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파 유대인들의 만취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축제는 주로 집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부림절이 되면 외부에서 축제를 즐기며 만취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부림절에 유대인들은 만취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이범수 지역사회 전문가로부터 생생한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2023년 부림절이 다가오고 있다. 유월절이 다가오기 한 달쯤 전인 유대력 아다르(Adar) 14일이면 유대인들은 푸림(Purim)이라 부르는 부림절을 지킨다. 종교적인 유대인이나 세속적인 유대인이나 할 거 없이 모두 이 명절의 축제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명절을 지킬뿐 아니라 현대 문화적으로도 동 명절과 관련된 현대적 축제의 풍습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림절이란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던 하만의 손으로부터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도움으로 음모가 밝혀져 유대인들이 죽임을 면할 수 있었던 에스더서의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에스더서에 기록된 대로 명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부림절에 마시고 먹는 행위, סעודת פורים, seudat purim) 서로 예물을 주며(משלוח מנות, mishloach manot)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들을(מתנות לאביונים, matanot le-evyonim) 한다.
출처 : Sebastian Scheiner / AP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축제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사뭇 특이하다. 이스라엘에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은 대부분 집안에서 이루어진다.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를 나누고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떨며 먹고 마시는 일들이 반복된다.
물론 밖에서 쥐불놀이와 같이 불놀이를 즐기기도 하는 라그 바오메르(Lag Ba Omer)와 같은 축제도 있지만, 부림절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외부에서 만취하며 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평소에 만취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정통파 유대인들이 만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이는 사뭇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에스더 9장 19절에 이 부림절에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었다고만 나오지 술을 마시되 취할 때까지 마시라는 언급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출처 : Hadas Parush/Flash90
술에 관한 유대인들의 인식은 전통적으로 매우 부정적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미드라쉬 탄쿠마는 술에 관한 주제로 노아와 사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노아가 농사를 짓고 있을 때 사탄이 다가와 “무엇을 농사짓습니까?”라고 묻자 노아는 “포도밭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사탄은 “그 본질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노아는 “그 열매는 눅눅한 것이나 마른 것이나 다 달고 그 열매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만들어 냅니다.”라고 말했다. 사탄은 노아에게 “너와 내가 함께 심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고, 노아는 그러라고 하였다. 사탄은 양, 사자, 원숭이와 돼지를 가져와 그 피를 밭에 뿌려 포도를 길러냈다. 그래서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이와 같다: 사람이 한 잔을 마실 때 그는 어린 양 같고 겸손하고 온유하다. 두 잔을 마시자 그는 사자처럼 힘이 나서 "누가 나와 비교하겠느냐!"라며 으스댄다. 그는 서너 잔을 마시자마자 원숭이가 되어 춤을 추고 놀고 입을 더럽히며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결국 술에 취하면 돼지가 되어 진흙탕에 더럽혀져 오물에 뒹굴게 된다.(Midrash Tanchuma, Noach 13:4)
Noah Curses Ham(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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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절에 와인을 마시는 풍습
부림절에 와인을 마시는 풍습은 탈무드에서 유래 되었는데, 4세기경의 랍비 라바(Rava)가 “부림절에 저주받은 하만과 축복받은 모르드개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마셔야 한다”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왜 둘을 구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랍비 라바는 모르드개를 전통적인 의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냉소적으로 모르드개의 행동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에스더를 반강제적으로 시집 보내고 하만과 권력투쟁을 하는 모르드개로 비춰질 수 있는 점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혹 그러한 악의적인 모습의 모르드개를 바라보더라도 악의적 행동을 한 모르드개의 모습과 악인인 하만의 모습을 술로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유대인을 구한 영웅 모르드개의 모습만 비치기를 바라는 그의 해석이 음주 풍습에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해석을 옳게 여기는 유대인들은 만취하도록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을 것이고 이것이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부림절에 양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원숭이로, 원숭이에서 돼지가 되도록 만취하여 술을 마시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들 중 이러한 의미를 알고 음주하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있을까? 단지 만취하는 것이 기쁨의 풍습인 줄 알고 진탕 술이나 마시자, 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술을 통해 모르드개와 하만의 모습을 구분 짓기보다 축제를 즐기며 부림절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으로, 혹은 그들의 괴로움, 아픔, 슬픔을 술로 날려 보내자는 마음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출처 : MENAHEM KAHANA / 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