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검색
⑫ 노튼 사이먼 미술관 (Norton Simon Museum)
램브란트, 고야, 드가, 피카소.. LA 패서디나에 위치한 노튼 사이먼 뮤지엄은 오랜 시간 수집된 개인 미술 소장품들이 모여있다.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현대 작품들이 추가되고 있으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 멋진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야외공원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미술관이다.
Norton Simon Museum 전경 출처 : wikipedia
노튼 사이먼 미술관(Norton Simon Museum)은 로스앤젤레스를 찾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방문을 권하고 싶은 고품격 박물관이다. 규모에서 그렇게 많은 수량은 아니지만 다수의 조각 작품들 보유하고 있는 이곳은 박물관이 맞다.
대부분은 미술 애호가들의 원픽은 LA에서 대부분 게티 센터(The Getty Center)외 게티 빌라(The Getty Villa)일 것이다. 취향에 따라 한 곳만 선택해야 한다면 필자는 단연 노튼 사이먼 박물관을 그 한 곳으로 선택할 것이다.
노튼 사이먼 미술관의 평면도 출처 : 공식 홈페이지 www.nortonsimon.org
이 미술관은 정확하게는 LA가 아닌 인근 북쪽의 패서디나 Pasadena라는 작은 도시에 소재하고 있다. 학군이 좋고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LA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조용한 소도시다.
유대계 거부였던 노튼 사이먼(1907-1993)이 기존 Pasedena Art Museum에 재정 지원을 맡게 되면서 이 박물관의 이름이 Norton Simon Museum으로 바뀌었다. 소장품의 개수로도 만만치 않은데 1만점이라는 숫자보다도 그 면면의 탁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노튼 사이먼 뮤지엄의 모딜리아니 작품 앞에서 작가와 아내 출처 : 작가 제공
로댕의 작품들이 반겨주는 야외 조각공원
이 미술관에 도착하면 주차장에서 본관으로 향하면서 야외 조각 공원의 위용에 깜짝 놀랄 것이다. 워싱턴 국립 미술관이나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것과 견줄 정도의 크고 작은 멋진 작품들을 갖고 있다.
노튼 사이먼 미술관 조각공원의 평면도 출처 : www.nortonsimon.org
로댕의 작품들을 통과하다가 ‘칼레의 시민들’ 작품을 보면 마치 스위스 바젤 쿤스트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서 정문 앞까지 걸어가며 느끼는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미술관들은 규모에 따라서 조각공원을 자그마하게 혹은 거대하게 꾸며 놓기도 하는데 사실 입구에서 정문까지 이동하면서 그 미술관의 정서와 추구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미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
로댕의 작품들은 정말 전 세계 중급 규모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한 두 개 정도는 쉽게 만날 수 있다. 로댕이 엄청난 다작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석고 거푸집을 이용하여 청동 작품 최대 12개까지만 오리지널 시리얼 넘버를 부여하는 프랑스 법령에 의거, 현재 칼레 시청에서 볼 수 있는 작품부터 서울의 로댕 갤러리에 설치된 12호(1995년)까지가 오리지널 번호를 부여 받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많은 작품이 동일한 거푸집에서 양산이 되었으나 12호에 들지 못했을 뿐 동일한 거푸집에서 나온 동일한 작품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The Burghers of Calais, 1884-95,
Bronze 출처 : www.nortonsimon.org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당시 영국의 도버와 가장 근거리였던 프랑스 북쪽의 항구 도시 칼레는 양국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적 도시였다. 중간의 전쟁 상황은 지금 길게 이야기하기 어렵고 결국 영국 에드워드 3세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칼레시를 점령하며 칼레의 주민들을 모두 학살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양국의 많은 충고와 제안 속에 만약 칼레 시민 대표 6명이 칼레시를 대표하여 참수형을 자처한다면 전체 주민 말살은 취소한다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누가 그럼 칼레시의 안녕을 위해 내가 죽겠소하고 나서겠는가?
다행히 부유층 인사 중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라는 사람이 나서고 시간은 좀 더 오래 걸렸지만 총 6명의 대표가 역할을 맡겠다고 나섰고 이들은 약속대로 목에 줄을 매고 모자를 쓰지 않고 포대자루 같은 옷에 신발을 신지 않고 에드워드 6세 앞에 도열했다. 마치 영화처럼 에드워드 3세의 왕비가 곧 태어날 왕자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불편하다고 왕에게 사형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고 6인의 시민 대표는 참수를 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일은 두고 두고 프랑스 쪽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사례로 신화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때 6인의 시민 대표를 칼레 시의 의뢰로 로뎅이 작품으로 만든 것인데 칼레 시민들이 원했던 영웅적인 모습과 늠름한 기상을 전혀 볼 수 없었고 착잡하고 불안해하며 모여 있는 군상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작품 자체를 수령하기 거부했고 이 작품은 한 동안 시청 앞에서 전시되지 못하고 인근 공원에 설치되기도 했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접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전형적인 이야기고 다른 버전을 소개하면 이런 방식의 승리국의 군주 앞으로 목에 줄을 매고 참수 행렬이 지나가면 승리국 군주는 아량을 베풀어 참수를 중단 시키고 풀어주는 의례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며 칼레에서도 역시 어느 정도 퍼포먼스를 에드워드 3세 왕 앞에서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장 푸르아사르라는 연대기 작가의 작품에 의거하여 영웅적 스토리로 현재까지도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확실한 심벌로서 인용되는데 필자의 생각으론 그냥 이 이야기는 신화로서 그대로 남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4세의 어린 발레리나
노튼 사이먼 박물관을 처음 찾았던 이유는 유럽 밖의 미술관 중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지인의 추천 때문이었다. 파리의 오르세를 비롯하여 수 많은 미술관을 다니며 배운 Tip중 하나는 전시실 중 유독 조명이 낮게 잡혀 있는 곳은 백발백중 드가의 그림이 전시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드가의 작품 중 상당 수가 파스텔 작품이기 때문에 낮은 조도에서 작품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드가는 인상주의 초창기 화가 중 한 명으로로 알려졌지만 본인은 그 부분을 거부한다. 자신은 화실 밖의 태양광 아래 작업을 즐기지 않고 오히려 사실주의나 부분적으론 낭만주의 화풍을 그리는 화가라는 것이다.
Little Dancer, Aged Fourteen
Modeled 1878–81; cast after 1936 출처 : www.nortonsimon.org
또한 드가는 조각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중 70-80%를 상회하는 소재가 발레, 발레리나, 그리고 경마장이다. 특히 그의 말년 시력의 저하로 붓으로 작업이 어려워졌을 때 손의 감각 만을 위주로 조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특히 14세 발레리나 소녀 작품은 전 세계 미술관에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28개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가가 사망한 이후 밀랍으로 만든 조각상을 거푸집을 만들어 청동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밀랍 원본은 현재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가면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기존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조각에 발레복을 입히고 긴 머리를 묶는 머리 리본까지 달려 있다는 것인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옷과 리본은 새로운 것으로 갈아 입히고 있다.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마다 1층 아트숍에 가면 미니어쳐로 사이즈를 조정하여 다양한 사이즈의 조각상을 구입할 수 있는데 필자도 이곳에서 구입하여 지금도 책상 옆 장식장 위에 두고 가끔씩 바라본다. 전문적인 관리를 못해서 발레복과 리본이 색이 바랬지만 그냥 방치하고 있다.
이 어린 발레리나 Mary Van Gothem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는데 한번 읽어보면 여러분도 이 미니어쳐 조각상을 사지 않고도 못 배길 것이다.
공식 홈페이지 바로 가기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