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⑳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런던 밀뱅크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르네상스에서 근현대까지 영국 미술사의 정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세기 영국 풍경화의 대가 윌리엄 터너의 걸작들을 비롯하여 시대를 초월한 거장들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성스러운 미술의 성지,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미술관을 소개한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은 사실 이 칼럼 ‘작지만 아름다운’ 혹은 ‘덜 알려졌지만 위대한’ 미술관을 찾아간다라는 주제에 그다지 적절한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이유는 일단 규모가 상당히 크고, 사실상 꽤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방문으로 항상 붐비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출처 : Wikipedia
단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나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비한다면 일반인들에게 네임 밸류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리고 도심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밀뱅크) 때문에 짧은 기간만 런던에서 체류하는 방문객들에게 쉽사리 방문하기 어려운 미술관이기는 하다. 그리고 꼭 직관(야구 시합에서는 자주 쓰는 용어이지만)해야 할 작품들을 알려드리고 싶은 욕심으로 테이트 브리튼을 소개한다.
Sir Henry Tate(1819-1899) 출처 : tate.org.uk
테이트 브리튼은 영국의 꽤 유명한 설탕 제조업자였으며 각설탕을 만들어 대 부호가 되었던 헨리 테이트가 열정을 가지고 수집했던 소장품 65점을 국가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하면서 시작된 미술관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작품을 모두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여 새로운 미술관 건축을 결정했고 비용은 헨리 테이트가 부담했다.
1829년 밀뱅크 교도소 출처 : tate.org.uk
1897년 런던 외곽 밀뱅크지역 교도소를 사들여 미술관으로 개조하여 만든 것이다. 교도소였던 만큼 당연히 방이 많았고 당시 50개 정도의 전시실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이 미술관의 첫 이름은 밀뱅크 갤러리였다. 필자는 처음 방문하던 당시 교도소 이야기를 알지 못했고 너무 아름답고 시설들이 고급스러워서 귀족의 저택을 개조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32년 헨리 테이트의 이름을 붙인 테이트 갤러리로, 2000년 테이트 모던이 생기면서 테이트 브리튼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국 작가들의 작품들로만 가득하다. 윌리암 터너,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 토머스 게인즈버러, 존 컨스터블, 존 싱어 사전트, 호크니, 프랜시스 베이컨과 헨리 무어(한 방을 두 사람의 작품들로만 전시) 그리고 안토니 곰리 전시실 등 회화 작품 뿐 아니라 조각 작품들도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에 완공된 테이트 모던(Tate Modern) 출처 : tate.org.uk
현재는 국립 테이트 네트워크로서 총 4개 미술관을 영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최초 테이트 브리튼과 이어서 테이트 리버풀(1988년),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1993년) 그리고 2000년에 완공된 밀레니엄 브리지와 테이트 모던까지 4개의 미술관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런던에는 그중 2개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을 방문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헨리 테이트가 영국의 1840년대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왕립 아카데미의 젊은 화가들의 새로운 사조 ‘라파엘 전파’에 관심이 있어서 집중적으로 사들였던 그림들이 고스란히 이곳 테이트 브리튼에 전시되고 있다.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라파엘 전파의 주요 작품들이 거의 완벽하게 한 군데 미술관에 집중 전시되고 있는 것은 분명 헨리 테이트의 미술적 감각과 수집 노력 덕분이다.
테이트 브리튼의 라파엘 전파 갤러리(Pre-raphaelite gallery) 출처 : tate-images.com
이들의 그림은 ‘1814년의 방’이라는 전시실에 모두 전시되어 있는데 무심한 듯 그 중요한 작품들을 다닥다닥 위아래 3열로 걸어 놓은 것이 전혀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마치 오래전 할머니 집에서 좁은 집에 사진 액자를 벽 가득히 못질하여 걸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무슨 이유는 있겠지만 그 이유를 알게 되어도 전혀 이해는 못할 것 같다. 아쉽지만 라파엘 전파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에 따로 다뤄보기로 하겠다.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Self Portrait"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Self Portrait(1798) 출처 : tate.org.uk
영국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는 26세에 영국 로열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인정된 천재 화가였다. 그는 수 차례의 해외 여행을 통해 자신의 화풍을 넓혀 나갔고 특히 이탈리아에서의 긴 체류는 그의 화풍을 결정적으로 바꾸게 된다. 베니스에서 시작된 그의 빛과 안개와 바다의 몽환적 묘사는 후일 인상주의 사조의 모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어찌 보면 인상주의의 시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터너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비, 증기, 속도’와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는 런던 시내의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터너의 작품들은 그의 유언에 따라 국가에 기증되었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테이트 브리튼에 소장되게 되었다.
터너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테이트 브리튼의 Clore Gallery 출처 : tate.org.uk
여러 개의 전시실을 터너의 방이라 부르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터너 그림 배우는 부스도 따로 있었고 미완성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자화상은 터너가 가장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표현하던 24세에 그린 자화상이다. 승승장구하던 터너는 노년에 아무도 모르게 첼시에서 은거하며 혼자 쓸쓸히 죽었는데 주변에서는 그가 윌리엄 터너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현재 런던의 세인 폴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20파운드 지폐 후면에는 터너의 자화상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2020년 2월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터너의 자화상옆의 그림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전함 테메레르의 모습도 보인다.
존 싱어 사전트 John Singer Sargent "Carnation, lily, lily, rose"
John Singer Sargent, Carnation, lily, lily, rose(1885-1886) 출처 : tate.org.uk
미술 관련 책에서 아주 자주 볼 수 있는 극강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보자마자 입가의 미소가 바로 지어지고 유심히 구석구석을 둘러보게 만든다. 물론 이 그림의 제목을 알게 되면 너무 많은 궁금증이 생기는 작품이다.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처음에 사전트는 그림만 잘 그리는 것이 아니고 시인이었나? 할 정도였다. 이렇게 멋진 이름의 그림은 본 적이 없었다. 제목은 교회에서 많이 불려지는 [Ye Shepherds Tell Me]라는 노래의 마지막 후렴구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작년 이 칼럼에서 다루었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 편에서 존 싱어 사전트의 스토리를 다룬 적이 있다. 특히 그를 엄청난 비난으로 이끌었던 마담 X 초상화 사건으로 파리에서 도망치듯 런던으로 피신해 있던 사전트는 친구집에서 돌리와 폴리라는 친구의 딸아이들이 정원에서 미묘한 저녁노을빛을 받으며 중국식 등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겼다.
Carnation, lily, lily, rose의 스케치 출처 : tate.org.uk
이 작품은 그동안 사전트의 초상화 방식과는 달리 마치 인상주의 화가들이 야외에서 빛을 가지고 스케치 및 채색을 하는 것처럼 같은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에 계속 작업을 하여 약 2달간 스케치를 마쳤고 이후 거의 1년에 가까운 마무리 작업을 통해 완성한 작품이다.
초상화에 능한 사전트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분위기가 주요 표현소재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아름답고 예쁜 모습을 표현한 것은 역시 존 싱어 사전트다운 마무리였다. 처음에는 직사각형 캔버스였는데 마지막에 가로 부분을 60cm 정도 잘라내어 거의 정 사각형에 가까운 153cm x 174cm의 사이즈로 완성시켰다.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소개 영상 보기
윌리엄 터너 | 영국 미술의 500년을 만나다
존 싱어 사전트가 Carnation, lily, lily, rose를 그린 방법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