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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4-10-31

고전에서 배우는 웰다잉 ① 키케로

고전에서 배우는 웰다잉

서점에 가면 웰다잉에 대한 책이 넘쳐난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초고령사회를 앞둔 나라답게 경제적 준비부터 건강 관리, 정신건강,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웰다잉의 범위는 넓고도 다양하다. 각 분야마다 노년과 죽음 준비에 관한 새로운 조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니 새로 나온 책도 금세 뒤로 밀리고 또 방금 나온 새로운 책이 그 앞에 놓인다. 

연극을 전공하며 제일 처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배웠고, 수많은 그리스와 로마의 희곡들을 읽고 가르치며 고전의 위대함과 깊이를 알게 되었다. 기원전의 작품들 속에서 나는 고전이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닌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고전 작품 속 인물과 사건들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고전들을 읽으며 나는 과거의 지혜가 오늘을 품고 있음을 깨닫는다. 

노인복지를 배우게 되면서 노인 문제, 웰다잉에 대한 지혜 역시 가장 최신 베스트셀러가 아닌 고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원전의 철학자들조차 노년과 인생의 마무리에 대해 고민하며 길을 찾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고대의 사유는 오늘에도 놀라운 유효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도 모두 오늘날의 웰다잉과 같은 질문에 대답을 남기고 노년과 삶의 끝자락을 어떻게 준비하고 마주 할지를 깊이 고민했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글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귀한 안내서인 것이다. 

세네카, 키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옛 현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웰다잉의 진정한 길을 찾아보려 한다.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가 걸어가 만나게 될 노년의 길, 웰다잉을 위한 지혜를 이 책들을 통해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란다.

①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


[노년에 대하여]는 기원전 44년,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노년기에 직면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을 바탕으로 노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담은 작품이다. 그는 이 책에서 노년기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며 노화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존중해야 할 삶의 일환으로 다룬다.



리처드 윌슨  '키케로와 아티쿠스, 동생 퀸투스'. 1771년      출처. wikipedia


키케로는 말년에 정치적 실각과 가정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생의 본질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런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노년을 지혜의 시간으로 재조명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노년기와 죽음을 단순히 인생의 끝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인생의 정수로 바라보게 했다.


키케로는 이 책에서 노년에 대하여 크게 네 가지 주요 주제를 다룬다. 첫째, 노년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며 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둘째, 그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젊은 세대에게 가르침을 전수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셋째, 그는 정신적 성장이 노년에 더욱 중요해진다고 하며 신체의 쇠퇴를 받아들이되 정신의 쇠퇴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죽음을 또 다른 여행의 시작으로 보면서 두려움 대신 평화롭게 수용할 것을 권한다.


"삶은 마치 항해를 마친 항해자가 마침내 항구에 닻을 내리는 것과 같다. 나이를 먹는 것은 마침내 닻을 내릴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노년이 약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의 의지와 훈련이 있다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다."


"노년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의 기회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나는 노년을 무겁게 짊어진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것을 내려놓고 가벼워지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의 노쇠함에 지나치게 휘둘릴 필요가 없다."


키케로는 단순히 육체적 노화에 집중하지 않고 정신적 성숙을 강조하며 우리의 내적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특히,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되새기고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카피톨리니 미술관 소장     출처 : wikipedia


그가 [노년에 대하여]를 쓴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기인한다. 앞서 말한 대로 키케로의 말년은 정치적 불안정과 개인적인 위기로 가득했다. 안토니우스와의 갈등에 휘말렸고 정치적 입지는 급격히 약화되었다. 기원전 58년, 정치적 갈등으로 로마에서 추방당해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에서 직업도 잃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떨어진 채 고립된 시기를 보내게 된다. 또한 어려울 때마다 많은 위안을 받았던 사랑하는 딸 툴리아가 출산 중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는 잠시 모든 일을 멈추었을 정도로 극심한 슬픔을 겪었고 그 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노년에 대하여]는 젊은이와 노년층 모두에게 유익한 철학적 안내서다. 젊은 세대에게는 앞으로 맞이할 노년기를 미리 준비하게 하며 오늘의 삶을 더 깊이 있게 성찰하게 돕는다. 그가 말하듯 "노년은 큰 깨달음의 기회"이며, 젊은 시절부터 그 준비를 해 나갈 때 인생의 마지막 단계가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 노년 세대에게 역시 여전히 노년이 자긍심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시기임을 일깨워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자녀 세대에 정신적 유산을 남길 수 있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키케로가 연설하던 고대 로마의 포룸(Forum Romanum)   출처 : wikipedia


'인생의 모든 계절은 저마다의 열매를 지니고 있다.' -키케로


이 계절의 열매는 단순히 시간을 보낸 결과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숙성되고 다져진 견고한 지혜일 것이다. 키케로의 노년을 한계가 아니라 자각과 성장을 위한 기회로 보라는 권고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기원전에 쓰였지만 오랜 시간을 넘어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가르침 속에서 성숙한 노년을 향해 나아가기를, 그리고 고전에서 지혜를 찾는 이 즐거운 여정을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이정선 이라이프아카데미 연구원

동국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사와 작품연구를 강의하였다. 숭실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사회복지학 박사를 수료하였으며 초고령사회 보다 의미있는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기 위한 문화예술을 접목한 프로그램과 좋은죽음을 위한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에덴낙원의 기획실장 및 이라이프아카데미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