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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2-08-26

내가 결정하는 내 삶의 마무리


웰빙과 그 반대의 차이는 진정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더욱이 '웰다잉'이라면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로서 인생의 새 국면을 개척하며 살아 온 <웰다잉문화운동> 원혜영 공동대표로부터 우리 사회 웰다잉 현주소를 들어본다. 에디터. 황은비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준비하고 결정해야 한다. 진학이 그렇고 결혼이 그렇고 취직이 그렇다. 죽음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죽음은 가장 확실한 우리의 미래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준비는 외면당하고 있다. 전쟁이 무섭다고 해서 전쟁에 대한 대화를 회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속수무책이 된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대화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웰다잉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때문이었다. 수술 과정에서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인공호흡기를 장기간 착용해야 했던 할머니가 호흡기를 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가족의 요구를 대법원이 받아들인 이후에도 많은 환자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이 인정한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 제정이 필요했다. 18대 국회에서 「웰다잉문화 조정을 위한 국회의원모임」이 결성되어 추진한 입법 활동이 결실을 맺어 2016년 「호스피스 완화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반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지금까지 15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내가 말기 상태가 됐을 때 인공호흡기를 낄지, 심폐소생술을 받을 지 등을 건강할 때 미리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 나서면서 깨닫게 된 것이 인생의 모든 단계마다 결정해야 할 일이 있듯이 삶의 마무리에도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격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연명치료를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내 재산을 어떻게 정리할지,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 유산기부를 할지, 말기 상태에 대비해서 후견인을 정해 놀지, 모두가 내가 결정해야 할 일들이다. 내가 결정하지 않으면 병원이, 가족이, 법이 결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연명의료, 장례 절차, 재산 배분을 놓고 부모·형제, 자식 간에,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혼율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최근 들어 이혼소송 건수보다 상속 건수가 훨씬 많아지고 있다. 2010년 이혼소송이 4.5만 건, 상속 소송이 3.5만 건이었는데 2019년에는 이혼소송이 3만 건, 상속 소송이 4.4만 건이었다. 이렇게 상속재판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유는 100세 시대를 맞아 자녀, 가족과 별개의 독자적인 삶을 누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첫째 이유이다.


둘째로 가족관계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크든 작든 자신의 부를 일군 세대들이 늙어가고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흔히들 ‘가진 거라곤 달랑 집 한 칸인데 무슨 유언장을 쓰고 말고 할 일이 있나?’하고 유언장을 쓰지 않는 이유로 삼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지금 집 한 칸이 얼마나 큰 재산인가! 유언장을 쓰는 사람이 미국은 성인의 56%라고 하는데 우리는 0.5%도 되지 않는다. 미국은 다 쓰니까 나도 쓰는 것이고 우리는 아무도 안 쓰니까 나도 안 쓰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 생명, 재산, 사후 절차 등 삶의 마무리에 관한 일들을 가족, 병원, 법원의 손에 맡기지 않고 내가 결정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웰다잉 운동이다. 우리 사회에서 웰다잉의 문제가 중요한 시대 과제로 빠르게 부상되고 있는 것은 고령화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령화는 현대 사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는 고령화가 유례없이 빨리 진행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고령사회는 전 인구의 14% 이상, 초고령사회는 20% 이상이 노인인 사회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불과 8년 만인 3년 뒤 2025년에 초고령사회, 천만 노인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사례로 꼽히는 일본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24년이 걸렸다. 이와 비교해보면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면 그것을 파악하기가 힘들고 대처하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법이다. 현재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웰다잉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미약한 상황이다. 스스로 죽음을 미리 준비하여 아름답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웰다잉 문화를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천만의 노인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러다 죽는 거지!’하고 체념한 채 살아가는 사회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자기결정권을 실천하는 사회의 품격과 활력이 같을 수 없지 않는가? 폴 발레리가 말한 ‘생각하면서 살아라,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경구는 우리 삶이 아름다웠듯이 그 삶의 마무리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쓸모 있는 조언이 될 것이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전 국회의원

(주)풀무원식품을 창업한 기업인에서 출발해 40대 부터는 부천시장 재임과 국회의원 5선 등 7선의 선출직을 지내며 30년 간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2015년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시작으로 웰다잉 운동에 힘써 왔으며, 2020년 정계 은퇴 후 현재까지 사단법인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