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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3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4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4

A-HA의 ‘TAKE ON ME’ M/V


오늘날 전 세계가 K-POP에 열광하듯 80년대는 팝 음악의 르네상스였다. 노르웨이의 3인조 그룹 A-HA는 당시 팝 음악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다. 뮤직비디오라는 용어조차도 우리에겐 생소하던 그 시절 아하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는 수 십 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가 다시 보아도 가슴 뛰게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구조인 ABC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로맨스와 ABC구조


다양한 장르의 대중문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하나의 주제를 꼽으라면 사랑이 아닐까?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든,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최후로 끝을 맺는 슬픈 멜로드라마든,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통칭 로맨스라고 부르는 이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스토리 역시 ABC구조를 플롯의 중심 기둥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여타의 스토리와 많이 다르다. 로맨스 스토리의 주되 내용은 주인공과 악역 캐릭터의 대결 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스토리에서 한 사람의 주인공 A가 등장한다면, 로맨스 스토리에서는 반드시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 C는 당연히 사랑이다. 그들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부를 준다 해도 거절할 것이며, 죽음마저 불사할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주인공들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물 B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들은 새롭고 신선한 장애물 B를 만들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져버린 왕이 등장한다 [피그말리온].

원수인 가문의 이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이미 16세기에 대중화되었다.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서로 다른 신분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설정 역시 동서양을 넘어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춘향전]

불치병 때문에 이별하게 된다던가 [러브 스토리].

거대한 재난이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설정도 등장했다[타이타닉].


이런 설정들이 진부하고 식상해지자, 현대의 작가들은 만리장성보다 더 높고 튼튼한 새로운 방해물을 쌓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지정학적 위기 상황을 끌어들이거나 [사랑의 불시착], 한쪽만 불멸한다는 생명의 유한함을 이용하였다[도깨비].

급기야는 단기기억상실증을 가진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거나[첫 키스만 50번째].

인공지능 AI와 사랑에 빠져 버린 남자의 이야기와 같은[그녀] 기발하고 독특한 아이디어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첫 키스만 50번째, 극장 개봉 포스터, 출처 :  https://www.sorishop.com/index.html



영화 그녀_ 극장 개봉 포스터   출처 : https://www.amazon.com


이와 같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사용한 뮤직비디오 한 편을 통해 로맨스 장르에서의 ABC구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986년에 발표되어 16억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뮤직비디오의 고전으로 자리잡 은 A-HA의 TAKE ON ME 뮤직비디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여자가 카페에서 만화잡지를 보고 있다. 연필로 그려진 흑백 만화 속 주인공은 잘 생긴 오토바이 경주 선수로 이제 막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만화 속 남자에게 푹 빠진 여주인공에게 갑자기 책 속에서 손이 나와 그녀를 만화 속 세계로 이끈다.





만화 속 남자와 여자가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여자가 돈을 내지 않고 가버렸다고 생각한 카페 주인은 만화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려 버린다. 





한편, 경주대회에서 진 라이벌은 주인공을 몰래 침입해 그들을 해하려고 한다.






결국, 라이벌 일당에게 쫓기던 남자는 여자를 만화 속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탈출시키고 자신만 남게 된다. 





현실로 돌아온 여자는 이별을 슬퍼하는데, 그녀를 잊지 못한 남자가 만화 속 세계를 떠나 그녀의 세계로 넘어 온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왔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남자는 결국 그 고통을 극복하고 현실 세계에 남아 사랑을 이룬다. 




경주에서 패배해 질투심에 사로잡힌 라이벌과 여주인공을 무전 취식한 범죄자로 오해하는 카페 주인이 충실하게 방해물 B 역할을 수행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현실 세계와 만화 속 세계라는 세계관 그 자체이다.


뮤직비디오는 실제 촬영한 동영상을 애니메이션화하는 로토스코프 기법을 통해 이 갈등 구조를 매우 효과적으로 구현해냈다. 짧지만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담긴 영상을 A-HA의 불후의 명곡 ‘TAKE ON ME’와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김경모 작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하였다. 목원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의했다. EBS 애니메이션 시리즈 ‘미스테리야’의 스토리를 집필했으며, 현재 제주에 머물며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