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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4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15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15

애플 광고 ‘Fuzzy feelings’


3분 내외의 짧은 광고 안에 기발한 아이디어와, 범접할 수 없는 따뜻함이 담겨있는 애플의 광고 'Fuzzy feelings'를 살펴보자


개인적으로 매년 성탄절과 연말이 있는 12월엔, 애플의 홀리데이 시즌 광고를 기다리게 된다. 자사 제품을 슬쩍 끼워 넣는 상술이 얄밉기는 하지만,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이니만큼,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



애플의 광고 'Share the joy'의 스틸컷


2022년에 나온 ‘Share the Joy’를 보자. 12월이지만, 눈이 오지 않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녀가 에어팟으로 음악을 공유하며 춤을 추기 시작하자, 손대는 것들은 모두 눈으로 변한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영상이 있는가 하면,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것 같은 완결성과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들도 있다.




애플의 광고 'The surprise'의 스틸컷


2019년에 발표한 ‘The surprise’를 보자.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이한 가족이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한다. 반가움도 잠시, 최근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들을 돌보느라 힘겨워하고, 두 손녀는 할머니의 유품을 강아지와 노는 데 쓰는 철부지들이다.



애플의 광고 'The surprise'의 스틸컷


이야기의 반전은 두 개구쟁이가 가족 앨범의 사진들을 디지털로 옮기고 거기에 그림과 코멘트를 더한 사진첩을 보여주면서부터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결혼을 하던 모습부터 손녀들이 태어나기까지의 가족사가 펼쳐지다가, 오늘 찍은 가족사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함께 하는 마지막 사진에선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애플의 광고 'Fuzzy feelings'의 스틸컷


2023년, 올해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광고 ‘Fuzzy feelings(모호한 감정)’을 내놓았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세계 속 주인공은 중년의 백인 남자다. 구세군 냄비의 동전을 집어갈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인 남성은 눈길에 넘어지고, 자동차 사고를 겪는 등 온갖 불운을 겪는다.




애플의 광고 'Fuzzy feelings'의 스틸컷


장면이 바뀌어 현실 세계로 넘어오면, 주인공은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 스톱모션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는 평범한 직장인 흑인 여자다. 그녀는 직장 상사와 갈등을 겪을 때마다 상사를 닮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곤경에 빠트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해 온 것이다.



애플의 광고 'Fuzzy feelings'의 스틸컷


어느 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상사는 그녀를 포함한 동료 모두에게 손수 뜨개질한 겨울 의류를 선물한다. 주인공은 선물을 받고 당황하는 한편, 퇴근하다 식당에서 홀로 쓸쓸히 밥을 먹는 상사를 목격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고민 끝에 주인공은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에게 불운이 아닌 선물을 주기로 결심한다. 선물 받은 양말로 강아지를 만들어 준 것이다. 연휴가 끝난 후, 출근한 직장에서 그녀가 홀로 앉아 식사하는 상사에게 다가가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작은 편견이 큰 벽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이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선의가 필요함을 현실과 가상 세계를 오가는 짧은 이야기 속에 담담하게 풀어냈다. AI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는 2023년의 마지막에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광고를 제작한 점이 눈에 띈다.



'Fuzzy feelings' 메이킹 필름   출처 : Apple 공식 유튜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인형과 배경을 물리적인 소재로 만들고, 이를 1프레임씩 움직여가며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1초가 24프레임이니, 1초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선 애니메이터가 인형의 움직임을 24번이나 바꿔줘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워지는 겨울 연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임을 전하려는 애플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Share the Joy”




“The surprise”



“Fuzzy feelings”



“Fuzzy feelings” 메이킹 필름



김경모 작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하였다. 목원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의했다. EBS 애니메이션 시리즈 ‘미스테리야’의 스토리를 집필했으며, 현재 제주에 머물며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