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코톨드 갤러리 (The Courtauld Gallery)
코톨드 갤러리는 영국 런던에 있는 미술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규모 미술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회화 작품이 많으며 특히 인상파 작품이 많으며 회화 컬렉션이 무척 훌륭한 미술관이다. 1932년 개관하여 18세기 건물인 서머셋 하우스에 위치하고 있다.
코톨드 갤러리 (The Courtauld Gallery)
런던에는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국립 초상화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자연사 박물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등 거대하고 멋진 작품으로 가득한 미술관들이 너무 많아 잠시 머무는 관광객이라면 어디를 선택해서 방문할지 결정이 쉽지 않다. 그런데 하나의 미술관을 더 소개하여 그 선택을 조금 더 힘들게 만들 것 같다. 코톨드 미술관은 2023년 4월 말 현재 성인 주중 9파운드 주말 13파운드(1만 8천원)의 결정에 어려움을 더할 입장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서머셋 하우스 출처 : HMAP
다른 도시 같으면 그리 심각하지 않을 요금이지만 런던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미술관, 박물관은 입장이 무료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싸 보인다. 더구나 이 미술관은 마음먹고 찾아가더라도 그 입구가 큰길에서 보이지 않고 서머셋 하우스 내부로 들어가서도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간판도 없이 매표소만 덩그러니 나타나는, 관람객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같은 미술관이다.
그러나 일단 들어가면 자기의 선택에 믿을 수 없이 만족할 것이다. 조금 과장하면 액기스로만 채워진 작은 오르세 미술관이랄까? 횡재한 느낌이 든다. 필자의 경험담이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모딜리아니, 드가, 고갱, 고흐, 툴루즈, 쇠라의 유명 작품들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코톨드 갤러리 내부 출처 : 코톨드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새뮤얼 코드, 런던에서 직물 업자로 섬유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그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파리 인상파 화가전’을 감상하고 이후 영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족들과 그림을 감상하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지도 않고 식구들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거침없이 구매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The Coutauld Institute of Art’를 건립하고 학교 미술관에 모든 소장품을 기증하여 현재의 코톨드 갤러리가 시작된 것이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마네의 마지막 살롱전 출품작이었던 이 그림은 마네 회화의 모든 철학 집대성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인상주의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마네는 이 그림을 1882년 파리에서 완성하고 이듬해 1883년 사망했다. 필자는 이 그림을 보기 위해 2007년 런던에서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코톨드 갤러리에 방문했는데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이 보이지 않았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당시 다른 나라에서 열린 마네 기획전에 임대되었다고 하며 전시되었어야 했던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이 그림이 얼마 동안 다른 기획전에 임대되었다고 알리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물론 몇 년 뒤 이곳을 재 방문해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관람하기는 했다.
폴리베르제르는 1880년대 파리에서 2,000명 이상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카페 겸 카바레 그리고 서커스까지 즐길 수 있는 서민과 부유층들 모두 입장하는 유흥장소였다.
주인공 여급 전면에 놓여진 음료수 종류가 다양하게 값싼 맥주부터 비싼 샴페인까지 진열된 것이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서커스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오페라에서 사용하는 망원경을 들이대고 상부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자세히 관찰하면 그림 좌 상단에 공중 그네를 타는 사람의 다리가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중앙에 자리 잡은 여급의 이름은 ‘쉬종’인데 마네는 그녀에게 따로 모델료를 지불하고 유니폼을 입고 화실에서 모델을 서달라고 부탁했고 쉬종은 그의 부탁에 쾌히 응하였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1882) 출처 : 코톨드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이 그림 때문에 마네는 당시 많은 사람으로부터 과연 구도와 스케치의 기본이 없는 화가가 아니냐는 지적을 당하기도 하였다. 쉬종 뒤쪽에 거울이 있었고 많은 부분은 거울에 비친 폴리베르제르의 내부인데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 것은 그녀 앞에 서 있는 신사가 거울에 비친다. 그러나 거울에 보인 남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런 각도는 불가능한 것이고 하나의 통 거울이 아닌 반사 각도가 다른 거울이 또 뒤에 있어야만 가능한 구도를 그렸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마네가 다른 변명을 내놓은 바는 없다. 그는 실제로는 그렇게 보일 리가 없지만 회화에서 화가의 세계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했다고 생각한다.
누드
36세에 요절한 여인 초상화의 천재 화가 모딜리아니가 아주 짧은 기간 조각과 여인 누드에만 몰입한 적이 있다. 이때 제작된 누드 작품들로 그의 최초 개인전을 열게 된다. 파리 라피트에 위치한 베르트 베이유 화랑에서 열렸는데 운이라고는 거의 따르지 않았던 모딜리아니답게 화랑 바로 앞 파출소 경찰들이 쇼윈도를 통해 보이는 작품들이 너무 음란하다며 전시를 철거하라고 명령하며 불응 시 누드 그림을 모두 몰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그의 유일한 개인전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그의 누드화들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딜리아니의 세련된 감각들을 보여준다.
아이리스 트리 (Iris Tree) (1916) 출처 : 코톨드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1909년에 가깝게 사귀었던 루마니아의 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영향으로 그는 잠시 회화에서 조각으로 작업 방향을 바꾼 적이 있다. 이후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에서 브랑쿠시의 영향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 누드 작품에서는 브랑쿠시와 함께 조각을 만들며 관심을 가졌던 아프리카 여인 조각상들의 흔적이 느낄 수 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거친 피부 질감, 거칠고 짧은 붓질로 마감이 되어 있다. 또한 잘 표현하지 않았던 ‘hair nude’가 그의 누드 작품에서는 공공연히 등장하여 결국 그의 누드 작품들은 전시 하루 만에 철수 및 개인전 취소가 되었다.
커다란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1907) 출처 : 코톨드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잔 에뷔테른의 초상 (1919) 출처 : 코톨드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귀를 자른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의 재정적 도움으로 남부 프랑스의 온화한 기후와 햇살이 좋은 아를(Arles)에서 온전히 그림을 그릴 기회를 얻게 된다. 평소 예술가들의 공동체 생활을 꿈꾸던 고흐는 동생의 권유에 의해 당대 꽤 화가로서 주목받던 고갱과 함께 같은 집에서 예술을 논하고 함께 그림도 그리고 토론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쩌면 이 갑작스러운 동거만 없었어도 고흐가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결국 권총 자살까지 하는 일은 그렇게 빨리 진행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귀를 자른 자화상 (1889) 출처 : 코톨드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그림을 그릴 때 현장에서 관찰을 주요하게 생각하는 고흐와 현장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고갱이 처음부터 논쟁을 벌였고 고갱이 도착한 지 한 달쯤 지나 고갱이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고, 곧 파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짐작을 굳혀가던 고흐는 고갱에게 자기를 떠날 것인지 물어보았고 고갱은 그렇다고 대답을 하였다.
갑자기 칼을 들이대는 고흐를 피해 고갱은 집을 뛰쳐나왔다. 고흐는 결국 분을 못 이겨 자신의 오른쪽 귀를 칼로 잘라내었다. 그리고도 수많은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결국 2달의 동거생활은 비극으로 끝났고 정신병원 신세에서 돌아와 맨 먼저 귀를 싸맨 자화상을 그리게 되는데 코톨드에 있는 이 그림이 첫 번째 작품이다. 이어서 귀를 자른 자화상을 한 장 더 그렸는데 이 그림은 개인 소장이라 직접 볼 방법은 없다.
코톨드 갤러리 공식 유튜브 영상 _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술집을 중심으로 편
코톨드 갤러리 공식 유튜브 영상 _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