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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1720년 쾨텐에서 작곡했다. 당시에는 연주곡으로 취급받지 않았지만, 이런 형식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곡은 당시에는 특별히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 1903년 요제프 요아힘에 의해 처음으로 연주 레퍼토리로 사용된 이후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의 필수 덕목으로 취급받으며 많이 연주되고 있다.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6곡)
Bach, 6 Sonatas and Partitas for Solo Violin, BWV 1001~1006
오랜 직장생활에서 은퇴한 후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이 많다. 간혹 드럼을 치거나 팬플루트, 하모니카를 불기도 하지만 색소폰을 배우는 친구들이 절대다수인 것 같다.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붙으면 유튜브에 올려 연주실력을 자랑해 보기도 하나 내게는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오질 않았고, 그들을 따라서 배우고 싶은 욕망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얼마 전 만난 한 후배의 경우는 달랐다.
2년 전에 은퇴한 그 후배는 오래전 딸에게 사준 바이올린이 놀고 있기에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년 정도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보케리니의 미뉴에트를 연주할 수준이 되었다고 했다. 물론 아직 자기만족 수준의 연주실력이라고는 했지만 부러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였으나 가까이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음반이나 연주회장에서 감상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했던 바이올린을 60세가 넘어 배우기 시작한 용기와 열정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17세기 초에서 18세기 중엽까지 약 150년간을 일반적으로 바로크 음악 시기라고 부른다. 서양 고전음악의 체계가 확립되면서 가장 많은 작품이 작곡되었던 시기로, 종교음악이나 오페라 등 성악곡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나 협주곡이나 실내악 등 순수 기악곡들도 많이 작곡되었다. 피아노가 등장하기 전인 바로크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악기는 바이올린이었다.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바이올린은 비올(Viol, 비이올린과 비슷한 모습의 5~7개 현으로 된 15~17세기 유럽의 현악기)이나 류트(Lute, 만돌린 모양의 발현악기, 16세기~18세기 유럽에서 유행) 등과 같은 이전의 현악기에 비해 구사할 수 있는 음역音域이 넓었을 뿐 아니라, 울림이 명료하고 강렬했기에 마치 소프라노가 오페라에서 주역을 담당하듯 바로크 시대의 실내악이나 관현악곡에서는 대부분 바이올린이 주인공 역할을 맡았고, 중간 음역의 비올라나 저음역을 담당하는 첼로는 반주 악기로서의 성격이 짙었다.
울림이 강렬하고 고역이 매끄러우며, 매혹적인 음색을 지녔지만, 피아노나 기타와 달리 한 번에 한 개의 음만을 울리는 단선율 악기인 바이올린 하나만으로 연주하는 곡을 듣는다는 것은 마치 반주 없이 노래 부르는 것처럼 어색하고 따분할 수도 있다. 서양 고전음악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고전주의 시대 대표적인 음악가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물론, 대부분의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반주가 붙지 않은 바이올린 독주곡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보다 한 세기 이상 이전에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받는 바흐는 무려 6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을 남겼다.
그리고 그 독주곡들은 ‘바이올린 음악의 성서’라 불릴 만큼 최고의 명곡으로, 모든 바이올리니스트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최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불멸의 작품으로 남아있다. 각각 4개에서 7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6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은 전체 연주 시간이 2시간가량 소요되는 대작이나 결코 어색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구성적으로 완벽함을 갖추고 있으며, 바이올린 하나로 다성음악인 푸가를 연주해야 하는 난도 높은 기법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독주 바이올린의 기품 있고 서정적이며 때론 화려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선율은 듣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숙연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몰입감에 빠져들게 한다.
Johann Sebastian Bach (1748) 출처 : 위키피디아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1717년(32세)에 바이마르 궁정에서 쾨텐 궁정의 악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음악을 좋아하는 23세의 젊은 영주가 지배하고 있던 칼벵파의 쾨텐 궁정은 복잡한 가톨릭의 교회음악을 금지했기 때문에 바흐는 이 시기에 세속적인 기악곡을 많이 작곡할 수 있었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무반주 첼로 모음곡’ 그리고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등 바흐 기악곡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고금의 모든 독주곡 중 최고의 걸작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독일 쾨텐의 바흐 하우스 출처 : 위키피디아
그렇지만 18세기 초엽 바흐의 위상은 작은 도시 쾨텐의 궁정악장에 불과했기에 그의 걸작들은 많이 연주되지 못한 채 오랜 세월 묻혀있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리스트 카잘스가 1889년 서점에서 우연히 악보를 발견할 때까지 무려 170년 가까이 잊혀 있었고,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역시 바흐가 사망한 지 50년이 지난 후인 1802년에 최초로 악보로 출판되었다.
이후 몇몇 작곡가들이 연구하거나 편곡한 기록은 남아있으나, 공개적으로 전곡이 연주된 것은 출판된 지 100년이 지난 후인 1903년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하임에 의해서였다. 이후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라면 평생을 통해 연구하고 연습해야 할 필수 연주곡으로 자리매김했다.
Joseph Joachim (1903) 출처 : 위키피디아
총 6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은 소나타sonata 3곡과 파르티타partita 3곡으로 구분되어 있다. ‘소나타’ 3곡은 모두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2악장은 모두 다성음악 형식인 푸가(fuga, 하나의 성부(聲部)가 주제를 나타내면 다른 성부가 그것을 모방하면서 대위법에 따라 좇아가는 악곡 형식)를 포함했다.
하나의 바이올린으로 거의 동시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음을 연주해야 하는 기법이 현대에 와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나, 바흐 시대엔 아마도 작곡가 외에는 연주할 만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없었기에 오랜 세월 연주되지 못한 채 악보로만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3곡의 소나타는 모음곡인 파르티타에 비해 진지하고 엄숙하며 질서정연한 느낌을 준다. 물론 후일 나타나는 고전파 시대의 ‘소나타형식’과는 다른 형식으로 작곡한 바로크 시대의 소나타로, 독주 악기를 위한 순수 기악곡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파르티타’는 변주곡을 의미하는 음악 용어였으나 점차 모음곡의 의미로 사용되어 갔다. 3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중 1번은 독일의 파르티타 형식인 ‘알르망드(Allemande, 독일 무곡)’ ‘쿠랑트(Courante, 프랑스 무곡)’ ‘사라방드(Sarabande, 스페인 무곡)’ ‘지그(Gigue, 영국 무곡)’ 중 마지막 곡인 지그 대신 부레(Bourrée, 프랑스 무곡)를 추가한 4개의 곡으로 구성했고, 2번은 기본 형식에 ‘샤콘느(Chaconne, 스페인 춤곡)’를 추가해 5개의 곡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3번은 전통적인 파르티타 형식에서 벗어나 ‘서곡-루르-가보트-미뉴엣1-미뉴엣2-부레-지그’의 7개의 곡으로 구성된 보다 자유로운 편성으로 작곡했다. ‘파르티타’ 중 가장 유명한 곡인 2번의 마지막 곡 ‘샤콘느’는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된 가장 규모가 큰 곡으로 독자적으로 연주되는 경우도 많다. 브람스는 샤콘느를 왼손만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게 헌정했으며, 이탈리아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부조니가 피아노로 편곡한 작품도 널리 알려져 있다.
Portrait of Busoni (1913) 출처 : 위키피디아
1720년에 작곡된 후 200년 가까이 잊혔던 바흐의 ‘6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20세기 이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평생 연습해야 할 훌륭한 교습서일 뿐 아니라 점령해야 할 목표 지점이며, 감상자에게도 영원히 숙제로 남게 될 작품이다.
바이올린 하나로만 연주하기에 쉽게 다가오진 않지만, 몇 번을 들어 친숙해지는 순간 평생 곁에 두고 매일 듣고 싶어지는 명곡이며, 수많은 연주가가 제각기 다른 기교와 스타일로 남긴 음반을 비교해가며 듣는 즐거움은 덤이다.
♬ 바흐 연주곡 들어보기
1.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 연주, 정경화
2.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1번 중 ‘아다지오’ 연주, 힐러리 한
3.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 6곡) 연주, 나탄 밀스타인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 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