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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3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가족 구성1

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②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가족 구성1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홀로코스트의 공포에서 살아남았고, 그들 대부분은 삶을 재건하고, 가족을 꾸리고, 경력을 쌓고, 노년에 이르렀다. 생존자들이 가진 성취는 그들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며 어려운 물리적 상황에서의 생존 기술은 그들이 노화의 도전에 직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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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들이 노인 세대가 되어서 겪는 사회적 지위의 상실, 신체적 질병들, 탈진, 타인에 대한 의존, 가족 친척의 상실과 같은 노화에 따라 겪게 되는 일상적인 경험들은 홀로코스트 경험과 겹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어 매우 힘들 수도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부분에 있어서 광범위한 적응력을 보여준다. 이들은 적응력과 회복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비슷한 상황의 기억들이 있을 때 이를 피하려는 시도와 같은 비정상적 스트레스 상황이 늘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 1991년 있었던 이스라엘-이라크 간 1차 걸프 전쟁의 경우에서 실제로 화학무기가 사용의 가능성이 대두 되었을 때 많은 생존자들이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특별히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이들은 현재의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생존자들이 가진 사회 적응을 위한 빠른 회복력, 이와 반대로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취약성 등이 세대 간으로 전달되는 것인가? 가족 중심적 사회에서, 특별히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가족으로 두고 보살피는 세대들의 모습들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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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고령화, 그 자녀의 성숙과 손자녀들의 출현에 따라 가족 구성원의 역할과 상호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일반적 상호관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생존자가 가진 트라우마가 전달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생존자들의 경험 이후 겪게 된 막대한 트라우마의 영향이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평생 전달 되는 것이다.


심지어 가족들에게 전달된 이 트라우마는 산모를 통해 아이에게도 호르몬 및 대사 과정에 영향을 줄 여지가 있다. 또한 생존자들이 가진 독특한 애착 패턴이 양육 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트라우마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 되었고, 그렇게 가족들 모두가 불안해 하게 되고 특별히 부모와 강한 동일시를 보이는 아동의 경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트라우마들이 왜 세대 간에 전달되게 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이 트라우마가 세대를 거치면서 전달되는 이유가 트라우마의 양이 엄청나서가 아니라 트라우마와 그 영향을 성공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생존자들은 홀로코스트 이후에 만들어진 가족을 삶의 중심으로 보고 대부분은 그 안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이에 대해 여러 사례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는 이들이 가진 트라우마를 과거의 고통의 삶을 발판 삼아 행복의 삶으로 감정의 긍정적 전환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트라우마의 세계와 그 이후의 세계 사이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것인데 트라우마의 세계를 잘 구획화하여 나눔으로 현재로 나아가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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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연구에서는 많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홀로코스트 이전 적어도 몇 년의 시간 동안 가족으로부터 긍정적인 애착 패턴을 받았고, 이는 트라우마를 겪고 난 이후에 트라우마를 대처하고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적극적으로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공감과 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 이는 트라우마의 영향을 억제하고 기억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편 생존자들이 현재의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트라우마와 대부분 관련이 있다고 믿는 상황과 오히려 과거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일반화를 피하는 상황들도 발생한다. 전자의 경우 너무 트라우마가 강해 그것을 함께 감당하는 가족들이 많이 힘들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홀로코스트와 트라우마의 부분적 관련성을 간신히 파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들은 적극적으로 트라우마와 함께 싸우거나 오히려 없었던 일과 같이 회피하거나 혹은 아예 적응에 실패해 가족 관계가 깨지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차이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생존자가 경험한 유형, 그가 확립한 가족 구조,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발달 단계, 문화적-사회적 변화 등의 요인에 따라 다르게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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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노년사회는 홀로코스트-독립-전쟁-인티파다와 같은 국내 테러로 이어지는 아픔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세대들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트라우마와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 겉으로는 참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나 속속들이 살펴보면 그 안에서 멍들고 지쳐있는 공동체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가족들은 간접경험을 통해 함께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공유하며 살아간다. 크고 작은 아픔의 경험은 이스라엘 사회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기도, 혹은 엇나가게 하기도 한다. 그 시작 지점인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그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살펴보는 것은 이스라엘 노년사회의 삶을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첫걸음이자 중요한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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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친구의 초대로 유대인 가정의 유월절 만찬에 참여하게 된 적이 있었다. 아주 긴 테이블에 가족들이 모여 유월절 예식을 하고 밥 먹기 전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할머니께서 홀로코스트 시기 이전에 폴란드에서 경험했던 유월절 만찬의 행복한 기억과 전통을 이야기해 주었고,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유월절 만찬을 나누지 못해 숨어서 힘들게 빵을 먹었던 기억도 공유해 주었다.


외국인인 내가 잘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면서도 그 기억들을 담담하게 설명해 주셨다. 초등학교 남짓 한 손자녀들은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밥은 언제 먹냐며 할머니를 재촉하며 온 가족을 웃게 만들었다.


이날 나는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온 가족이 감당하면서 함께 경험을 공유하며 더 단단한 가족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이야기하는 '효'의 개념이 이스라엘에서는 아픔의 공감과 공유를 통해 부모세대를 이해하고 함께 극복하며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