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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2

에덴클래식 #28 그리운 사랑이 담긴 클래식


베토벤, 연가곡집 “멀리 있는 연인에게” Beethoven, “An die ferne Geliebte”, ein Liederkreis von A. Jeitteles Op.98



나의 천사, 나의 전부, 나의 분신이여.

오늘 몇 자 적고자 연필을 들었다오.

------ (중략)


잠자리에 누워서도 온통 그대 생각뿐이오.내 불멸의 연인이여.

때론 기쁜 추억 때론 슬픈 추억, 운명의 끈이 우리를 다시 이을 때까지.

그대와 함께 하는 삶만이 나에겐 유의미할지니.

------ (중략)


그대는... 내 삶의 전부이자.

나의 모든 것이라오.

그럼, 이만.


끝없는 그대의 사랑을 바라며.

영원히 그대의 것, 영원히 나의 것... 영원히.


- 1812년 7월 7일,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이미지 출처 : pixabay


1827년 3월 29일, 3일 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베토벤의 장례식이 약 2만 명이 운집한 빈 Wien 광장에서 성대하고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베토벤의 유품을 정리하던 제자 안톤 쉰들러는 책상 서랍 속에서 유서 한 장과 편지 3통을 발견했다.


귓병이 심해져 요양차 머물렀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1802년(당시 32세) 작성한 유서와 수취인이 없이 ‘불멸의 연인에게’ 쓴 편지 3통이었다. 1812년(당시 42세) 7월 6일에서 7일까지 이틀에 걸쳐 쓴 편지는 결국 부쳐지지 못한 채 서랍 깊숙한 곳에 간직되어 있었다. 누구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였을까?



오스트리아 빈의 베토벤 광장.  동상 뒤로는 비엔나 콘체르트 하우스가 보인다.         출처 : wikipedia


수많은 베토벤 연구가들이 그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했으나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베토벤 주변에는 ‘불멸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인들이 몇 명 있었다.


‘월광소나타’를 헌정한 줄리에타 귀차르디(Juilietta Guicciardi, 1784~1856)에게는 구혼까지 했으나 신분 차이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고, 피아노 제자였던 헝가리 귀족 가문의 요제피네 브룬스빅(Josephine Brunsvik, 1779~1821)에게도 열렬히 구애했지만 그녀도 결국 귀족의 아내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줄리에타 귀차르디(Julie Guicciardi, 1782- 1856)   출처 : wikipedia



  요제피네 브룬스빅 (Josephine Brunszvik, miniature drawn by pencil, before 1804)   출처 : wikipedia


요제피네의 언니인 테레제(Therese Brunsvik, 1775~1849)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헝가리 최초 보육원을 건립한 여성으로, 베토벤을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베토벤은 동생 요제피네에게 더 마음이 갔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명의 유력한 ‘불멸의 연인’의 후보자는 프랑크푸르트 상인 아내인 안토니 브렌타노(Antonie Brentano, 1780~1869)이다. 1810년에 빈으로 이주해온 브렌타노 부부는 당시 40세의 저명한 작곡가 베토벤과 친밀하게 지냈고, 15살 연상의 남편과 4명의 자녀를 둔 30세의 젊은 여인 안토니는 베토벤을 진정으로 사랑해 청혼하기도 했다. 베토벤 역시 내적으로 안토니를 사랑했으나 남편 브렌타노와도 친밀한 사이였기에 둘 사이의 관계는 더이상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안토니 브렌타노(Antonie Brentano, 1780- 1869),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1812년 브렌타노 부부가 빈을 떠나게 되어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을 맺게 되었다. 베토벤은 안토니가 떠난 후 일기장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복종, 운명에 대한 철저한 복종만이 신에 대한 봉사로 이끌 수 있다. 오! 신이시여!, 나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힘을 주십시오. 또한,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A와의 모든 관계는 끝이 났습니다.”


안토니 브렌타노와 헤어진 후에도 베토벤은 항상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하다. 5년 후 우연히 만난 안토니의 딸 막시밀리언에게 피아노 소나타 30번을 헌정하였고, 1820년에 작곡한 ‘디아벨리 변주곡 Diabelli Variations’은 안토니 브렌타노에게 헌정했다.


베토벤은 비엔나에서만 30번 이상 이사를 했음에도 안토니의 작은 초상화와 ‘불멸의 연인’에게 쓴 편지는 항상 가지고 다녔다. 1816년에 작곡한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 An die ferne Galiebte’ 또한 안토니 브렌타노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베토벤 연구가들도 많다.


빈에서 가까운 도시 브륀(Brünn, 현 지명 Brno)에 콜레라 전염병이 돌 때 헌신적으로 치료에 나선 젊은 의학도 야이텔레스(Aloys Jeitteles, 1794~1858)에게 베토벤이 격려의 편지를 보내자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답례로 연작시를 베토벤에게 보내왔다. 총 6편으로 구성된 ‘멀리 있는 연인에게’는 구구절절 애원과 탄식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을 향한 그리움을 토로한 작품이다. 베토벤은 바로 작곡에 착수해 1816년에 출판했다. 안토니 브렌타노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야이텔레스의 시어를 빌어 음악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Title page, first edition        출처 : wikipedia


제 1곡 언덕 위에 앉아 바라보네


“언덕 위에서 노래하면 멀리 있는 연인에게도 노래가 전해지리라”는 내용으로 상당히 느리게 표정을 담아 노래한다.


제 2곡 산들이 푸르른 그곳


“연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애타는 사랑과 함께 내면의 고통으로 빠져든다”는 심정을 조금 빠른 템포로 약간 불안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 3곡 하늘 높이 나는 돛단배야


“구름이여, 바람이여, 작은 시냇물이여,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다오. 그리고 나의 심정을 그녀에게 전해다오”라는 내용으로 들뜬 마음으로 생기있고 빠르게 노래한다.


제 4곡 높은 곳에 있는 구름아


“구름, 작은 새, 서풍은 그녀를 만난다. 시냇물도 그녀를 보거든 그 모습을 담아 돌아 흘러오라”는 내용을 너무 빠르지 않게, 즐겁고 풍부한 감정으로 표현한다.


제 5곡 오월이 돌아오고 목장엔 꽃이 피네


“5월이 오면 들에는 꽃들이, 하늘에는 제비들이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엔 봄이 찾아오질 않고 남는 것은 눈물뿐”이라는 내용으로 비바체의 빠른 템포로 사랑의 즐거움을 노래하다 느리고 비통하게 끝을 맺는다.


제 6곡 그곳에 보내주렴, 이 노래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를 위한 이 노래를 받아주길. 그때 우리의 사랑이 거룩하게 연결되리”라는 내용으로 조용히 풍부한 감정으로 아름답게 노래한다.



‘멀리 있는 연인에게’는 전 6곡 연주시간이 1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연가곡이지만 형식이나 내용, 선율의 아름다움은 베토벤의 다른 기악곡에 뒤지지 않으며, 역사상 ‘최초의 연가곡집’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훗날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슈만의 ‘시인의 사랑’ 등 걸작 탄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빈 중앙묘지에 있는 베토벤의 무덤     출처 : pixabay


20대 초반의 젊은 시인이 쓴 연작시를 바탕으로 ‘멀리 있는 연인에게’를 작곡했을 때 베토벤은 46세였다. 그때까지도 ‘불멸의 연인’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나, 아마도 당시의 베토벤에게 ‘멀리 있는 연인’은 공간적인 거리가 아니라 젊었을 적 앓았던 열병에 대한, 즉 시간적으로 멀어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연주곡 들어보기


1.  베토벤,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


디트리히 휘셔-디스카우(바리톤), 제랄드 무어(피아노) (한글 자막)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 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