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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달리 OECD 국가 중 출산율 1위의 이스라엘도 공원과 버스, 길거리 등 어디서든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시 늘어가는 고령 인구에 대한 정책 및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이스라엘에서 20년간 거주하며 이스라엘 지역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이범수 지역사회전문가로부터 생생한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스라엘은 출산율이 높은 나라이다. 합계 출산율 2015년 3.1명, 2022년에는 2.9명을 기록할 정도로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에 비해 크게 높은 수치를 보이는 국가이다. OECD 국가 중 출산율 꼴찌를 기록한 한국과 달리 이스라엘은 OECD 국가 중 출산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는 2위인 멕시코와 3위인 프랑스를 높은 수준에서 상회하는 수치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바라볼 때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젊은 국가라고 여겨진다.
출처 : 머니투데이 [더 차트]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높은 출생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출생율을 걱정하는 한국과 달리 노년 인구에 대한 적절한 돌봄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2022년 기준 965만의 인구를 가진 이스라엘은 130만 이상의 고령층 인구가 있으며, 이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여 2035년까지 180만, 2065년에는 3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노년 인구의 17%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신체기능이 떨어져 있다. 이 중 대략 15만 명이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나머지도 신장 장애 및 복합 장애를 가지고 있다. 또한 노년 인구의 24% 정도인 65세 이상 30만 명 정도가 간호수당을 통해 국가로부터 전문 돌보미, 데이케어센터 등과 같은 도움을 받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대상자들의 96-97% 가량이 재택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소수의 인원만이 국가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동네나 익숙한 장소를 떠나기보다 그 사회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한다. 이스라엘은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가 지역 커뮤니티에 익숙하게 자리 잡혀 있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 프로그램 참가자들
출처 : www.jpost.com/israel-news/a-community-that-says-life-is-for-living-600601
이스라엘에 사는 동안 종종 오전에 커피숍에 나와계신 어르신들을 뵙곤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한 두 분의 어르신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어르신들이 나와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곤 했다. 간병인과 함께 나와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시는 어르신, 신문을 읽고 있는 어르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하는 전통 주사위 놀이 쉐시베쉬(Shesh Besh)를 즐기며 차를 마시는 어르신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왜 이렇게 어르신들이 오전에 커피숍에 많이 나와 계실까?” 라는 질문을 종종 스스로에게 하곤 했는데, 어느 날 한 유대인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이스라엘의 오전 경제는 연금 생활을 하는 어르신들이, 오후 경제는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책임지는 면이 있어.” 지역에서 돌봄을 받으며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통해 노인복지가 실현되고 지역 경제가 함께 맞물려 순환되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아직까지 초고령사회에 속하지 않았다. 한국은 인구의 20% 이상이 고령인 초고령사회에 2025년경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초고령사회에 대한 논의 대신 노년층의 돌봄과 의료지원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까지 젊은 세대의 생산성이 안정적인 이스라엘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노년 인구의 고령 근로를 통한 ‘신질서’를 논의하고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노년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 문화의 모습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에도 긍정적 상황만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 계속 거주 문화에 있어 여러 어려움들이 존재한다. 아직까지 노년 인구를 돌보는 것은 가족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관례이고 장기적 국가 계획이 세워져 있기보다는 도움과 보충적 지원을 하는 모양새이다. 가족이나 간병인들에 의해 수만 명의 노인들이 돌봄을 받고 있고, 국가적 포괄적 해결책이 부족하다. 따라서 간병인을 구하는 문제가 이스라엘에서는 큰 사회적 문제로 제기될 만큼 주목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간병인들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하루 종일 간병이 필요한 노인인구의 돌봄은 상대적으로 고된 노동을 수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현지 이스라엘에서는 기피하는 일로 인식된다. 따라서 숙련된 외국인 돌봄 전문가들의 유입, 이스라엘 내 전문 인력 양성이 국가적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의료분야도 노인병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의는 400여 명이지만 이 인원으로 130만에 달하는 노인인구를 치료하고 대처하기에는 그 수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관련 의료진을 길러내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스라엘의 노년 인구는 주변의 정세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생산력 감소로 인한 노동시장으로의 진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안정된 노년생활을 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들의 수도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대비가 필요해 보이지만 ‘초고령사회’를 이야기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서구사회들에 비해 노년층의 안정된 은퇴 이후의 삶은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 노년기에 시장에 내몰리지 않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고, 또한 일을 원하면 계속해서 일을 하기로 노년층이 결정할 수 있는 사회에서 젊은 세대들은 한줄기의 희망을 본다. 여전히 사회는 출생인구를 늘리는 정책은 가망성이 없고 노년 인구를 활용한 생산성 향상을 논해야 한다는 소위 ‘신질서’를 주장하지만 이스라엘 노년사회의 모습은 나름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The Entire Jewish People are Considered Guarantors for One Another.”
“유대 민족 전체가 서로 간의 보증인으로 간주된다“
- Talmud, Shevu’ot 39a
출처 : www.pexels.com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년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학을 전공하였다. 주이한국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