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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여기에 묘지가 있네. 왜 집 보러 왔을 때 여기까지 확인하지 못했을까. 아무리 후회해봐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집을 계약하고 이사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식구들과 주일 낮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생각지도 못한 장소 방브 묘지(Cimetiere de Vanves)에서 우리 부부는 깜짝 놀라 발을 멈추었다. 1992년 당시, 스마트폰도 구글맵도 없고 네이버 길찾기도 없었기에 우리는 주변 1km밖 지형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방브 묘지(Cimetiere de Vanves) 출처 : 작가 제공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사람들이 무척 많이 모여 도시 공원처럼 산책도 하고 아기들 유모차도 끌고 다니고 심지어 피크닉하며 바게트빵도 먹고 즐겁게 주일 오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다름아닌 묘지에서... 이건 프랑스 파리로 유학 온 우리 식구들이 맞은 첫 번째 문화 쇼크였다.
당시 한국에서 우리는 무덤이 있는 곳, 심지어 공동묘지라 불리던 곳은 사는 것도 근처에 가는 것도 꺼려했는데 파리 시민들은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가족 나들이를 하는 공원처럼 묘지를 다니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1-2년쯤 지나니 조금씩 그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사고에 대해 저절로 이해하고 동화될 수 있었다. 우리는 내려오는 전설이나 동화들 모두 사람이 죽어 무덤에 묻히면 그 때부터 귀신이 되어 소복을 입고 피를 조금씩 흘리며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무섭게 울부짖는다는 내용이 많고 그런 영화와 드라마들 때문에 '무덤은 항상 무섭다'라는 확고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달랐다. "우리 엄마 아빠가 이 곳에 묻혀 있는데 뭐가 무섭다는 거지?"라며 의아하게 나를 보던 동료들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페르라셰즈 묘지(Père-Lachaise) 출처 : expedia.nl
파리 시내는 정말 넓지 않은 공간을 아주 오밀조밀하게 잘 활용하고 있었다. 자동차를 주차할 장소가 많지 않고 주차비는 상상 초월 비싸기만 해서 거의 대중교통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을 하게 된다. 아마 파리의 시민들은 좁은 도시 안에서 부모나 친척들의 죽음을 멀리 수 십 km 떨어진 곳이 아닌 집 근처, 동네 어귀에 모시고 싶어했나 보다. 그들은 가족들의 장례 후 1년에 한 두 번, 먼 길 가서 만나기 보다 수시로 집 근처 묘지나 납골당의 장묘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파리에서 7년간 거주하며 TV광고를 제작하는 "CLAP 35"라는 프로덕션을 운영하였다. 수많은 장소에서 CF 촬영을 하였고, 특히 한국 광고주 제품을 촬영할 때는 주로 파리의 유명 관광지로 알려진 곳에서 많은 촬영을 하였다. 도시 한 켠의 공동묘지들이 무섭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것에 익숙해졌다. 몇 년 뒤 필자도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산책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유명 인사들이 묻혀진 꽤 큰 공동묘지에 찾아가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속에 무서운 귀신들이 나타나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몽빠르나스 묘지(왼쪽)와 몽마르뜨 묘지(오른쪽) 출처 : paris.fr, Wikimedia commons
파리에는 시민들이 꽤 자주 찾아가는 유명 공동묘지가 세 군데 있다. 파리 20구의 페르 라셰즈 묘지, 14구의 몽빠르나스 묘지 그리고 18구의 몽마르뜨 묘지이다.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시미티에르 드 방브는 유명 묘지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동네에서 나를 무척이나 감동시켰던 곳이다.
페르라셰즈 묘지(Père-Lachaise) 출처 : Wikimedia commons
이 중에서 으뜸으로 사람들이 찾아가는 페르라셰즈 묘지는 무려 220년 전에 만들어진 공동묘지다. 나폴레옹 1세가 라셰즈 신부(Pere Lachaise)에게서 사들인, 수도원의 수도승들을 위한 무덤을 일반 파리 시민들을 위한 공동묘지로 개방한 곳이다. 지금은 파리 20구 근처 멋진 숲과 경관으로 사람들이 쉽게 찾는 곳이지만 개방 당시 파리 중심에서 너무 멀다고 이곳에 묻히는 것을 원하는 수요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극작가 몰리에르와 라 퐁텐의 묘를 이장하면서 유명 인사들이 하나 둘 이곳에 장지를 정하기 시작했다.
페르라셰즈 묘지에 있는 몰리에르의 묘 출처 : Wikipedia
현재는 7만개의 개인 무덤과 2만 5천개의 개인 혹은 가족 유골함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묻힐 수 있는 조건은 그리 까다롭지도 않다. 파리에서 거주한 파리시민이면 가능하다. 하지만 끝없이 묘와 납골당 면적을 늘릴 수는 없으므로 5년, 10년, 30년~100년 등 계약에 따른 기간별로 운영되며 연고자가 3년 이상 연락이 두절되어 계약 연장을 하지 않으면 묘지에서 유골을 회수하여 공동 유골장에 합장한다. 매장됐던 땅은 2년의 정비 기간 뒤 다시 재분양하는 방침을 갖고 있다. 대부분 유족 1-2세대가 지나면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고 방치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023년 4월 미술관 강의로 처음 이천 에덴낙원을 방문했던 필자는 너무 아름다운 장묘 문화와 시스템 그리고 한 시간의 방문이 아닌 하루 정도 머물며 가족들과 고인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숙박시설을 보고 감탄을 하였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도 그 시작은 멀고 스산하다고 파리 시민들의 관심 밖이었지만 결국 그 가치를 확인받게 된 것처럼 에덴낙원도 새로운 장례 문화의 시작이 되어 삶과 죽임이 마주한 곳, 모든 사람이 기쁘게 안식할 수 있는 곳이라는 그 특별한 가치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페르라셰즈 묘지 가이드 영상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Paris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 저서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감독] 등이 있으며, 현재 에덴미디어에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런 멋진 미술관이 있었군요'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