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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8

에덴클래식 #10 죽음과 수난도 아름답게 그려내는 클래식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데는 훌륭한 음악성만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최고의 종교음악으로 꼽히는 대작 ‘마태수난곡’의 재조명은 하마터면 큰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힐 뻔 했던 바흐의 음악 세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역사적 일화다.


바흐, 마태수난곡 J. S. Bach, Matthew Passion, BWV 244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관람한 연주회들을 더듬어보면 유명한 연주 단체라고 해서 공연 만족도까지 높은 것은 아니었다. 기대감이 컸기에 실망이 큰 경우가 많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십여 년 전에 <고양아람누리> 음악당에서 보았던 한 연주회는 꼭 보고 싶어 일찍이 예매한 공연인 데다, 기대 이상으로 만족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헨델의 메시아와 더불어 서양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과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함께 연주했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는 사망 전까지 27년간 라이프치히에 거주하면서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으로 봉직했다. 그가 44세 때인 1729년에 마태수난곡을 완성하여 4월 15일 성금요일(聖金曜日,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리는 날)에 초연한 곳도 바로 성 토마스 교회이다. 그러나 이 곡은 바흐가 죽은 후 잊혀진 음악이 되었고, 누군가의 소유물이었을 악보는 연주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었다. 그렇게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그 악보는 10대 중반 멘델스존의 수중에 들어왔다. 어떻게 그의 소유가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겨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엄청난 부를 지닌 예술 애호가 집안이었기에 수집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음악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20세의 젊은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은 1829년, 초연된 지 100년이 지난 마태수난곡의 부활 연주를 거행했다. 연주회는 성공적이었고 청중들은 감동했다. 이는 음악사적으로 매우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 날을 기점으로 마태수난곡이 최고의 종교음악으로 재탄생되었고, 이전까지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흐의 다른 모든 작품들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비로소 바흐는 서양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난곡’이란 성서 속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음악화한 작품을 말한다. 스토리가 있지만 오페라와 달리 무대장치가 없고 연기도 하지 않는다. 바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26장(예수의 수난에 대한 예언, 체포)과 27장(처형과 매장)의 줄거리를 중심으로 수난곡을 구상해 친구인 작사가 피칸터Picander에게 대본을 의뢰했다.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작곡된 마태수난곡은 관현악단 반주에 합창과 독창, 그리고 레치타티보(recitativo,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창법)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복음사가’가 등장하며, 총 2부, 78곡으로 구성된 대작으로 연주시간이 3시간에 달한다. 제 1부 35곡, 제 2부 43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복음사가는 테너, 예수는 베이스, 그 외 베드로, 유다 등의 제자들은 일반적으로 남성 독창자와 합창이 담당하며, 소프라노와 알토는 아리아로 사건의 슬픔을 노래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야기를 웅장하면서도 비극적으로, 그렇지만 지극히 숭고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표현해냈다.




(제 1부) 1곡 ~ 35곡

첫 곡은 엄숙한 분위기의 관현악 서주에 이어 합창으로 “오라, 딸들아 나를 슬픔에서 구해다오”를 부르고, 이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예수의 수난을 노래한다.

2곡부터는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를 중심으로 마태복음 26장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중간에 독창자의 아리아와 합창이 각기 예수, 제자들 등의 인물과 군중의 심정을 표현한다. 

34곡은 복음사가와 예수가 마태복음 26장 51~56절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까지의 내용을 극적으로 노래하며, 1부 마지막 곡인 35곡은 코랄(choral, 합창)로 “오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슬퍼하라. 그 죄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의 품을 떠나 이 땅에 오셨음이라. 순전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으니 이는 우리를 위함이라. 그는 기꺼이 중보자가 되어주시는도다. 주께서 죽은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니 그의 때가 이를 때 까지라. 주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니 우리의 무거운 죄를 대신 짊어지시는도다. 그렇게 십자가에 매달리시도다.”의 내용을 엄숙하고 아름답게 노래하며 끝을 맺는다.


(제 2부) 36곡 ~ 78곡

2부 첫 곡은 알토 아리아로 “아, 나의 예수님은 끌려 가셨도다”를 부르고 합창은 “당신의 친구는 어디로 갔는가?”로 화답하는 비통한 분위기로 시작하며, 이어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와 코랄, 독창자들의 아리아 등으로 마태복음 26장 57절~27장의 내용을 노래한다.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 “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로 베드로의 심정을 표현한 46곡에 이어 연주되는 47곡은 바이올린 독주를 수반한 알토의 영창으로, “나의 하느님,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통하게 우는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주여 보시옵소서.”를 노래하는 아리아와 바이올린 독주는 애절하고 비통하나 지극히 아름답다.

복음사가와 빌라도, 제사장이 레치타티보로 마태복음 26장의 59절부터 마지막 66절까지 노래한 후(76곡) 이어지는 77곡은 독창자들의 레치타티보 및 영창 “지금 주는 안식에 드셨도다”와 이에 응답하는 합창 “주 예수여, 잠드소서”로 구성되어 종결을 예고한다.

78번째 마지막 곡은 부드러운 관현악 반주와 함께 지극히 평온하고 숭고한 감정으로 노래하는 합창이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무덤 속의 주께 부르짖는다. 쉬소서 편히 쉬소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여...”


제 47곡 H. V. Karajan 지휘


제 78곡 H. V. Karajan 지휘

 


3시간 가량의 대작을 한번에 끝까지 듣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아름답게, 때론 극적인 요소를 곁들여 들려주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가사가 독일어이기에 번역본을 보면서 들어야 좋다.



♪ 음악 들어보기


바흐, 마태수난곡 J. S. Bach Matthew Passion


- Netherland Bach Society / 독일어 및 한글 자막 (총 78곡이나 그 중 옛 전집 68곡 연주)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