미 연구원
동국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사와 작품연구를 강의하였다. 숭실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사회복지학 박사를 수료하였으며 초고령사회 보다 의미있는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기 위한 문화예술을 접목한 프로그램과 좋은죽음을 위한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에덴낙원의 기획실장 및 이라이프아카데미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