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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피플
2022-02-18

다시 오는 봄처럼



에덴동산이 모두에게 가보고 싶은 소망의 공간이라면, 에덴낙원은 그 소망을 나눌 수 있는 교감의 장소다. 많은 가족의 추억으로 빛나는 공간, 특히 일곱 개의 에덴가든에선 계절의 오고 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정원에 옹기종기 꽃과 나무를 채워 넣은 이는 누구일까. 자연을 닮은 삶, <뜰과숲> 권춘희 대표 이야기.


자연과 가까이

에덴낙원은 작업만 6개월, 최초 기획부터 치면 2~3년 정도 걸린 프로젝트입니다. 긴 기간 공을 들인 정원이죠. 그마저도 곽요셉 이사장님과 최시영 건축가 두 분이 기본 바탕을 잡아 주셨고, 추구하는 방향도 잘 맞았기에 가능했어요. 대개 새로 만든 정원은 적어도 3년은 지나야  모습을 제대로 갖추는데요, 에덴낙원은 규모도 크고  다양한 정원이 모여 있기 때문에 꾸준히 살피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환경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며 지냅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 만큼 가드닝이나 식물에 관심 가지는 분들도 많이 늘었어요. 정원은 우리에게 위로와 경각심을 동시에 주는 존재예요. 식물을 좋아하면 환경을 소중히 여기게 되거든요. 이제 많은 분들이 텀블러를 사용하고 기꺼이 채식을 해요. 저는 아직 비건은 아니지만, 고기보다 채소 위주의 식사를 좋아합니다. 얼마 전 채식 박람회도 다녀왔는데 친환경, 오가닉을 원하는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 라이프스타일이 점차 자연에 가깝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자연을 참 좋아했어요. 집이 경북 의성에서 사과 과수원을 했는데, 매일 나무 돌보는 아저씨들 따라다니는 게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습니다. 늘 산과 들, 숲에 파묻혀 지냈고, 예쁜 꽃이나 나무를 보면 전부 마당에 옮겨 심어서 할매(할머니)가 나무라기도 많이 하셨어요. 친구들은 도시에 나가는 게 꿈이라고 했지만, 저는 반대였어요. 농업 대학에 가려다가 집안의 반대 때문에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좇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조경에 정석 코스를 밟지 않은 것이 제 스타일을 만드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만드는 정원은 자연 그대로인 숲의 모습을 추구합니다. 한국의 자연에 애정이 크기 때문에 주로 거기서 영감을 얻어요. 알고 보면 자연은 굉장히 규칙적이에요. 작은 잎사귀, 얇은 가지 하나를 뻗는 데에도 정확한 규칙이 있죠. 그것이 모여서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이 되는 걸 보면 깨달아 지는 게 있어요. 작든 크든 모든 생명이 지닌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죠. 삶도 마찬가지로 억지 부리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노력하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저는 일에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작업하는 편이에요. 제가 만든 정원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고, 감사해요.




변화하며 돌아가는 삶

얼마 후 봄이 만연하면 정원도 절정에 이르러요. 저는 에덴낙원에서 ‘화이트가든’과 ‘셰프가든’을 참 좋아하는데요, 흰 꽃으로만 채운 화이트가든은 5~6월에 특히 아름답고, 셰프가든엔 블루베리, 아스파라거스, 루꼴라 등을 심었어요. 레스토랑에서 쓸 채소를 직접 기르고 준비한다는 콘셉트인데, 몇 년이 지나도 트렌드와 잘 맞죠.


처음 에덴낙원에 대해 들었을 땐 죽음과 관련한 공간이 일상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게 낯설기도 했어요. 세상에 없던 공간이었으니까요. 같은 장소에서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들이 추억을 쌓고, 또 대대로 오래도록 그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해준다는 게 놀랍고 감동적이에요. 세상이 한창 강퍅하던 가운데, 점차 느리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요, 죽음에 미리 대비하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에덴낙원의 콘셉트는 이미 굉장히 앞선 생각이었던 거죠.


저희 어머님이 2년 전쯤, 돌아가셨어요. 그때 제 딸이 장례식장에 가면서 가장 아끼는 블랙 원피스 한 벌을 챙기더군요. 그저 관습이라는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입을 바엔, 가장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싶다면서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거기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은 에덴낙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했던 궁금증이 그때 풀렸죠. 앞으로 장례 풍경이나 문화도 자연스레 달라지겠구나 싶어요.




다시 봄,

한번은 길을 가다가 민들레 한 포기를 봤어요. 추위가 채 가시기 전이었는데, 꽃을 다 피우고 이미 씨앗까지 날리고 있더라고요. 추위 속에 일찌감치 제 몫을 다 해낸 민들레가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 없었어요. 그 무렵 저는 할 일이 늘어나는 중에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거든요. 자연은 늘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냅니다. 그리고 팬데믹을 겪는 우리에게도 어딘가 좋은 변화가 계속되고 있어요.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저마다의 행동과 노력도 필요하겠지요. 저도 올해 제 자리에서 올해 더 부지런히 자연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토종 숲을 정원에 구현하기 위해서 이에 걸맞은 식물과 토양, 친환경 경작법도 연구해 볼 예정이에요. 자연은 조금 알았다 싶다가도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평생 이 일을 한 제게도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흔히 겨울은 식물에게 죽음일 거라 여기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저 잎이 보이지 않는 것일 뿐, 꽃을 피우지 않을 뿐이죠. 뿌리인 채 잠을 자거나, 씨앗을 맺으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생명을 이어갑니다. 멸종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봄이 오죠.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언젠가 안식에 들더라도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이후의 단계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거니까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면서요.

황은비 에덴미디어 편집장 대행

에디터, 기자, 에세이스트. 언론을 전공하고 매거진, 일간지 등 매체에서 일했다. 현재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며 기억될 콘텐츠를 고민하고 만든다. 2021년 에덴미디어 편집장 대행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