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문의031-645-9191

에덴 미디어

피플
2023-03-21

천국소망을 심어주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에덴피플스토리


천국소망을 심어주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박용민 원장 이야기


영광교회를 창립하고 평생을 복음 전파와 선교, 양육을 위해 헌신한 박희찬 목사님이 에덴낙원에 모셔진 뒤 많은 성도들이 목사님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에덴낙원을 방문했다. 영광교회 성도들의 박희찬 목사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은 특별했다. 목회자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셨던 사랑하는 아버지 박희찬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아들인 박용민 원장을 통해 들어보았다. 


Q : 에덴에 처음 방문하셨을 때 인상적이셨던 부분이 있으셨는지요?


에덴낙원에 처음 방문하였을 때 곳곳에 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는 꽃인 수국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모습이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안식처 위에 자리한 부활교회를 보니 언제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안내를 받을 때, 에덴낙원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안식을 누린다고 하셨는데 고인뿐 아니라, 산 자도 ‘함께’ 누린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지금도 에덴낙원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면 ‘함께’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아버지도 에덴낙원에서 안식을 누리고 계시고 저희도 에덴낙원에서 정원을 걷고,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며 쉼을 누리고 돌아가니 에덴낙원은 아버지가 홀로 계신 곳이 아닌 저희와 함께 안식하는 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




Q : 2019년 박희찬 목사님께서 소천하신 뒤 춘천의 한 공원묘원에 모셨는데 에덴낙원으로 이장을 결정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버지께서 너무 갑작스럽게 소천 하셨기에 준비된 곳이 없이 급히 정하게 된 곳이었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가기에는 거리가 멀어서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던 중, 지인의 소개를 통해 에덴낙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덴낙원은 여러 지역에서 방문하기에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 아버님께서 안정적이고 성공한 직장인이셨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회의 길을 걷고자 새롭게 결단하셨을 때 가족들께서 놀라움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부모님은 그 길을 가시기로 결단하신 것이기에 어머니도 아버지와 한마음이었습니다. 동생은 아버지께 “이제 아버지 직업란에 뭐라고 적어야 해요?”라고 아버지께 질문하여서, 아버지 마음이 먹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스포츠 매장에 저를 데리고 가셔서 비싼 농구화 고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이런 신발 못 사줄 수 있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 저는 아버지가 그냥 직장을 다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결단을 받으시고 사역 가운데 많은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셨음을 보게 됩니다.




Q : 성도 분들께서 에덴낙원을 방문하셨을 때 박희찬 목사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드님이 생각하는 목회자 박희찬, 아버지 박희찬 목사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아버지는 성도님들께 ‘교회사역과 가정사역’, ‘말씀과 기도’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가 이룰 수 있도록 권면하셨습니다. 특별히 성도님들의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셨습니다. 부부가 하나 되고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도록 가정을 바로 세우는데 많은 헌신을 하셨습니다.


가정에서도 가장으로서 큰 사랑과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퇴근하고 오셔서 자전거에 저와 동생을 태우고 동네를 신나게 돌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매일 출근하실 때마다 가족들 손을 잡고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목회자로서 아버지는 영혼 구원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고 성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받을 즈음 아버지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고, 저는 사역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우선적으로 챙기셔야한다고 계속 이야기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알겠다고 하셨지만 조금만 컨디션이 회복되면 성도님들을 위해 말씀 한 번 더 전하려고, 세미나 한 번 더 해주시려고 힘을 내셨습니다. 당시에는 아들이자 의료인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복음에 빚진자로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진실된 마음이었구나 생각이 듭니다.




Q : 부모님께로부터 물려받으신 신앙을 자녀분들이 잘 이어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특별히 강조하신 부분이 있으셨나요?


저는 직장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회자가 되는 것을 보았고, 영광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같이 보았습니다. 처음 교회 개척을 준비하면서 가족 4명이서 예배를 드리던 때가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영광교회가 부흥하여 지역과 세계열방에 복음을 전하고 가정을 살리는 일들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소망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 되는 가치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것이 제가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버지는 사람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목회사역이 참으로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라고 말씀하셨고, 성도님 한 분 한 분을 향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저는 분야는 다르지만 의학을 공부해서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며 저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기를 바라며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목회로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 어머니께서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아름다운 가정을 선물로 주셨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어 주셨고 목회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동생은 아버지 어머니를 바라보며,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어머니와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선교의 열정을 곁에서 보고 자란 여동생 역시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선교사가 되는 꿈을 갖고 자연스럽게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목회자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머니와 같은 지혜로운 사모가 되길 기도하며 부모님 가신 그 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Q : 아버님께서도 목회하시면서 선교를 큰 사명으로 삼고 정진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집사님께서도 혹시 이러한 비전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교회를 처음 개척하시면서 교회의 큰 비전을 선교와 제자훈련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개척 처음부터 해외선교와 국내선교를 시작하셨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해외 여러 선교지와 국내 미자립교회를 물질과 기도로 도우셨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성전 건축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해외의 교회 열 곳을 먼저 세우고 성전 건축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셨고, 해외의 교회 10 곳을 세우고 지금의 영광교회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선교는 계속 활발히 이어졌고, 아버지 소천 이후, 새로 부임하신 담임목사님께서도 선교의 비전을 동일하게 가지시고 성도들과 함께 해외 여러 교회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평신도 가정이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아 선교와 긍휼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단기 의료선교에 참여하거나, 주변에 선교사로 헌신하신 분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학업에서 소외된 다문화 아이들이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수년간 하였습니다. 앞으로 저희 가정이 선교와 다문화사역에 좀 더 쓰임받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Q : 그리고 박희찬 목사님께서 암 환우들을 위한 사역을 하신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을 눈앞에 둔 이들에게 천국에 대한 비전을 확실히 심어주시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혹시 목사님께서 죽음이나 천국에 관해 말씀해주신 부분이 있으신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께서 특별히 암 환우들을 위한 전문적인 사역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교회에 암 환우들이 많이 계신데 어려운 병원 치료 과정 중에 기도로 밖에 도울 수 없으니, 다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면서 전문가를 초빙하여 교인들에게 질병에 대한 지식을 줄 수 있는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환우분들의 마음, 음식, 환경이 중요한 것을 생각하여 암 환우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센터에 가실 수 있도록 지원하셨습니다. 평소에 지병이 있으신 성도님들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말씀으로 ‘하늘문이 열렸다. 천사가 데리러 왔다, 천국은 실재하니 천국을 전하는 삶을 살아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은 저희 가족과 교회 성도들에게 큰 슬픔 중에 위로가 되었고, 실재하는 천국에 대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일평생 모습을 통해 저는 이 땅에서 천국을 소망하고, 천국을 바라보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버지가 하신 것처럼 천국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Q : 특별한 내조자로, 든든한 동역자로 박재섭 사모님께서 늘 목사님 곁에서 함께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천국에 가시고 애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아버지께서 안식에 들어가시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천국에 대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저희 가족도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큰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저희 가족들과 성도님들이 느끼는 이별에 대한 인간적인 슬픔은 더 컸습니다.


어머니도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계셨지만, 저와 동생과 함께 항상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마음을 나누며 힘든 상황에도 감사로 마무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 시간을 지날 수 있었습니다.각자의 일이 있어서 자주 모이지 못할 때에도 매일매일 전화로 영상으로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고 같이 기도의 시간을 쌓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함께 한 예배시간이 아버지를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리는 애도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힘든 마음을 자녀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영광교회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주변에서 저희 가족을 기억하고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가 저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박용민 의사

박희찬 목사님의 장남인 박용민 원장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으뜸병원의 척추통증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 박희찬 목사님을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기 위해 의료선교와 선교사 후원에 참여하고 있으며, 가족이 함께 섬기는 의료선교와 다문화사역에 비전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