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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부터 왠지 모를 가냘픔이 느껴지는 악기. 하지만 피아노야말로 부드러움에서 강인함까지 다른 어떤 악기보다 넓은 범위의 페르소나를 소화한다. 특히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베토벤의 걸작들은 아름다운 선율로 피아노의 위상을 오래도록 공고히 하고 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in Eb, Op.73 ‘Emperor’
요즘엔 초등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이 다양해졌지만 3~40년 전쯤엔 피아노 교습이 가장 유행이었다. 학교 부근엔 어김없이 피아노 학원들이 있었고, 피아노는 그리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가장 대중적이고 친근한 악기였다. 그렇지만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에 비해 피아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7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의 바로크 시대에도 피아노와 비슷한 모양의 건반악기가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를 축소한 듯한 형태의 쳄발로cembalo(또는 하프시코드harpsichord)라는 이 악기는 건반의 뒤편에 있는 플렉트럼plectrum(현악기의 줄을 튕기는 도구)이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구조로 되어있다. 현악기 음색으로 음량이 풍부하고 예리하면서도 청아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이 쳄발로는 건반을 누르는 힘의 세기와 관계없이 일정한 강도로 현을 튕기기 때문에 음에 강약을 줄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이 약점을 보완해 새로 개발된 건반악기가 피아노이다. 피아노는 현을 뜯는 구조가 아닌 해머hammer로 현을 때리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건반을 누르는 강도에 따라 음의 강약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클래식 세계에서 피아노의 남다른 위상은 베토벤, 모차르트 등 뛰어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가 남긴 또다른 작품이다.
‘피아노piano’는 이탈리아어로 ‘작게’ 혹은 ‘여리게’라는 의미이다. 반대어는 ‘강하게’라는 뜻의 ‘포르테forte’로, 두 단어 모두 음악용어로 많이 쓰인다. 18세기 중엽 초기 피아노의 명칭을 ‘포르테피아노fortepiano’라고 불렀다. 즉, 쳄발로의 약점을 개선한 것으로 음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건반악기라는 의미가 담겨있었고, 그 후 기능이 점차 개선되어 가면서 이름도 ‘피아노’라는 약칭으로 굳어졌다. 이 현대적인 피아노가 쳄발로를 대신해 독주 악기로서 두각을 나타냈던 시기는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활동했던 18세기 말엽이다. 작곡가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그들에 의해 피아노는 서양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악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토벤은 22세 때인 1792년에 고향인 본을 떠나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본을 방문했던 하이든과 만남이 계기가 되어 음악의 중심지로 활동무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베토벤은 작곡가로서의 위상은 보잘것없었으나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은 빈에서도 널리 퍼져있었다. 특히 1년 전인 1791년, 모차르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빈 음악계에서는 새로운 천재 피아니스트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었고, 베토벤은 충분히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반면 작곡에는 신중함을 보였던 베토벤은 1795년(25세)에야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출판했다. 작품번호 1번인 ‘피아노 삼중주 3곡’은 당대 평론가들과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베토벤은 곧이어 피아노 소나타 3곡(Op.2)을 발표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서서히 다져 나갔다. 피아노와 관현악단이 협연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작품인 협주곡도 이 무렵 작곡했던 것으로 보이나, 이 작품에는 그다지 자신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1797년(27세)에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출판한 후, 이듬해에 일부분을 수정해 2번으로 발표했다.
베토벤의 작품세계는 일반적으로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한다. 초기(1793년~1802년)는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작품들을 모방해 가면서 점차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시기, 중기(1803년~1816년)는 모방에서 완전히 벗어나 베토벤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어법으로 걸작들을 양산하는 시기, 후기(1817년~1827년)는 내면의 성찰을 통해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9개의 교향곡, 32곡의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16개의 현악 사중주들은 모두 이 시기들에 따라 작품세계가 완연히 구별된다. 피아노 협주곡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큰 사랑을 받는 베토벤의 변화무쌍한 피아노 곡들.
베토벤은 총 5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그 중 20대 후반에 작곡한 1번과 2번에서는 전반적으로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영향이 비교적 많이 보인다. 부드럽고 온화하며 때로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이 두 작품은 때로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1800년(30세)에 발표한 3번은 이전의 피아노 협주곡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3분 가까이 지속되는 서주부의 관현악은 장대하고 남성적이며, 이어 나타나는 피아노 독주 또한 당당하게 관현악과 대립하고 화합하면서 멋진 조화를 이루어낸다. 초기 작품에 속하지만 이미 베토벤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1805년(35세)에서 1806(36세)년에 걸쳐 완성한 4번에서는 한 걸음 더 비약적인 변화를 보인다. 3번과 달리 정적인 분위기의 이 협주곡은 독창적이고 파격적이며, 더욱 원숙해졌고 깊이가 있다. 이전의 협주곡에 있어서 관례적인 관현악의 서주부 대신 피아노 독주로 시작한다. 부드럽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피아노 독주를 이어받아 관현악이 발전시키고, 이어 서로 대화하듯이 주고받는 피아노와 관현악의 선율은 밝고 아름답지만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5번 ‘황제Emperor’는 1809년(39세)에 완성되었다. 비단, 베토벤의 협주곡 뿐만 아니라 고금의 모든 협주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곡이다. 스케일이 장대하고 현란하며 역동적이다. 부제 ‘황제’는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고 어느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부터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렸는지도 확실치 않다. 후세 작곡가나 악보 출판업자에 의해 ‘협주곡 중의 황제’라는 의미로 붙여진 별칭이 부제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1악장은 ‘황제’의 이미지처럼 위풍당당하고 힘차다. 짧지만 강렬한 관현악의 외마디 울림에 이어 시작하는 피아노 독주는 곡의 전개를 암시하듯 화려하고 강렬하다. 20분 정도 연주되는 긴 악장이지만 긴장감의 연속이다. 아다지오 속도의 느린 2악장은 1악장과 대조적이다. 차분한 관현악 반주 위로 펼쳐지는 자유로운 변주곡 풍의 피아노 독주는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심오하며 호소력이 강하다. 쉬지 않고 계속되는 3악장은 쾌활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40분 가까이 연주되는 대곡이지만 길게 느껴진 적이 없다. ‘협주곡 중의 황제’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피아노는 표현력이 다양한 악기로 동시대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적잖은 기쁨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곡 전곡을 음반으로 남긴 피아니스트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등 명 피아니스트들이 60여년 전 녹음한 음반들을 자주 접하지만, 대가의 반열에 오른 1956년생 크리스티안 치메르만Krystian Zimerman의 30여년 전 실황 연주를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 음악 들어보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in Eb, Op.73 ‘Emperor’
-Krystian Zimerman, Wiener Philharmoniker, Leonard Bernstein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