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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2022-01-18

송은문화재단의 혜안



2020년대의 우리는 새로운 것이 수없이 생겨나고 곧 다시 사라지는 짧은 호흡에 적응하며 산다. 그런 가운데, 20주년을 맞이한 송은미술대상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어제와 같이 지속되는 예술 세계의 힘이자 위안이라 할 수 있다.


역량 있는 동시대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2001년부터 매년 운영하는 미술상이 있다. 바로 송은문화재단의 '송은미술대상'. 올해 21회째를 맞이한 이번 미술 대상에는 총 539명이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스무 명의 작가가 본선에 올랐다. 저마다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제 21회 송은미술대상전>(~2. 12)은 김홍기 비평가의 심사평처럼 “동시대 미술계를 이루는 다양한 주제와 표현 양식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전시다.


기업들이 작가들을 후원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개인이나 기업 차원의 아트 컬렉팅에서 확장해, 기업가의 문화예술 철학과 가치를 반영한 미술상을 제정하는 것은 공익사업이란 의미에서 미술 생태계에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단시간에 최고의 작가와 작품을 식별해내는 것은 물론 작가나 작품을 시장가치로 편가르지 않고 예술적 가치로 평가한다는데 미술상의 큰 의의가 있다.


송은미술대상은 현 송은문화재단 이사장인 에스티인터내셔널(구 삼탄) 유상덕 회장이 ‘대중에게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 송은문화재단의 설립자 故 송은 유성연 명예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1년에 제정한 미술상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상제도를 만들기 위한 외부 심사위원의 철저한 개별 심사를 바탕으로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역량 있는 작가를 선정하고 표창해 전시회를 열어주는 등 향후 활동을 독려해왔다.



지하 2층 설치전경. 왼쪽에 보이는 붉은색 미디어 작품이 대상 수상자 권아름의 작품이다.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송은미술대상은 제정 20주년을 맞아 그간 본선진출자 네 명을 선정해 전시를 열어주고 그 중에서 한 명의 대상 수상자를 선정했던 것에서 바꾸어 폭넓은 국내 신진 작가군이 지원할 수 있도록 자격 기준을 완화하고 본선 전시 참여 작가를 스무 명으로 확대했다. 이번 송은미술대상 본선에 오른 작가 20인은 권아람, 김경태, 김다움, 김우진, 김은형, 김인배, 김지수, 김지영, 김지평, 류성실, 박광수, 박형렬, 서해영, 심래정, 이정우, 조경재, 최고은, 최병석, 한 & 모나, 후니다 킴. 최종적으로 외부 심사위원 6인의 심사를 거쳐 대상에는 미디어 작가 권아람이 선정됐다. 송은문화재단은 권아람 작가에게 상금 2,000만 원을 수여하고 2년 안에 송은에서의 개인전 개최를 지원할 뿐 아니라 송은문화재단과 까르띠에의 후원으로 권아람 작가의 작품 총 2점(약 3,000만 원 상당)을 추가 매입할 예정. 그렇다고 혜택이 대상에게만 국한되면 섭섭하다. 본선 진출 작가 스무 명에게도 ‘송은문화재단–델피나 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 자격을 부여한다. 여기서 선정된 한 작가에게는 12주간 델피나 재단 레지던시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송은 1층에 단독 설치되어 있는 김다움 작가의 ‘잠걸음’.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본선 전시의 참여 작가 수가 대폭 늘어난 만큼 올해 전시부터는 다수의 작가와 작업을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작품은 송은 1층 로비에서 바로 마주할 수 있는 김다움 작가의 ‘잠걸음’(2021). 주변에서 발생하는 인터페이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그 흔적을 모아 영상 및 설치작업으로 풀어내는 김다움은 그간의 개인전에서 채팅 속 대화, SNS의 타임라인 등에서의 흔적을 수집해 재분류하고 재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을 해왔다. ‘잠걸음’은 그 동안의 작업에서 한발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를 안고 움직이는 모습을 곡선 형태의 쇠파이프로 형상화 한 후 전자악기로 디자인한 숨소리, 빗소리, 이야기 소리, 발 소리에 전시장에서 녹음한 다양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더해 리듬을 구체화한 것이 포인트. 시각 뿐 아니라 청각과 후각에 연결된 기억과 감정을 키워드로 작업하는 작가의 본질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함을 알 수 있다.



2층의 전시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s. All rights reserved


2 층 전시장에서는 김은형과 류성실의 작품이 눈에 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고전 작품들을 오늘날의 이슈와 새로이 접목시킨 수묵 드로잉으로 선보여 온 김은형은 이번 전시에서 뇌 형태의 입체 드로잉과 NFT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설치 작업 ‘뇌행성 정류장 1‘(2021)과 수묵화 ‘뇌행성 정류장 2‘(2021)를 선보였다. 사진에서 보이는 대형 수묵화 ‘뇌행성 정류장 2‘은 번뇌를 만들어내는 뇌행성 공장의 다양한 모습들이라고 한다. 전시장 중간에 설치된 류성실의 설치와 영상 작품도 흥미롭다. 작가는 가상의 효도관광 여행사 ‘대왕트래블’을 설립해 뒤엉킨 시대상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는데, 이번 전시에서 류성실은 지난 3년간 작업해 온 ‘대왕트래블’의 서사를 통해 광고물로 소비되는 예술의 생존 전략을 드러낸다. 작업의 주 캐릭터인 ‘체리 장’의 반려견 아롱이와 다롱이가 전시장에 매달려 있어 지나가는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2층에 독립적으로 설치된 최고은의 쇠 파이프 작품. 건축물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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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과 함께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최고은 작가의 작품도 그냥 지나쳐선 안된다. 최고은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전, 가구를 모아 조각과 설치작품으로 선보이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가. 갤러리 P21에서 <비비드 컷츠>(2021), 시청각에서 <오렌지 포디움>(2018), 김종영미술관에서 <토르소>(2016) 등의 개인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산업사회의 체계와 그것을 비로소 가능케 한 도시라는 네트워크에 관해 증언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수도 설비용 산업 규격의 동 파이프로 신작 ‘컷’(2021)을 선보였다. 동파이프를 자르고 벌린 조각을 통해 물질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방식과 조각가의 적극적인 행위라는 양면을 드러낸 이 작품은 세계적인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건축한 송은 2층에 설치 되어 있는데 그 규모와 스케일이 남달라 존재감이 명확하다.



3층 전시 전경. 심래정, 김지평, 김지수 작가의 작품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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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으로 올라가면 입구에서 부터 심래정 작가의 회화가 관객을 맞는다. 심래정은 일러스트처럼 보이는 '미뢰'(2021), '혀와 목'(2021), '레스토랑'(2021) 세 점에서 인육 혹은 내장과 같아 보이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보여준다. 미스터리한 식재료들로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이 담긴 짧은 코믹북과 같은 구성의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동아시아의 병풍, 족자 등을 통해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적 기호에 관한 작업을 선보여 온 김지평은 이번 전시에서 병풍 형식을 빌린 ‘없는 그림‘(2021)을 선보였다. 한국 미술사에서 문헌으로만 남아있는 회화를 다뤘는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는 볼 수 없는 옛날 그림을 유추하거나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하 2층 전시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대상 수상작을 구경할 수 있는 지하 2층으로 이동하면 가장 중간에 놓인 최병석 작가의 덫 시리즈 연작인 ‘끈‘(2021)과 마주한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형태의 덫들이 포개어지고 그 구조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견고하게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같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오른쪽 거대한 화면의 영상은 김우진 작가의 ‘황금 신을 신을 수 있는 사람‘(2021). 김우진은 언어가 변화하는 과정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기억되는지 수집하고 인간을 규정짓는 프레임에 질문을 던져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제주도 방언과 일본의 아이누어(語), 그리고 발 모형을 깎아 내 억지로 황금 신에 발을 맞추려는 모습의 교차점을 보여주며 통제로 인해 구성원 스스로가 옛 언어를 버리고 특정 언어를 몸에 익히며 사용하는 것이 설화 속 구두 이야기와 일맥상통함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붉은 컬러가 인상적인 미디어 작품은 권아람의 ‘Walls‘(2021). 4채널 컨티뉴어스 비디오, 사운드, LED, 아크릴 미러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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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상작인 권아람 작가의 ‘Walls‘(2021)은 지하 2층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설치되어 있다. 권아람 작업의 특징은 디지털 스크린과 거울을 주재료로 삼는 다는 점. 다양한 설치 작업을 통해 미디어 세계의 허상을 비판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불완전한 세계관과 개인적인 사고를 결합한 고민을 다뤄왔다. 지하 2층에서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붙잡는 작품 ‘Walls‘는 개별 스크린에 거울이 결합된 스크린 설치 작업이다. 메시지가 뚜렷한 영상이 아닌, 레드와 블루 컬러가 교차되는 스크린은 고장난 스크린 화면, 즉 매체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모습을 상징하며 ‘미디어’라는 매체의 속성에 대한 믿음을 뒤흔든다.

곽아람 작가의 작품은 “이번 대상전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달라진 시공간적 구도와 대상 인식을 탐구하는 작업,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발견되는 키치와 대중문화를 전유하는 독특한 작업들이 보였다“라는 김홍기 비평가의 심사평에 가장 합당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작품은 송은문화재단과 서울시립미술관에 각각 소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년 입주 기회를 제공하며 작가의 꾸준한 작업 활동 및 발전을 도모한다고 하니, 곽아람 작가의 다음 행보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건 어떨까?


사진제공 송은문화재단

김이신 <아트 나우> 편집장

<아트 나우> 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