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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2-07-21

그리운 목소리



누군가를 다시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은 나아가 두려움이 되곤 한다. 특히 죽음은 겪어 보지 못해 더욱 어둡고 무거운 것이 되기 쉽지만, 그럴수록 자주 꺼내 이야기하다 보면 막연한 위구심과 암흑도 조금씩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달에는 박연숙 교수의 글로 작은 사색의 문을 열어보자. 에디터. 황은비



우리가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완전한 '없음'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그의 '없음'일 것이다. 그를 다시 볼 수 없고,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고, 그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인 것이다. 25년 전 어머니를 잃고 가장 그리운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어느 곳에 계시든 단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곤 했지만 꿈에서조차 들을 수 없었다.




소중한 존재의 '없음'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믿음, 나의 죽음 이후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일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실제로 죽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에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고도 여러 문화권의 종교와 예술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그려준다. 그 중에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이까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들려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월트 디즈니 픽처스에서 제작한 리 언크리치 감독의 애니메이션 <코코>(2017)이다.


<코코>는 미구엘이라는 12살 소년이 실수로 죽은 자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후 자신의 조상을 만나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멕시코의 명절 ‘죽은 자들의 날’을 배경으로 한다. 멕시코인들에게 ‘죽은 자들의 날’은 황금빛 꽃 마리골드와 촛불, 설탕으로 만든 장식으로 제단을 화려하게 꾸미고 저승에 있는 가족들을 이승으로 초대하는 ‘영혼의 축제’이다. 이러한 전통은 고대 아스텍인들이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여신에게 바치던 제사에서 유래한다. 아스텍 원주민들은 이승의 삶이 꿈에 지나지 않으며 죽음을 통해 진정으로 깨어난다고 믿었다.



영화 <코코>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영화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승과 저승이 기억으로 이어진다는 것과 이승에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저승에서 조차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설정이다.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우리에게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두렵다. 그래서 보통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코코>에서는 저승이 이승보다도 더 즐겁고 생기있는 곳이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진짜 두렵게 여겨지는 것은 저승에 있는 사람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 먼지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는 이승과 저승의 대비보다도 저승 안의 서로 다른 두 모습, 기억되는 자들의 풍요롭고 행복한 모습과 기억되지 못해 고독하고 흔적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미구엘의 증조할머니 코코는 치매에 걸려 어렸을 때 행방불명이 된 자신의 아버지 헥터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저승에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던 헥터는 사라질 위기에 놓이지만, 다행히 고손자 미구엘의 도움으로 헥터의 존재가 밝혀지고 후손들에게 다시 기억됨으로써 사라질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기억으로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 그들이 잘 지내고 있고 언젠가 함께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내게는 두 명의 언니와 세 명의 오빠가 있다. 형제자매들을 보며 돌아가신 부모님의 흔적을 떠올리기도 한다. 마음을 전하는 목소리에서, 챙겨주는 모습에서 어딘가 그분들과 닮은 부분을 찾게 된다.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바람을 간직하는 것으로도 마음은 포근해진다. 이제는 과거의 흔적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분들이 살아 계셨다면 살아 보고 싶으실만한 삶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내 자신이 좋은 삶을 살아 보는 것이 그분들에게 또 하나의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죽음 이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죽음이 끝은 아니라는 것, 절대적인 '없음'이 아니라는 것, 소중한 사람을 마음에서 완전히 앗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언제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리라 기대한다. “참 좋구나!”

박연숙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교수

숭실대학교 베어드교양대학 교수로, <소설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의 저자이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예술 철학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어린이를 위한 철학 교육, 성인을 위한 인문학 교육에 힘쓰고 있다. 문화 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연극평론가로서도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