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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2022-11-09

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

르네상스 시대의 죽음에 관한 메시지


우리는 죽음 준비와 관련해 역사 속의 지혜를 찾아 나서면서 가장 먼저 중세 유럽에 주목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세 차례의 림프절 페스트 범유행 중 가장 치명적이었던 제2차 범유행을 경험하면서 죽음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죽음을 다루는 역사에서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죽음을 다루는 매체와 메시지는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근대 죽음의 춤 창시자인 한스 홀바인 2세(c. 1497-1543)의 ‘죽음의 춤’은 예술적으로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죽음과 관련해 깊은 지혜를 담고 있다. 비록 16세기 독일 화가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의 ‘죽음의 춤’은 21세기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아도 전혀 어색하거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되레 ‘어쩌면 이렇게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하게 공감된다. 시·공을 초월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똑같은 존재요, 인간 사회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한스 홀바인 2세(c. 1497-1543)  출처 : 위키피디아


한스 홀바인이라는 이름은 익숙지 않을 수 있지만, 그의 작품들을 보면 ‘아, 저 그림!’이라고 외칠법한 것은 최소한 한두 개는 있으리라. 홀바인은 북유럽 르네상스 양식으로 작업을 한 화가요 판화가이며, 가장 위대한 16세기 초상화가 중 한 명이다. 독일 남부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바젤과 영국에서 활동했다. 영국에서는 궁중 화가로도 일했던 만큼 그의 초상화에는 꽤 흥미로운 인물이 많다. 역사책에 빠질 수 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영국의 헨리 8세와 그의 궁정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주된 모델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초상화로는 <헨리 8세>, <에라스뮈스>, <토마스 모어> 등이 있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헨리 8세, 토마스 모어, 에라스 뮈스 

출처 : 위키피디아 


인쇄술의 혁명 그리고 종교개혁


홀바인의 ‘죽음의 춤’은 1538년에 출판되기는 했지만 대략 1521년부터 1525년에 작업한 목판화 작품이다. 이 ‘죽음의 춤’이 갖고 있는 특성은 15세기의 인쇄술 혁명과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이라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두 사건에 큰 영향을 받았다. 주로 교회나 수도원 건물 또는 공동묘지 등의 벽화로 제작되던 ‘죽음의 춤’은 15세기 중반 이후 인쇄된 책자에 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하나의 커다란 화폭에 그려졌던 각계각층의 인간 군상이 개별적인 그림으로 독립되었다.


죽음의 춤


홀바인의 ‘죽음의 춤’은 1538년에 「시뮬라크르, 죽음의 역사적 얼굴」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소형판의 책은 내용은 물론 외형상으로도 중세의 그림 전통과 결별하고 있다. 각 그림은 라틴어 성경 구절, 6.5*5cm 크기의 목판화, 그리고 불어로 된 4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라틴어 성경 구절은 그림의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고,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운(韻)을 이루는 4행시는 그림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논평 역할을 한다. 



두 명의 해골이 상류층 여성을 초청하여 마지막 춤을 추게 한다. 오른쪽에 있는 여자는 거절하려 하지만 아무도 이 춤을 피할 수 없다.  출처 : www.danceofdeath.info


홀바인의 ‘죽음의 춤’ 초판은 모두 41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4편은 각각 창조, 유혹, 추방, 타락의 결과를 표현한다. 구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앞부분에서 가져온 주제들이다. 다섯 번째는 묘지 장면이다. 이 그림은 이전에 나온 네 편의 그림과 이후에 나올 34편의 그림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다음 34편은 교황, 황제, 왕, 추기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죽음이 소환하는 34명의 인물을 보여준다. 이어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최후 심판 장면이 나온다. 최종 그림은 죽음의 문장(紋章)이다. 



Dance of Death: The Councillor, c. 1526. Hans Holbein (German, 1497/98–1543). Woodcut; The Cleveland Museum of Art, Dudley P. Allen Fund 1929.156



The Dance of Death: The Cardinal; The Empress, c. 1526. Hans Holbein (German, 1497/98–1543). Woodcut; The Cleveland Museum of Art, Gift of Leonard C. Hanna, Jr. 1922.500


홀바인의 ‘죽음의 춤’은 인간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피력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의 그림은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음에 대비해야 할지를 깊이 성찰하도록 도전한다. 이와 함께 홀바인의 ‘죽음의 춤’을 보며 사색할 또 다른 요소는 죽음의 모습과 예기치 못한 죽음의 출현에 각 인물이 보이는 반응이다. 초기 죽음의 춤 작품들과는 달리 홀바인의 ‘죽음의 춤’에서 죽음은 상대적으로 더 난폭하고 거친 모습을 보이며, 등장인물들은 죽음에 대한 체념이나 순응의 태도보다는 경악하고 두려워하는 감정과 저항하는 자세를 보인다.


죽음과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며 사는 삶


홀바인의 ‘죽음의 춤’을 감상하고 있자면 모든 인간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진리가 핵심 메시지인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기본 전제다. 각 등장인물이 죽는 순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홀바인의 ‘죽음의 춤’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삶을 살다가 죽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을 보는 이에게 ‘당장 죽어도 아무 문제 없겠소?’, ‘죽을 준비가 되어 있소?’, ‘당신은 어떻게 살다가 죽겠소?’라고 묻는 듯하다.


홀바인의 ‘죽음의 춤’에 해골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의 그림을 보면 평온하고 복된 죽음의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노파와 노인 장면은 예외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등장인물 거의 다가 잠시 전까지 하던 일을 당장 멈추고 삶과 이별해야 할 순간이 임박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죽음의 기술이 베푸는 가르침을 마음에 두지 않았던 듯, 죽음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모습이다.


등장인물들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에 몰두하고 있다. 어떤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일인 듯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면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는 듯하다. 그들이 영원한 생명이냐 아니면 영원한 죽음이냐를 선언하는 최후의 심판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살았다면 과연 저런 삶을 살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홀바인의 ‘죽음의 춤’에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34편의 그림을 보고 나면 모든 장면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등장인물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맘몬’을 섬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그림들은 불의, 불공정, 불평등, 탐욕, 관직 매매, 뇌물수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민의 철저한 결핍, 돈과 권력을 지닌 자들의 호화스러운 의상과 진수성찬 등을 고발하고 있다. 이런 인간 행태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의 기저에 깔린 ‘돈 만능주의’가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을 사로잡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옛 사람”이요(로마서 6:6), 참된 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6:3)이다. 이들은 여전히 죄의 종(6:20)이요 의의 종(6:19)이 아니다. 죄의 종은 불의의 열매를 맺고, 그들의 최후는 사망이다. 이제 이 마지막 그림은 관람자에게 경고한다. 당신이 다음 순서가 될 수 있으니 죽음과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며 살라고. 영생과 부활의 소망을 품은 삶을 살라고.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시편 8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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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utenberg.org/files/21790/21790-h/21790-h.htm



김선영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교육(M.A.)과 영문학(M.A.)을 공부하고, 연세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와 교리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다. 한국교회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루터학회 부회장이며,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 『믿음과 사랑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 등의 저역서와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