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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가정을 짓고 살아간다. 그 안에서 긴 세월을 함께하는 가족은 지친 몸을 뉘일 집이 되고, 어지러운 마음을 북돋운다. 또, 쉽지 않은 인생의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번 인터뷰는 높은뜻정의교회 서보경 목사 가족과 함께했다. 가족이 에덴낙원에서 보내는 하루를 동행하며 서로 경험한 안식과 추모의 문화에 대해 나누는 것으로 기획됐다.
11:40 am <세상의모든아침>에서 식사
일정은 에덴낙원에서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장소인 레스토랑 <세상의모든아침>에서 시작됐다. 먼저 밝은 창가 좌석에 나눠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숙모, 사촌, 사돈까지 관계를 떠나 누구보다 가깝게 지낸다는 이 가정은 같은 집에 살아도 얼굴 보기 어렵다는 삭막한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소소한 일상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가 오갔다. 음식이 하나둘 나오자, 기도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누구보다 가까운 이들 가족 간에는 통하는 것이 많았다. 이날 무채색으로 통일한 옷차림도 알고 보니 우연히 맞춰 입은 것이었고, 두터운 신앙, 에덴낙원과의 인연도 공통점이다. 이들은 서보경 목사와 아내 방신애 목사를 중심으로 모두 가까운 가족을 이곳에 모시거나, 직접 안식처를 마련한 에덴 멤버이다. 함께 경험한 가족의 소천에 관해서만 이야기해도 두어 시간이 금방 간다. 이날은 서 목사의 부친인 서문교, 처제 방신제, 외사촌 강용구 씨가 인터뷰 석에 앉았고, 그의 어린 두 딸과 아내, 장모, 외숙모가 동행했다.
가장 멀리에서 참석한 사람은 서문교 씨다. 그는 경주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안강에 살고 있다. 아내와 노후를 위해 마련한 전원주택은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양동마을과 지척으로, 10년 전 함께 보금자리를 마련한 아내가 몇 해 전 천국으로 가면서 에덴낙원 멤버가 됐다.
서문교: 집은 살기 편하게 잘 지어 뒀는데, 그만큼 손도 많이 갑니다. 무엇보다 같이 살던 집에 혼자 남게 되니 그다지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안 되겠다 싶어 나름대로 시작한 취미가 색소폰과 드럼이에요. 그렇게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허전함을 채워 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이따금 아들 부부와 사돈 가족(방신제 씨 가족)이 경주 집에서 며칠씩 쉬다 가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
방신제: 저희 아빠가 천국 가시고 몇 달 안 지나 안사돈 어른이 가셨어요. 저희 엄마랑 마찬가지로 혼자 되셨으니 사돈어른도 괜찮으실지 걱정이 되고, 챙겨드리게 되더라고요. 또, 저희 중 가장 먼저 에덴낙원 멤버가 되신 분이 사돈 외숙모님(강용구 씨 모친)이신데, 여기서 자주 뵙고 금세 가까워졌죠.
서보경: 맞아요, 공간이 좋다 보니 전보다 만나는 횟수도 늘었고, 본격적인 가족 교류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12:30 pm <티하우스에덴>에서 티타임
식사 후 찾은 <티하우스에덴>은 채광 좋은 글라스하우스에 푸른 식물, 기분 좋은 홍차 향이 반겨주는 곳이다. 에덴의 많은 곳이 그러하지만, 티하우스는 어떠한 상심도 잊게 할 만큼 평온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홍차와 밀크티, 스콘… 저마다 좋아하는 다과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에덴낙원을 통해 다가온 위로와 변화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방신제: 서로 아픔을 다 알기 때문에 더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보통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안식처를 미리 준비할 생각을 못 하는데, 외삼촌께서 계신 덕분에 여기 모이게 됐고 아버지도 참 좋아하셨던 기억이 나요.
서보경 목사의 외삼촌이 바로 강용구 씨의 부친이다. 강용구 씨는 급히 부친의 장지를 구해야 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간병과 병행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용구: 아버지 병세가 급격히 안 좋아지셨었는데, 저희는 선산도 없고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게다가, 간병하며 이곳저곳 다니려니 나중엔 졸면서 운전하기도 했죠. 그러다 우연히 에덴낙원 광고를 본 거예요. 이미 너무 지쳐있었지만, 한 번만 가보자 했다가 바로 결정했습니다. 시설이 너무 좋았고, 오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또, 저희 봉안하는 날, 비가 엄청나게 내렸거든요. 그때 여기로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과 참석하신 교회 분들도 좋다고 해주셨고, 그 후 에덴 멤버가 되신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서보경: 외삼촌 가신 후에 몇 해가 지나고, 저희도 어머니를 보내 드렸어요. 목회자이다 보니 장례에 다닐 일이 많은데 에덴낙원은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다른 곳과는 달랐습니다. 또, 자녀들도 나중에 여기서 부모를 만나러 모일 수 있고, 그렇게 계속 이어서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좋았죠.
신앙 속에서 안식을 준비하는 가족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선산, 매장, 제사 등 유교적 풍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누구라도 장지를 마련하면서 한 번씩 거치게 될 고민이다. 그런 면에서 에덴낙원은 이 가족에게 생각지 않은 곳까지 여러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냇물이 길을 따라 흐르듯 신앙을 통해 가족은 함께 변화하며 나아가고 있다.
서문교: 옛날엔 더욱이 그랬어요. 김천이 고향이라 선산이 있거든요. 사실 그것도 생각처럼 쉽지는 않아요. 드문드문 떨어져 있고, 해마다 벌초도 해야 하고요. 공원 묘원도 가봤는데, 거긴 분위기가 그리 밝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다 에덴낙원을 알고 나니 더 비교할 수밖에요. 여긴 꼭 나들이 나온 것 같고, 저희 아내도 참 좋아했고요. 어느 순간 생각이 확 바뀌었죠. 이제 제가 고향 분들을 이리로 끌어와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방신제: 저희는 원래부터 제사나 차례는 지내지 않고 추도식처럼 예배를 드려요. 이제는 에덴낙원이라는 좋은 장소가 생긴 거고요. 어른들께서 천국으로 가셨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기는 하지만, 남겨진 사람에겐 그리움이나 슬픔이 있잖아요. 그런 마음을 더 자주, 함께 나누면서 위로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죠. 다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모일 수는 없으니 기다리고 있어요.
1:30 pm <에덴가든> 산책
이번엔 가든으로 나섰다. 꽃과 나무를 벗 삼아 아이들은 한껏 신이 났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주를 이루는 에덴낙원에는 아이들이 많다. 늘 뛰어놀 공간이 그리운 나이, 에덴낙원은 서보경 목사의 어린 자녀들에게 낯설지 않은 곳이다. 에덴미디어 창간 이래 최연소 손님인 이들은 누구보다 천국 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는 일에도 익숙하다. 추모에 함께하고, 원하는 말들을 방명록에 남긴다.
그렇게 봉안당으로 가는 길, 가든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며 각자 가장 좋아하는 에덴낙원의 공간이 어디인지 물었다.
방신제: 티 하우스와 가든이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여기선 모든 복잡함이 사라지고 천국 소망을 더 생각하게 돼요. 천국은 여기보다 더 좋겠지… 이런 생각을 하죠. 누구라도, 아마 크리스천이 아닌 분들도 이 공간에 담긴 뜻을 알게 되면 공감하지 않을까요.
서보경: 봉안당과 부활교회 쪽으로 가는 길, 그리고 조그맣게 물이 나오는 공간(부활소망가든)이 있어요. 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정원인데, 항상 사진을 찍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 사진도 참 잘 나오고, 거기 서 있으면 정말 에덴낙원에 있는 듯합니다.
서문교: 저는 지방에 있다 보니 여기에 머물 숙소가 있다는 게 여러모로 좋습니다. 좋은 점들이 많지만 딱 한 가지 꼽는다면 그거예요. 가족들과 함께 몇 번 묵었는데, 그렇게 편안하게 쉴 공간이 있다는 게 참 편리했어요.
강용구: 저의 경우엔 봉안당 자체가 참 좋아요. 저희 안식처는 봉안당 안에서도 아늑한 편인데, 특히 그 공간이 참 소중합니다. 살다 보면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길 때, 그 방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제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요. 곁에 계셨다면 나누었을 이야기들을 하죠.
2:00 pm <부활소망안식처> 추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활소망안식처에 도착했다. 에덴낙원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죽음과 상실의 아픔이 신앙의 힘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다. 고인에게는 평안한 안식을 위한 자리, 가족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남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특히 안식처는 이 모든 바람이 가장 잘 담긴 공간이다.
강용구 씨의 말처럼 이 가족의 안식처는 봉안당 한 편에 모여 있다. 자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둥글게 모여 기도를 했다. 이후에는 각자 여유로운 추모가 이어졌다. 고요하고 밝은 빛 속에 돌아가신 분들을 추억하고, 자신의 자리를 손으로 쓸어 보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억을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눈다. 잠잠하나, 어둡지 않게. 하나님 안에서 이 가족에게 새로운 추모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보통 가까운 사람의 소천은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 안에서 남은 시간을 값지게 살고 마무리하기 위한 방법. 에덴낙원의 추모 문화를 경험한 이들은 웰다잉에 관하여 다양한 생각을 들려주었다.
서문교: 살아오면서 깨달은 건 아무리 유명하고 대단한 삶에도 결국 죽음이 있더라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늙고, 죽는 게 먼 것만 같아요. 그렇게 머릿속에서 붙드는 것 때문인지, 아직 그 후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조금 더 지나야 그런 생각이 오지 않을까요.
서보경: 저의 경우엔 웰다잉이 하나의 세계관이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뚜렷한 줄 알았는데, 에덴낙원에 와서 천국에 계신 분들과 소통하고 호흡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아,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었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 후로 죽음이 더 가깝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세계관이 달라진 것 같아요. 성악가인 방신제 씨는 아버지를 보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의 소중함을 재차 느꼈다.
방신제: 제가 아버지, 안사돈 어른 환송 예배 때 특송을 했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었으니까… 아빠가 천국 가시면서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해주신 것 같아요. 저희 아빠 정말 열심히 사셨거든요. 저도 하나님이 주신 목소리를 달란트로 아빠가 그러셨던 듯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죠.
강용구: 저희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굉장히 강하셨고, 가족들도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시게 된 거예요. 큰 방패막이었던 분이 한순간 없어지니까 찬 바람이 거칠게 불어왔죠. 그 후로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혈기왕성하게 무언가 하려고만 했다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삶에 있어 조금 겸손해졌죠. 사실 웰다잉이란 말은 지금 처음 들었는데, 듣다 보니 일본의 ‘종활’이 생각납니다. 마칠 ‘종’, 활동할 때 ‘활’을 써서 나이 드신 분들이 죽음에 대해 준비해 나가는 개념이에요. 저에겐 아버지의 죽음이 큰 마디였던 것 같아요. 그 후에 저와 가족을 위한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보이지 않는 종활이 시작된 셈이죠.
3:00 pm 마무리
크고 작은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더 단단해진 사이. 다른 듯 닮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끈끈함이 묻어났다. 이것이야말로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가 이루어지는 모습이 아닐까.
봉안당 추모를 끝으로, 마무리 질문을 했다. 이들에게 가족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어떤 존재일까. ‘삶의 활력소’, ‘고향’, 그리고 ‘나 자신’…. 여러 대답이 나왔는데, 그중 서보경 목사의 답에 모든 뜻이 포함돼 있었다.
“가족은 그늘 같아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고, 또, 가족은 삶의 어두운 부분도 공유하는 사이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기도 하고요. 또, 그늘은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시간의 흐름 따라 생기고 또 없어지고, 순리대로. 그렇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존재예요.”
황은비 에덴미디어 편집장 대행
에디터, 기자, 에세이스트. 언론을 전공하고 매거진, 일간지 등 매체에서 일했다. 현재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며 기억될 콘텐츠를 고민하고 만든다. 2021년 에덴미디어 편집장 대행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