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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0

그들은 함께 늙어갔다

그들은 함께 늙어갔다.


첫 질문.


“왜 저들의 삶은 살아있어 보이지?”


처음 이스라엘 노인들을 만났을 때, 나는 어딘가 어색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이 특별히 건강해 보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흰머리에 구부정한 몸,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인의 형상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눈빛이 달랐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눈빛, 혹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 하나가 이 긴 연재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의 노년 세대는 홀로코스트, 국가 건국, 그리고 끊임없는 전쟁이라는 ‘세 번의 폭풍’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산증인들이다. 이들에게 노년은 단순히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조용히 쉬어가는 ‘마무리’의 시간이 아니다. 극한의 고난을 겪었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며 현재에 집중하는 것 — 그것이 그들의 눈빛을 반짝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내가 연재 초반에 그려본 가상의 노인 ‘모시’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공원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마치 유엔 총회처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손자들에게 살아있는 역사를 전수하며, 주어진 하루를 감사로 채워간다. 모시는 가상의 인물이었지만, 그가 담고 있는 삶의 태도는 내가 이스라엘에 20여 년 머무는 동안 실제로 목격한 수많은 노인들의 모습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사회적 주체로서 기능하려는 강한 의지 — 그것이 이들을 살아 있게 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두 번째 질문.

“이스라엘 공동체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30개월의 관찰 끝에 얻은 핵심 통찰은 단 하나였다. 이스라엘 노인들의 생동감은 개인의 의지를 넘어, 노년을 존엄하게 품어내는 ‘공동체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노인을 뜻하는 단어 ‘바켄’(זקן)은 탈무드에서 ‘지혜를 얻은 사람’으로 해석된다. 이 단어 하나에 이스라엘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 전체가 담겨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노인은 돌봄을 받아야 할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필수적인 지혜의 원천이자 자산이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 단어가 가리키는 삶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

키부츠를 떠올려 보자. 원래 젊은 세대를 위한 개척 공동체였던 키부츠는 이제 노인을 위한 공간으로 진화했다. 90세 노인도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당당히 참여하고 목소리를 낸다. 할 일이 있는 노인은 다르다. 자신이 여전히 쓸모 있다는 감각, 누군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감각 — 그것이 그들을 매일 아침 일어나게 한다.


사막 키부츠- 네오트 세마다르 전경    이미지 출처 : 이스라엘 관광청

이스라엘에 머무는 동안 나는 외부에서 홀로 밥을 먹는 노인을 거의 보지 못했다. 혼자 사는 노인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노년층의 95% 이상이 요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 거주하며 이른바 ‘Aging in place’를 실천한다.

그러나 혼자 ‘먹는’ 노인은 드물었다. 유월절이 되면 “굶주린 자는 누구든지 와서 먹으라”는 전통에 따라 정부, NGO, 그리고 이웃들이 홀로된 노인들을 식탁에 초대한다. 평소에도 ‘서포티브 커뮤니티’(קהילה תומכת, Kehila Tomechet)의 이웃들이 수시로 안부를 묻고 식사를 챙긴다.

“춤추며 울고, 울며 춤추는” 강력한 연대감 — 비극과 고독의 순간에도 서로의 손을 잡는 그 힘이 이스라엘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누군가의 식탁에 항상 그들의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는 예의상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렇게 되어 온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앉는 노인은 손님이 아니라, 그 식탁의 일부였다.


Dining room at Gan Shmuel, 1953    이미지 출처 : wikipedia

세 번째 질문.

“우리는 과연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제 시선을 우리의 현실로 돌린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높은 노인 빈곤율과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고독 문제는 이제 통계가 아니라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는 노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부양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일원인가. 그들이 사라져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우리가 언젠가 될 사람들인가.


이미지 출처 : unsplash

이스라엘의 사례는 화려한 복지 제도가 아니라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을 요청한다. 노인을 ‘부담’이 아닌 보존하고 공유해야 할 ‘소중한 자산’으로 보는 것 - 그 시선의 전환이 공동체를 바꾸고, 개인의 노년을 바꾼다. 유대인들은 고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זִכְרוֹנוֹ לִבְרָכָה” (그의 기억이 복이 되기를, zikhronó livrakháh)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추모의 인사가 아니다. 히브리적 사유에서 기억한다는 것(zakhar)은 그 존재를 현실 속에서 다시 활성화하는 행위다.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사람은 아직 복의 통로로서 살아있다. 공동체가 노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고, 그의 자리를 비워두지 않는 것 - 그것이 유대 전통이 말하는 가장 깊은 의미의 돌봄이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노인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평안히 나이 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기억 속에 머무는 삶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기억에 살아 있다는 것,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 그것이 두 번째 죽음을 늦추는 일이다.

우리가 직면한 고독과 단절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정책 이전에 공동체의 회복이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이웃 어르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드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작은 실천 — 그것이 서로를 살리는 시작점이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이스라엘의 노인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떤 제도나 정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단순한 것이었다. 옆에 있어 주는 것. 이름을 불러 주는 것. 그 사람의 자리를 비워 두지 않는 것이 공동체를 살리는 길임을 배웠다.



그동안 이 글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질문을 품고 걸어온 시간이 나에게는 작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동네의 소외된 이웃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보는 따뜻한 실천으로 이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2026년 여름, 이범수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