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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1

고즈넉한 한옥에 이런 팝아트



전통의 품격과 현재의 아름다움, 미래의 가치를 서로 잇고자 마련된 프라이빗 한옥 갤러리 이음 더 플레이스에서 한국의 대표 팝아트 작가 아트놈(ARTNOM)의 개인전 <호호호 晧好虎>(~3.13)가 열리고 있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해를 기념한 작품들 덕에 한옥 구석구석에 에너지가 넘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국제갤러리, 갤러리 현대, PKM갤러리 등 국내 주요 전시 스팟들이 즐비한 삼청동을 자주 다녔지만 구한말(1908년)에 지어진 한옥 대저택을 모태로 탄생한 예술공간 ‘이음 더 플레이스(이하 이음)‘를 발견한 건 최근이다. 2008년 개관 이후 한옥과 예술의 가치를 잇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를 조명하며 가장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갤러리의 모습을 고민해 온 이음은 지금까지 공공 대상이 아닌, 소유주의 지인 및 아트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연 1회 전시를 펼치는 프라이빗 갤러리로 방문객들과 만났다. 일년에 한번 열었던 오픈전시회의 이름은 ‘이음展’. 그간 프랑스 르브르 박물관 소장작가로 이름을 날린 ‘팔준도(Eight horse)‘의 ‘Li Jing Ge’와 ‘광화문에 뜬 달‘로 잘 알려진 세계적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 나전칠기의 대가로 손꼽히는 김걸 장인 등을 비롯, 젊은 예술가 시리즈로 한국의 미를 한지에 담아내는 서정민 작가의 작품 등이 소개됐다.



모란호랑이, 97.0x130.3cm(60호), acrylic on canvas, 2022


전시를 둘러보기 전, 이음이라는 공간을 건축적으로 좀 더 구석구석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청동에서도 고지대에 위치한 덕분에 이음의 한옥 끝부분의 다실에서는 인왕산과 경복궁이 풍경화처럼 한 눈에 들어와 안긴다. 한옥의 백미인 자연과 주위 경관을 빌려와 공간의 경치에 포함시키는 ’차경‘을 잘 활용한 것. 본래 자리하던 한옥 아래 두 채의 한옥을 더 구입해 한 공간을 꾸민 덕분에 한옥 고택 중에서도 꽤 큰 면적을 자랑하는 것도 특징이다. 고요함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잔잔한 풍경소리는 도심의 치열함을 잠시 뒤로 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삼청동에서 만날 수 있는 한옥들에 비해 이음은 내부 면적이 넓고 고지대에 위치해 삼청동 일대가 한 눈에 보인다.

봄과 여름에는 푸른 녹음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이음의 건물구조는 본채와 별채의 독립된 공간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본 마당을 중심으로 5개의 마당이 구석구석 공간을 잇고 있는데 재미난 점은 본채 구석에 앉아서도 별채 구석을 살필 정도의 개방적인 구조를 만들어 낼 수도, 또 반대로 출입구를 찾지 못할 정도로 미로 같이 격리된 공간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 그만큼 공간이 유연하다. 한옥의 아름다움의 명맥을 온전히 유지해 가는 이음 안에는 조상들의 지혜와 해학이 고루 담겨 있다. 건축과 함께 역사와 문화, 자연, 그리고 예술을 조화롭게 잇는 것이 이음의 진짜 매력이다. 전통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치를 잇는 가교로서 이음은 한국의 독특한 정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장르의 현대 예술이 표현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닌 삼청동의 예술 허브다.



작가는 자신이 창작한 캐릭터를 작품 전면에 늘 등장시킨다. 또한 하이엔드 브랜드 ‘루이비통’과 스트리트 브랜드 ‘수프림’과의 협업 작업에서도 영감을 얻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키치하게 넘나드는 것이 유머러스하게 보인다.

(좌)I need you, 60.6x72.7cm(20호), acrylic on canvas, 2021, (우)Boy, 60.6x72.7cm(20호), acrylic on canvas, 2022


그간 이음은 소수의 관객과 만났지만 하지만 올해부터는 예약만 하면 누구나 전시를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한해 동안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총 7명의 작가를 기획전 형태로 소개할 예정. 법정스님의 ‘일기일회(一期一會, 단 한 번의 만남)’에서 영감을 받은 ‘일기일화(一期一畵,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마주하는 이 그림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를 주제로 시작하는데, 첫 주인공은 바로 강력한 시각적 모티브와 전통 요소의 차용, 자기복제술과 유희, 현실에 기반한 스토리텔링 등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팝아트 작가 아트놈이다. ‘아트놈‘의 의미는 ‘아트하는 남자’.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작업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작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자 캐릭터다. 아트놈은 위트와 재미를 추구하는 ‘퍼니즘’, 즉 재미주의자인데, 안현정 미술 평론가는 아트놈을 ‘자기유희의 미학화‘를 작업 방식으로 삼은 작가‘라고 정의하며 “이질적인 가치가 우연과 필연의 무분별한 뒤섞임 속에 존재하는 ‘혼성잡종의 시대’에 아트놈은 옳고 그름의 가치 역시 상황과 주제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질적이고 낯선 삶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오늘이라면 차라리 혼성잡종 그 자체를 정체성으로 삼아버린 것이다“라고 아트놈의 정체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음 앞마당에 설치한 아트놈의 거대 설치 작품. Green Motaru, 6x5m, air-inflated membrane, 2020


이번 전시는 제목 ‘호호호 晧好虎‘에서 알 수 있듯 빛나고, 아름다우며, 용맹한 호랑이와 같은 기백으로 살기 바라는 새해 덕담을 전시에 녹여냈다. ‘Happy Family’(2021), ‘Boy’(2022), ‘모란 호랑이’(2022) 등 해학의 감수성이 가득한 회화 작품과 ‘Rest’(2022), ‘Green Motaru’(2020)’, ‘The Heart Motaru’(2020)’ 등 한옥 마당과 별채의 공간을 채운 설치 작품 30여 점은 아트놈이 어떻게 미술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우선 조그마한 한옥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널따란 마당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음은 한옥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면서 풍류의 자태를 뽐내는 연못을 마당 넓게 펼쳐놓은 점이 독특하다. 겸허하면서도 세련됨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는 이곳에는 소나무와 감나무를 배경으로 설치된 에어 조형 작품 ‘Green Motaru‘(2020)가 마당 가득 자리하고 있다. ‘모타루‘는 자신이 키우는 사고뭉치 강아지에게 묻는 질문 “뭐하러 그러니?“의 줄임을 영어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언어유희. 아트놈의 작업에서 핵심 키워드가 ‘재미’라는 걸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현대적인 캐릭터에 우리 전통 민화풍을 가미한 오방색을 사용한 에어 설치 작업은 친숙하면서도 익숙한 이미지. 우리 주변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낸 작가의 위트를 통해 관객들은 현재 자신과 주변의 사물들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이음 본채는 작품을 감상하는 갤러리 형태를 띠지만 다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실이 함께 마련되어 있다.


마당을 지나 본채로 올라오면 본격적으로 아트놈의 ‘펀‘한 회화 작품들의 관람객을 반긴다. 우선 본채 내부는 각 방마다 누마루와 온돌을 다르게 설치해 자연변화와 계절의 정취를 물씬 느끼도록 한 것이 포인다. 밖으로는 나무와 돌, 흙을 대립적이면서도 조화롭게 배치해 관람객들이 전혀 다른 자연적 성질에서 이질감대신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반영했다. 본채에 자리한 ‘가지와 호랑이‘(2017), ‘가지화조도‘ (2022), ‘rest‘ (2022) 등의 작품들은 아트놈 작가 본인과 가족을 형상화한 현대적인 캐릭터에 우리 전통 민화를 가미한 팝아트 회화들과 조각. 자신의 외모를 유쾌하게 표현한 캐릭터 '아트놈', 토끼띠인 아내에게 선물하고자 창작한 토끼 소녀 캐릭터 '가지', 부부가 키우는 강아지 '모타루' 등의 캐릭터를 통해 아트놈은 위트 있는 유머로 세상과 자신을 균형감 있게 직시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별채에는 대형 작품과 소형 작품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본채에 이은 별채는 긴 회랑같은 구조다. 마당에서 본 대형 모타루의 소형 버전 ‘The Heart Motaru’(2020)’이 설치되어 있으며 ‘Happy smile‘(2021) 등 드로잉 시리즈와 세밀한 작업을 요하는 채색시리즈 작업이 혼재해 있다. 아트놈은 고매한 전통미술이 갖는 순수성의 가치를 유머코드로 전환시킴과 동시에 '키치(Kitsch)'를 신자유주의 속 문화 안에 고정시키는데, 우리나라의 다보탑에 루이비통 로고를 켜켜이 입힌 작품 ‘Art Dabotap‘(2022) 등이 대표적이다. 고고한 예술 작품의 전통적인 가치를 세속적인 상품 로고를 통해 전복시켜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 작가는 이렇듯 상반된 성격을 지닌 아이템을 병치시켜 가치를 뒤섞고 전복시킨다. 또한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More Simply’(2021),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색감을 사용해 동양적인 느낌을 낸 ‘모란호랑이‘(2022) 등은 동서미감의 정수를 보여주며, 루이비통과 수프림을 믹스한 배경의 회화 작품들은 선명한 컬러의 브랜드 로고에 강렬한 색감으로 결합돼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아트놈은 이번 전시에 앞서 밝혔다. “어떤 대상을 포장된 메시지로 규정짓기보다 좋아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내 작품의 중요 동기인 것 같다. 그 안에서 토끼소녀가 ‘가지’로, 말썽꾸러기 강아지가 모타루’ 등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이들 캐릭터는 모두 나 자신의 여러 단면이다. 농담과 유희를 좋아하는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들, 좋아하는 분들과 대화 속에서 만나는 나 자신의 성격 등이 작품해석의 모티브가 됐다.“



이번 전시 관람 티켓은 사진에 보이는 다과 한상을 곁들일 수 있는 다과 페어링 티켓으로 준비되어 있다. 2시간 동안 다과와 함께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작가의 가치관이 담긴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이음은 ‘호호호 페어링’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과 세트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마당에서 직접 딴 홍시, 약과 등으로 구성된 전통 다과와 차로 오붓한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1시와 오후 1시·3시 타임 중 예약할 수 있으며, 관람 후 한옥에서 아름다운 다과 페어링을 대접받을 수도 있으니, 작품 감상과 함께 여유 있는 차 한 잔 어떨까?


문의 이음 더 플레이스 02-736-8118, 종로구 삼청동 35-3

김이신 <아트 나우> 편집장

<아트 나우> 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