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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는 일상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은 전과 다름없이 열리기 시작한 축제 현장이 아닐까. 팬데믹이 예외 없이 지구적으로 벌어졌듯, 돌아가는 길 역시 모두가 함께다. 몸과 마음의 기지개를 켜는 국제 예술 축제 속에 빛난 한국의 예술. 편집자 주.
3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지난 4월 23일, 베니스 비엔날레가 막을 올렸다. 11월 27일까지 진행되는 이 미술 축제에 또 하나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 있으니,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선정된 한지 작가 전광영의 개인전 <재창조된 시간들>(~11.27) 소식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오프닝에는 전 세계 주요 미술인들이 몰려든다. 주요 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큐레이터, 평론가, 기획자, 작가, 그리고 큰손의 컬렉터까지. 그래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건 한마디로 미술 시장의 중심에서, 전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인사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베니스 비엔날레가 118년간 이어지는 동안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 외에 수많은 작가들의 개인전이 열렸다. 올해도 230여 명의 작가가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개인전을 연다. 그러나 전광영 작가의 개인전은 좀 다르다. 그 앞에 붙은 ‘공식 병행전시’라는 타이틀은 비엔날레 주최 측이 선정하는 약 20여 명에게만 붙는 타이틀이기 때문. 공식 병행전시에는 비엔날레의 엠블럼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올해 선정된 20여 명의 작가 중 생존 작가는 전광영 작가를 포함해 단 네 명으로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도 그 리스트에 있다. 베니스의 중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갖는 전광영 작가에게 이번 전시의 의미가 얼마나 남다를지는 대략 이 정도 설명으로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11월 27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 <재창조된 시간들(Times Reimaged)> 장소는 베니스의 아름다운 고택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냐크Palazzo Contarini Polignac‘다. 르네상스 초기의 중요 건물이자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 건축물은 내・외관 모두 분위기가 대중을 압도한다. 아름다운 베니스 운하를 끼고 있는 위치도 매력적이지만 끌로드 모네가 운하 건너편에서 이 건축물을 화폭에 담기도 해 더 유명해졌다. 베니스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 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곳은 운하를 따라 자리 잡은 덕분에 접근성이 좋고 무엇보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옆에 위치해 있는데다, 전시장 반대쪽 옆 건물에선 아니시 카푸어 전시가 열리고 있어 관람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듯 모든 것이 완벽한 전시장에서 전광영 작가는 인생 최고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한 방에 한 점만 들어갈 정도로 대작들을 위주로 설치했다. 무려 2x4m, 3x2m에 달하는 작품도 있다.
전광영 작가의 작품을 쉽게 요약하면, 고서인 ‘한지역사‘를 통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해체해 서구적인 회화 방식과 철학으로 새롭게 창조하여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담아 창조한 결과물로 설명할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동양적 추상을 시도하지만, 전광영 작가의 방식과 물성은 그야말로 과거를 뛰어넘어 독특한 새로움을 탄생시켰다. 한마디로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갖는다는 이야기다. 전시면 ‘재창조된 시간들’은 바로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간 그의 작품은 한국의 대표 갤러리 갤러리현대와 PKM, 홍콩의 펄램 갤러리, 싱가포르의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 런던의 버나드 제이콥스 갤러리를 비롯해 도쿄의 모리아트센터, 벨기에는 빌라 엉팡,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 등 세계 유수의 미술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는 동양의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서양의 오래된 역사적인 장소에서 선보인다는 것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이곳에 설치된 약 6점의 설치 작품과 구작과 신작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약 30여 점의 평면작품을 보며, 과연 전광영의 작품과 이 공간이 만나 만들어낸 오묘한 접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며 관람하는 것이 주요 관람 포인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전광영 작가의 유일한 예술적 동력인 ‘종이’라는 매체를 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다가가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전광영 작가의 작품에서 종이가 차지하는 의미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삼각 스티로폼을 고서로 고이 싸서 일일이 끈으로 묶고 그것을 다시 추상의 형태로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결국 끈으로 묶인 각양각색의 고서가 평면을 뒤덮는데, 고서 조각들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화면의 음양을 감상하다 보면, ‘과연 우주적!‘이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작가에게 종이는 ‘부드러운 소재’라거나 예술적인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다. 1천 년의 세월을 견딘 놀라운 소재이자 생명력 자체다. 사회적 억압, 과학 기술 만능주의 등으로 찌든 피폐한 현실을 우리 고유의 ‘한지’로 포근하게 감싸고 다시 묶어내는 재생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정서적 회복과 치유라는 생태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때문에 전광영 작가는 이번 베니스 전시장 정원에 유명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와 함께 특별 협업 작품 ‘한지 하우스’를 제작해 설치했다. 2년 넘게 팬데믹을 겪어오며 삭막해진 우리 현실과 전 인류의 무너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할 치유의 기념비적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 한지하우스 내부엔 4차원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데 관객이 앉아 있으면 천정에 삼각형들이 날아다니다 관객이 이동하면 그 삼각형들이 사람을 피해 다른 곳에서 날아다니는 식이다. 마치 나비처럼 보이는 삼각형들은 삭막해진 우리 현실과 전 인류의 무너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할 치유의 의미다.
삼각형 모양 작은 스티로폼을 고서 한지로 싸고 천연 염색 기법으로 물들인 후 재결합한 그의 대표작 ‘집합’시리즈가 이번에도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구성하는데있어 평면과 입체를 엄격히 구분하거나, 삼각, 사각, 원 등의 표현 방식에 얽매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광영 작가는 설치 작품뿐 아니라 벽에 걸리는 입체 회화조차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조각들이 화면을 율동적으로 구성하던 평면적 실험에서 시작해 거대한 완전한 조각의 형태까지 경계를 확장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 형태와 컬러에 따라 각 작품이 뿜는 에너지 또한 천차만별이다 보니, 이번 전시에서도 형태와 크기가 서로 완벽히 다른 모노톤의 작품과 레드톤의 작품이 서로 이질적이지만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작품에 사용하는 천연 염료는 같은 빨간색이라도 각각의 조각이 모두 다르게 보이는 마법을 선사하는데, 그래서 그의 작품이 우리의 동양적 정서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서구적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에 임하는 태도와 생각은 본인이 평생 생각하고 살아온 삶의 방식 속에서 결정된다고 믿는 전광영 작가의 작품에는 작가가 처절하게 고민한 세월과 시간이 묻어난다. 살아오면서 부딪힌 많은 순간에 영향을 받았고, 그 순간이 차근차근 모여 자신의 작품을 탄생시킨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도 한국적 색채가 강하지만,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편적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김이신 <아트나우> 편집장
<아트 나우> 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