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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벨기에 왕립미술관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최근에 벨기에 왕립 미술관을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과 유튜브를 보면 입구 현판에 한국어로 ‘벨기에 왕립미술관’이라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는 감격스러워하고 대한민국에 큰 자긍심을 느끼는 것 같다. 낯선 도시에서 그것도 왕립미술관 입구에 커다랗게 적힌 한글이라니. 게다가 한국어 음성 안내 서비스까지 가능하니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는 작품들을 보다 깊고 가깝게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삼성의 스폰서십에 관한 글과 사진을 보고나서 한국어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벨기에 왕립미술관의 오른쪽 문에 한글로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출처 : wikipedia
현대 미술관의 개관 연도는 1984년으로 상당히 늦게 일반인에게 공개된 미술관이다. 고풍스러운 입구(약간 작긴 하지만)를 지나 입장하면 구입한 티켓으로 지하통로를 통해 별도 건물인 마그리트 미술관과 연결, 두 개 미술관을 한 번에 방문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벨기에 왕립미술관의 한국어 리플렛 중 일부 출처 : 본인 제공
이 글에서는 마그리트 미술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다루지 못하지만 브뤼셀에서 공부하고 현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이 된 초현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에 관한 공부와 감상을 꼭 권하고 싶다.
마그리트 뮤지엄 전경 출처 : wikipedia
쟈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The Death of Marat]
[마라의 죽음]은 신고전주의의 최고권위인 쟈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걸작 중 하나로 총 3편의 레플리카가 있는데 루브르와 랭스 미술관 그리고 이곳 브뤼셀에 위치한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농민 화가라 불리던 피테르 브뤼헐( Pieter Bruegel, 1525-1569)이 작품활동을 하던 당시 플랑드르의 화가들은 알프스 넘어 이탈리아에서 넘어오는 르네상스 미술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하나둘 이탈리아 로마로 견학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화풍에서도 그 흔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테르 브뤼헐에게는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그도 동료들처럼 이탈리아에 견학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주로 그가 남긴 작품들은 알프스를 넘어가며 감명받았던 몇 장의 풍경화들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플랑드르 화가들의 특징인 미세하고도 재미난 서민들의 생활상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누가복음 2장 1-5절)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는 로마 황제의 전국적인 호적정리 명령에 따라 본인의 본관을 찾아가 주민등록 절차를 다시 밟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야기의 출발은 성경 속 마리아와 요셉의 예수 탄생 이전이지만 배경이 되는 장소는 16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작은 마을이다.
작품의 중앙 하단에 다른 인물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두 인물, 등에 커다란 톱을 메고 있어 목수가 분명한 요셉과 말에 올라탄 만삭의 마리아가 무척 지친 모습으로 마을의 여관을 향하여 가고 있다. 브뤼헐은 고대 베들레헴의 역사적 장소를 16세기 자신의 고향 풍경으로 재현한 것이다.
피테르 브뤼헐의 [The Census at Bethlehem] 출처: wikipidia
제목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의 베들레헴으로의 이동을 나타내지만 이 농민화가의 풍속화는 화면 좌측 하단의 여관 앞에서 세금을 걷고 있는 관리들(스페인 통치하의)과 세금을 내기 위하여 길게 줄을 서고 있는 플랑드르 시민들을 묘사한 것이다. 당시엔 세리들이 세금을 걷기 위하여 여관을 빌리곤 했다. 즉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서 착취당하는 플랑드르 사람들의 피폐한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화면 오른쪽 중앙에는 당시 나병환자들이 외딴곳에 살면서 외출할 시에는 나무 딱따기로 소리를 크게 내며 다른 이들에게 경고를 주어야만 하는 풍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화면 가장 우하단의 얼어붙은 강 위에서 스케이트 지치는 아이들과 조심조심 얼음 위를 건너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소 피테르 브뤼헐: 영아 학살 [Massacre of the innocents]
피테르 브뤼헐이라는 이름을 쓰는 화가가 많다. 4대에 걸친 그 가족이 모두 화가이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화가는 아버지 브뤼헐인데 위의 ‘베들레헴 인구조사’, ‘이카로스의 추락’, ‘새 덫이 있는 겨울 풍경’등이 이곳 왕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피테르 브뤼헐의 [Winter Landscape with Skaters and Bird Trap] 출처: wikipidia
아들 소 피테르 브뤼헐의 ‘영아 학살’도 두 장의 레플리카가 존재하는데 원작은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들 소 피테르 브뤼헐은 수도 없이 아버지 피테르 브뤼헐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림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영아 학살의 배경이나 구성이 아버지의 작품들과 거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이다.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