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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감상할 때, 듣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 보고, 느끼는 다른 감각도 그 곡의 일부가 되어 다가온다. 특히 훌륭한 퍼포먼스와 결합된 음악은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유재후 칼럼니스트가 클래식 세계의 가장 유명한 ‘보는 음악’을 소개한다. 에디터. 황은비
차이코프스키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
Tchaikovsky, Ballet Music ‘Swan Lake’
방탄소년단 활동 중단 소식에 전 세계 팬들이 아쉬워하고 외신들은 ‘충격적인 뉴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앞다투어 보도했다고 한다. 한국의 드라마, 음식 등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시작된 한류가 영화, K-pop으로 확산하면서 한국은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아니 어쩌면 춤의 비중이 더 클 수도 있는 K-pop의 폭발적인 인기는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전과도 관련되어 있다. 비디오 플랫폼이 듣기만 하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 시대를 만들어 준 것이다.
‘춤’은 음악이나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동작이다. 음악이 없이 춤을 추는 동작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춤은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예술적 행위로 종교적인 목적이나 사교, 소통의 목적으로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고, 춤을 추기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춤곡들은 오랜 세월을 거쳐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 잡아 순수음악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궁정연회에서 유래된 발레도 춤으로 표현하는 예술 행위에 속하지만 다른 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춤’, 즉, 대사가 없는 연극무용이며, 음악, 무용, 미술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edicis가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가 된 후 프랑스 궁정에 도입했고, 이후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5세에 왕위에 올라 72년간 프랑스를 통치한 루이 14세는 발레 애호가였으며, 자신이 직접 무용수로 공연하기도 했다. 륄리Lully, Jean Baptiste가 작곡하고 기획한 작품 ‘밤의 발레Ballet de la nuit’에서 루이 14세가 직접 태양의 신 아폴론의 역할을 맡은 것을 계기로 ‘태양왕’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왕립 발레 아카데미가 설립되고 프랑스 귀족사회에서 필수 교양으로 여겨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발레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실이 붕괴하면서 프랑스에서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 무대는 러시아로 옮겨졌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는 러시아는 18세기 초 유럽화 정책을 표방하면서 서유럽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프랑스의 발레 관련 예술가들을 대거 불러들였다. 1847년 러시아에 도착한 프랑스의 무용수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 (1818-1910)는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입지를 굳혔고 1871년(53세)에는 수석 발레 마스터의 자리에 올라 러시아 발레 황금시대를 열었다. 파라오의 딸(1862), 돈키호테(1869), 라 바야데르(1877),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 호두까기 인형(1892) 등 명작들을 창작했으며, 지젤, 코펠리아, 백조의 호수 등 묻혀있던 작품들을 개작해 최고의 발레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그 중에서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담당한 세 작품,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은 고전발레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오늘날에도 공연 횟수가 가장 많은 작품일 뿐 아니라 모음곡 형태의 연주용 음악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이다.
볼쇼이극장 지배인으로부터 새로운 발레 음악 위촉을 받은 차이코프스키는 4년 전 조카들을 위해 작곡해 놓은 소규모 발레곡 ‘백조의 호수’를 2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개작해 공연용 발레음악으로 완성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첫 발레음악이자 오늘날 가장 많이 공연되는 발레, 그리고 음악만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는 명곡이 탄생했다. 그렇지만 1877년 초연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고 이어진 몇 차례 공연도 평이 좋지 않아 이후 극장 레퍼토리에서 제외되었다. 초연한 지 18년 후인 1895년, 당대 최고의 안무가인 마리우스 프티파는 2년 전 작고한 차이코프스키의 추도 공연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를 선정한 후 안무를 완전히 수정해 무대에 올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백조의 호수’는 세계 모든 발레단의 가장 기본적인 레퍼토리이자 발레음악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음 악애호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남아있다.
-줄거리
(제1막) 성년이 된 지그프리드 왕자의 생일축하 파티에서 왕비는 내일 밤 왕실무도회에서 신부를 정해야 한다고 당부하나 왕자는 사랑하지 않는 여인과의 결혼을 못마땅해하며 기분 전환으로 친구들과 함께 백조 사냥을 떠난다.
(제2막)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가 된 왕자가 호수에 다다랐을 때 백조 무리들이 나타나고, 왕자가 백조를 향해 석궁을 겨누는 순간 한 마리가 아름다운 아가씨 오데트로 변신한다. 겁을 먹은 오데트에게 왕자는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자 자신은 백조의 여왕 오데트라고 소개하며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마법에 걸려 낮에는 백조로 지내고 밤에만 오데트 어머니의 눈물로 만들어진 호수 옆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전해준다. 이 마법의 저주는 순수한 청년이 오데트를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했을 때 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왕자는 석궁을 부서뜨려 오데트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오데트와 시녀들은 다시 백조가 되어버린다.
(제3막) 무도회에 손님들이 도착하고 여왕은 신부감으로 여섯 명의 공주를 소개한다. 그때 로트바르트가 인간으로 변장해 오데트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한 딸 오딜과 함께 나타난다. 공주들은 왕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춤을 추지만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한 지그프리드 왕자는 오직 오딜만 바라보고 그녀하고만 춤을 춘다. 오데트는 환영으로 나타나 지그프리드에게 속고 있음을 경고하려고 하나 지그프리드는 그만 오딜을 아내로 삼겠다고 맹세하고 만다. 로트바르트는 지그프리드에게 오데트의 환영을 보여주고 왕자는 실수를 깨닫는다. 지그프리드는 호수로 급히 돌아간다.
(제4막) 지그프리드의 배신에 깊은 충격을 받아 죽기로 결심한 오데트 앞에 왕자가 나타나 사과하고 오데트도 용서하나 그 순간 마법사가 나타나 왕자는 자신의 딸 오딜과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데트는 영원히 백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왕자는 차라리 오데트 옆에서 죽는 것을 택하고 둘은 호수로 뛰어든다. 이로 인해 로트바르트의 저주는 깨지고, 마법사는 힘을 잃고 죽는다. 백조 아가씨들은 지그프리드와 오데트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
총 29곡으로 구성된 백조의 호수는 2시간 가량의 대작으로, 발레 공연이 아닌 음악으로만 전곡을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화려하고 극적인 관현악 음향효과와 서정성이 가득한 아름다운 선율로 인해 청각만으로도 호숫가의 정경, 백조들의 우아한 모습, 그리고 왕자와 백조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상상해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 음악 들어보기
서주와 성년식 정경 - 왈츠
호숫가 정경 - 백조의 주제
작은 백조들의 춤
피날레 - Final scene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