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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2
픽사의 낮과 밤(Day & Night)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의 최강자였던 디즈니와 픽사가 합병 후 공개했던 첫 작품 '낮과 밤'. 이 작품의 주제는 관객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함께 만든 아주 다른 두 회사의 구성원들이 스스로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받아들임과 공존이라는 메시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동일한 울림을 준다.
지난번에 게재한 글에서 스토리텔링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ABC 구조에 대해 소개했다. 주인공- 프로타고니스트를 A로, 악당- 안타고니스트를 B로, 양측이 공통으로 얻고자 하는 목표를 C로 두어 갈등과 대결을 스토리의 핵심 갈등으로 하는 이 구조는 러닝 타임이 짧은 광고뿐만 아니라 몇, 개의 시즌으로 이어지는 서사극 형태의 OTT 시리즈의 메인 갈등에도 사용된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ABC구조와는 조금 다른 방식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선과 악, 피아의 구분이 명확한 대결 구도일 수만은 없다. 하나의 이야기가 복잡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사고 방식과 행동에는 나름의 당위가 있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스토리가 현실에 대한 은유이거나 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이야기의 캐릭터들은 보다 복잡한 내면과 외적 딜레마에 처해 있을 것이다.
ABC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음한 작품 한 편을 소개하고 자 한다. 2010년 ‘토이스토리3’ 과 함께 공개된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 ‘낮과 밤 (Day and Night)' 이다. 작품의 스토리 구조를 분석하기 전에 약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픽사와 디즈니
2006년은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에 큰 변화가 있었던 해로 기록될 것이다. 1923년에 설립되어 애니메이션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디즈니와 ‘토이스토리' 와 '니모를 찾아서'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떠오르던 픽사의 합병은 산업 지형을 뒤흔든 소식이었다. 디즈니는 미키마우스를 시작으로 ‘인어공주', '알라딘', '라이언킹'과 같은 작품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박스오피스에서 예전만 못한 스코어를 기록하며 조금씩 그 지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틈을 파고든 회사가 바로 픽사였다. 픽사가 내놓은 작품들이 연달아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두 회사는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가 되었다.
작품들의 성격에서 두 회사는 큰 차이를 보였다. 디즈니가 기존의 동화나 스토리에 음악을 입힌 뮤지컬 형태의 제작 방식을 취한 반면, 픽사는 장난감이나 물고기 같은 새로운 캐릭터에 독창적인 스토리와 유머를 가미한 작품을 발표했다. 제작 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는데 디즈니는 셀 방식 –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여러 장의 그림을 직접 그려 동화를 만들어 배경과 합성하는 전통의 작업 방식을 고수해왔다. 반면 픽사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움직임을 주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모든 면에서 달랐던 두 회사가 하나가 되었으니 회사의 문화와 정체성, 작업 방식, 구성원들의 가치관에서 충돌이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이 갈등을 극복하고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하나가 된 회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낮과 밤'이 주는 메시지
'낮과 밤' 은 두 회사의 합병 후 픽사가 세상에 내놓은 첫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3' 와 함께 공개된 5분가량의 짧은 단편이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그림1. 낮을 형상화한 캐릭터가 먼저 등장한다.
그림2. 비슷한 모습이지만 밤을 형상화한 캐릭터가 등장하며 둘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그림3. 낮과 밤은 서로 싸우다가 각자가 가진 장점에 흥미를 보인다.
그림4. 서로 싸우던 낮과 밤은 흥미를 보이며 가까워진다.
그림5.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둘은 해가 지면서 하나가 된다.
그림6. 해가 완전히 지고 나자 이제는 몸 안의 풍경이 뒤바뀌어 낮은 밤이 되고 밤은 낮이 된 것이다.
그림7. 예전보다 더 신난 표정으로 즐거워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ABC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승패가 갈리는 결말이 아니라 공존으로 끝을 맺고 있다. 작품의 작업 방식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캐릭터는 2D 애니메이션의 셀 방식으로 캐릭터의 몸을 통해 보여지는 배경은 컴퓨터그래픽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이 합병 후 공개되는 첫 작품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낮과 밤' 의 주제는 관객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만든 구성원 스스로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종교, 인종, 불평등, 문화 등의 차이로 인한 극심한 갈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갈등이 극에 달해 전쟁마저 발생했고, 이로 인한 피해와 고통을 세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겪고 있다. 세상은 한쪽이 한쪽을 쓰러 뜨리고 이겨야만 하는 방식만으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짧은 스토리가 지닌 메시지 -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공존하기를 생각하며 재미있는 작품 한 편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김경모 작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하였다. 목원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의했다. EBS 애니메이션 시리즈 ‘미스테리야’의 스토리를 집필했으며, 현재 제주에 머물며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