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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조각의 마술사라 불리는 조각가 박장근은 말했다. “제 목표는 저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완성해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지금 현실 속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꾸준히 작업을 해서 관객들도 만나고 전문가도 만나면서 저의 작품 세계를 완성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도 하루에 3번 밖에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미술 학원 같은 건 찾아 볼 수도 없는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교 진학 후 만나게 된 미술 선생님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분이셨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조각이라 는 예술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시골 아이에게 조각이란 무엇이며,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지 상세히 알려주셨습니다.
부활소망가든 자신의 작품 [긍휼] 앞에 선 작가
고등학교 때 강원도 도실기대회에 기대 없이 낸 작품은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미대 진학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절대자에 대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하는 나름 심각한 고등학생이었던 제게 당시 출석하던 시골 교회 목사님은 미대가 아닌 신학 대학 진학을 권하기도 하셨습니다.
인간 존재 규정에 대한 고민
길었던 청춘기의 방황 끝에 또래보다 조금 늦게 홍대 조소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학창 시절 인간을 테마로 한 작품들을 구상하며 ‘존재 규정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던 중 인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몸이야말로 다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부터 해부학을 비롯 오로지 인체 만을 집중적으로 파던 시기를 보냈습니다.
부활소망안식처 지하 1층에 놓인 박장근 작가의 [인생길]
지금은 그 시기를 지나 이제 개념적으로 인체를 해석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체를 재구성하거나 생략하는 변형을 적절히 구사해 극적인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평범한 손이 아닌 '기도하는 손'
부활소망가든의 부활교회 앞 [긍휼]이라는 작품(기도하는 손)도 평범한 손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기도와 순종, 찬양과 긍휼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긍휼]이라는 작품 뿐 아니라 에덴낙원의 모든 작업은 제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이사장이신 곽요셉 목사님과 에덴낙원의 준비 단계부터 여러 번 만나서 충분히 대화하며 큰 그림은 그릴 수 있었고, 우리 모두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창세기 말씀을 떠올리며 작품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박장근 작가의 작품 [긍휼]
잠결에 떠오른 아이디어
자세히 보시면 기도하는 손을 표현한 작품 [긍휼]과 그 앞에 세워진 [십자가]는 두 작품 모두 땅에서 시작되는 부분이 마치 진흙으로 빚은 듯 울퉁불퉁 거친 텍스처로 표현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진흙 반죽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하늘을 향한 기도의 손으로, 역시 거칠게 처리된 십자가 각 끝의 네 곳이 가운데 중심에서 반듯하게 만나는 형태의 십자가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 작품을 종일 생각하다 보니 잠결에 갑자기 구상이 떠올라 벌떡 일어나 스케치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십자가 앞에서 부활교회를 바라본 모습
기도하는 손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학창 시절부터 신체를 조각하고 공부하다 보니 실제 사람의 몸을 본을 떠서 그대로 조각을 해도 사람 몸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힘을 주는 정도와 근육에 따라 더 몸처럼, 더 사람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제와 담고 싶은 메시지에 따라 표현의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손 마다 각기 다른 표정이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이 담긴 손, 기도하는 손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큰 고민 이었습니다.
채석장에서 운명처럼 만난 청석
가장 최근에 완성된 [예수님의 빈 무덤] 또한 그렇습니다. 그간의 작품들과 달리 커다란 돌 무덤에서 예수부활의 메시지를 어떻게 발현해 낼 것인가, 이 또한 무거운 고민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묻고, 성경을 읽고, 자료를 찾으며 작가로서의 관점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가장 최근에 작업한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 선 박장근 작가
크고 좋은 자연석을 찾는 것 또한 관건이었는데 다행히 우리나라의 가장 큰 채석장에 가서 딱 마음에 드는 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덤의 문이 되는 큰 돌은 자세히 보면 푸른 빛이 도는 청석으로 상당히 귀한 돌인데 넓은 채석장에서 이 돌을 마주 하는 순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10년을 돌아보며
에덴낙원에서 첫 작품 의뢰를 받았던 게 어느새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부활소망가든의 [십자가]와 기도 하는 손 [긍휼]을 시작으로 부활교회 옆 기도하시는 예수님 을 표현한 [겟세마네의 기도], 안식처 1관에 놓여진 성경책 [The Bible], 온통 꽃으로 덮인 십자가 [샤론의 꽃, 예수], [예수님의 빈 무덤]까지 에덴에서의 작업이 쉼 없이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작품 의뢰를 처음 받았을 때는 막막하기도 하고 그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니 모든 게 은혜 안에서 순조로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식처 지하 1층, 작품 [The Bible]
좋은 공간에 자신의 작품이 놓인다는 것은 작가로서 분명 기쁜 일입니다. 저는 에덴에 방문할 때마다 제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유가족과 추모객을 보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넘어선 벅찬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장묘시설임에도 슬픔과 아쉬움 보다는 천국 소망을 믿고 기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의 예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인간 이후의 인간, 삶 이후의 삶에 대한 작가로서의 치열한 고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덴의 작업들을 통해 그 답을 어쩌면 조금은 얻은 것 같습니다.
박장근 조각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 대학원 조소과 졸업. 개인전 6회, 부스개인전 7회, 그룹전 초대전 등 130여 차례의 전시회에 참가 하였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천지부 지부장,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운영위원장을 맡고있다. 인간의 존재와 실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사유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사 조각을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