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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⑪ 이스라엘 노년의 디지털 소외현상
커피를 마시러 커피숍에 간다.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안내 문구가 눈에 띈다. “키오스크를 이용하세요.” 키오스크 앞으로 가서 안내에 따라 마실 커피를 주문한다. 복잡한 커피의 옵션들의 결정들을 완료하고 결재를 하러 ‘다음’을 누르자 적립 여부를 묻는 창이 나온다. 적립을 하지 않겠다고 누르고 결재를 하려고 하자 카드, 앱을 이용한 페이(Pay), 모바일 쿠폰 중 선택을 하라고 한다.
출처 : Gettyimagesbank ⓒJV_WONSUNG
아무리 살펴보아도 현금을 내는 방법이 없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점점 길어진다. 결국 눈치를 보다 결재를 포기하고 다시 뒤로 가서 줄을 선다. 줄을 한참 다시 섰다 내 차례가 다가와 기계 앞에 다시 섰는데, 기계의 오른편 위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그제야 발견한다. “현금계산은 카운터에서”.
현금 사용이 감소하는 사회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이다. 2024년 5월 한국은행에서 ‘화폐유통시스템 유관기관 협의회’를 개최하고, 최근 화폐 수급 동향 및 주요 특징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 중 주목할 만한 내용은, “현금사용선택권 보장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강화해 현금결제 거부가 당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키오스크로 대체되는 사회현상 가운데 현금결제가 가능한 키오스크 사용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출처 : Gettyimagesbank ⓒNanoStockk
기술이 노동력을 대체하는 사회에서 급격한 기술의 발달을 우리는 기술혁명, 특별히 디지털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혁명은 그 본질에 있어 가속화되고, 확대되고, 붕괴하면서 나아가지만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약한 요소들을 짓밟는다고 말한다.¹⁾ 여기서 소외계층이 발생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기서는 노년 계층이 집중적으로 소외된다.
출처 : Gettyimagesbank ⓒDragonImages
2022년 이스라엘 통계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65세 인구 중 컴퓨터를 사용하는 비율은 53%이고, 75세 이상은 42%로 떨어진다. 이스라엘 노인 중 절반만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이는 이스라엘 내 초정통파 유대인이나 아랍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디지털 세상은 노인층이 이에 대비하지 못한 상태로 남겨져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로부터의 소외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디지털 격차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으며, 이 격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디지털 문해력이다. 특히 노년층에서 두드러지는 이 새로운 문해력의 부족은 사회적 소외를 초래한다. 디지털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형태의 문맹으로 간주되며, 이는 비즈니스, 문화, 소비, 경제 전반에서 사회와의 단절을 경험하게 한다.
출처 : Wikipedia
미국의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 따르면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정의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135만 명으로 12%를 차지하는데, 이는 세계 인구의 29%가 노인인구인 것에 비해 적은 수치이긴 하다. 이 수치에 비해 이스라엘의 노년 세대는 디지털 격차가 많이 나는 국가이다. 왜 이런 디지털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일까? 전 세계 노년세대가 공통으로 겪는 인지적, 심리적 요인, 영어에 대한 이해 부족, 새로운 기술에 대한 보수적 시각,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들을 제외하더라도 이스라엘만이 가진 독특한 요인들이 이 격차를 점점 더 크게 벌어지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노년 세대 디지털 격차를 일으키는 요인을 살펴보면,
1. 정치적 요인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독립 선언을 기다리는 군중들 출처 : Wikipedia
이스라엘이 가진 독특한 인구 구조적 요인이 있다. 1948년 독립한 이후 그 땅에 남아있던 아랍계 인구들은 요르단을 비롯한 주변국으로 이주하였다. 반면 그 땅에서 벗어나지 않고 거주하기를 원했던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에 흡수되어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이 된 사람들이 있다.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겪은 아랍계 노년 세대들은 디지털 기술을 접하고 사용하는 일이 이스라엘 정부가 자신들의 개인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디지털 수단을 사용하는 일을 꺼린다. 그래서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와의 협력을 꺼리면서 디지털 격차가 더 벌어지는 요인이 된다.
2. 종교적 요인
출처 : Gettyimagesbank ⓒDimitrios Karamitros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가 공존하는 나라이다. 인구의 약 73%는 유대인으로, 이 중 45%는 세속적 유대인, 33%는 유대교를 전통으로 이해하는 유대인, 12%는 종교적 유대인이고, 10%는 초정통파 유대인으로 분류된다. 73%의 유대인구 안에서 세속적 유대인을 제외한 유대교에 기반을 두는 유대인이 55% 정도가 된다. 아랍계 인구는 전체의 약 21%를 차지하며, 주로 이슬람교도(약 18%)가 대부분이고, 기독교인(2%)과 드루즈교도(2%)도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이들의 지도자들인 유대교의 랍비, 이슬람의 카디나 샤이크가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제한한다면 그들의 신도들은 사회의 나머지 부분이 누리는 발전에서 사실상 소외될 수밖에 없다.
3. 재정적 요인
출처 : Wikipedia
이스라엘의 유대인 중 10%는 초정통파 유대인들(하레디, Haredi)이다. 이들의 삶은 전통적인 종교 규율을 엄격히 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정통 유대교 율법(할라카)에 매우 충실하며, 종교적 가르침을 중심으로 가족과 공동체 생활을 영위한다. 초정통파 유대인 남성들은 주로 토라와 탈무드 연구에 몰두하며, 많은 경우 세속적인 일자리보다는 종교적 학문을 중시한다.
따라서 이들의 재정수입은 아주 소수의 일을 하는 부류를 제외하고 대부분 정부보조금, 자선단체 및 공동체의 지원에 의존한다. 게다가 이들 공동체는 종종 도시의 특정 지역에 모여 살면서 외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터넷을 비롯한 현대적 기술의 사용이 이들 공동체에 해악이 된다고 여겨 금지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케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재정적 여유가 없는 이들의 노년세대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구입할 여력이 없다.
이스라엘에서 나타나는 디지털 소외 현상은 이제 그들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공동체적 가치를 재고하게 만든다.
כל ישראל ערבים זה בזה (Kol Yisrael Arevim Zeh Bazeh)
출처 : B'kavod - בכבוד 페이스북
"모든 이스라엘은 서로에게 보증인이다." 이 말은 유대 사회 내에서 서로 돕고 지원하는 것이 공동체의 통합을 촉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격차를 벌리고 있는 지금, 이 가치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호 책임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재고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שלום (Shalom)
출처 : Gettyimagesbank ⓒElena Lukyanova
유대인들이 서로 만날 때마다 나누는 인사로,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샬롬은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서, 공동체 내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통해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중요한 가치를 강조한다. 그래서 샬롬의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장벽을 초월하여, 진정한 평화와 상호 이해를 이루기 위한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 특히, 많은 노년 세대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 등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면서, 기술적 장벽이 생기고 이를 배우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소외와 배제가 만연하는 시대에 성경의 말씀은 여전히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로마서 12장 18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 말씀은 단지 갈등을 피하라는 것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도우라는 권면이다.
출처 : Gettyimagesbank ⓒJV_PHOTO
이 말씀과 같이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충분히 서로 돕고 함께할 수 있다. 기술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때, 그것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다.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이 곁에 있다. 그들은 기꺼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고, 함께 배우며 나아가야 한다. 서로의 짐을 덜어주며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참된 사랑의 실천일 것이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