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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누군가 부여하는 자리와 업무에 얽매지 않고 능동적으로 길을 찾아 나가는 이에겐 늘 부족한 것은 시간일 뿐이다. 액티브 시니어로 매일 최고의 순간을 살아 가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시니어로서 나의 새로운 꿈은 그 전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먼 건축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벌써 오래전, 정년퇴직을 한 달 앞둔 2012년 1월의 일이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직업학교 시니어 학습생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퇴직 후 무얼 할지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어찌 되긴 하겠지.’ 하는 생각만 흐를 뿐 막연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시니어 학습생을 모집한다니 마구 심장이 뛰었다. 집에서 가까운 기술교육원을 찾아보았다. 요리, 재봉, 전기에서부터 컴퓨터 관리, 용접, 건축, 조경, 실내인테리어 등 다양한 과목이 있었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건축과는 1년 과정과 반년 과정이 있었고, 시니어 대상은 야간으로 6개월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1년 과정 건축과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데다, 시니어였기에 입학 허가가 날지 몰랐지만, 일단 도전한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면접을 보고 마침내 합격통지를 받았다. 가장 큰 기쁨은 무언가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강동구 암사동의 기술교육원은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직업학교다. 1년 과정 건축과 정원은 40명. 퇴직한 시니어와 20~40대가 거의 반반씩이고 그 중 여자는 4명이었는데, 3명은 40대, 60대가 1명이었다. 교육과정도 건축학개론, 제도, 색채학, 실습, 견학 등으로 다양하였다.
나는 2월 말까지 근무 후, 곧바로 3월 2일에 입학했다. 정년 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는 시작되었다. 재직 중에도 웬만해선 하루도 쉬지 않은 신체 리듬 덕분에 큰 지장은 없었다. 하루 7시간씩 주 35시간을 공부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선택하고 일을 배우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음을 느꼈다. 이상하게 콧노래가 저절로 났다. 넓은 실습실에는 학생들이 만들었다는 각종 소형 건축물과 대형 기계며 공구들과 작업대가 있었다. 나무 향이 향긋한 교실, 학습생들의 얼굴에는 항상 밝은 웃음이 가득 피어 있었다. 꼬박 7교시 수업을 정신없이 마치면 일주일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어느덧, 6월이 되자 우리는 목공기사 자격 필기시험을 준비하였다. 건축시공 실기는 필기시험 합격자만 응시할 수 있었다. 김밥을 단체로 맞추어서 저녁을 먹고 대학 입시 공부하듯 목공담당 교수님의 해설을 들으며 문제집을 계속 풀고 또 풀었다. 전 과목 과락 없이 60점이 합격점이지만, 공부해야 할 영역도 분량도 많았다. 다행히 이론시험은 서너 명을 빼고 모두 합격했지만, 정작 어려운 실기가 남아있었다. 실기 시험 과제는 어려웠다. 작은 선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치열하고 정교한 삶의 현장. 밤 10시를 넘기는 하교가 다반사였고, 힘은 들지만 밤늦도록 실습실에서 오공본드로 얼룩진 앞치마를 벗을 때면 스스로 대견해서 웃음이 새어 나오곤 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다행히 실습도 합격하고 내친김에 조경 기능사 자격까지 따냈다. 가을학기에도 CAD(컴퓨터건축설계)와 포토샵과 3D 교육으로 밤 9시까지 컴퓨터실 교육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1년을 후회 없이 보냈다. 입시 때처럼 빈틈없이, 치열하게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알차게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었고, 하고 싶은 일과 새로운 배움에 목말라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순수하고 완전하게 즐겁고 만족을 느꼈다. 졸업 후 동기 중 몇은 새로 취득한 건축기사 자격증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대목수 일을 시작했다.또, 공방을 내거나 자신이 거주할 집을 손수 지은 이들도 있었다. 당시에 직업학교 외에도 여러 도전을 병행하고 있었던 내게도 졸업 후 남은 것이 많았다. 주말을 이용해 미국에서 새로 도입된 심리상담 전문 분야인 ‘버크만 심리진단검사’와 ‘도형심리상담’ 전문 디브리퍼와 상담사 자격증을 땄고, 야간 교육대학원 강의를 하며 미루었던 박사 논문 준비도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3개월간 80시간 야간 창업교육도 이수했다.
한번 도전의 즐거움을 맛보았고, 발동이 걸리고 나니 새로운 것을 향한 탐색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창업교육이 바탕이 되어 서울SBA 지원을 받으며 베이비부머시대 시니어 200명이 동시에 창업에 뛰어들었다. 엄정하게 선발된 우리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인 <희망아카데미>과정을 마친 후에 청년창업멘토로서 활동도 시작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창업한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액티브시니어’ 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으며, K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뭉쳐 시니어로서 활기찬 액티브시니어 시대를 열기 위해 함께 노력하게 되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재주를 가진 액티브시니어들의 활동 범위는 무한해 보였다. 순종 주부와 퇴직한 극단 감독, 신문기자와 대학교수와 사진작가, 극작가까지… 시너지 효과는 막대했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은 다채롭고 풍부했다. 시니어 대상 월간신문을 발행했고, 자체 제작한 연극 대본으로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또, 팀원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공동작 <도전을 즐기는 액티브시니어>를 3권째 발행하고 있다. 당시 평생교육원에 교육과정을 개설했던 교수님이 처음 사용했던 ‘액티브시니어’란 용어가, 이제는 ‘인생 제3기를 살아가며 도전을 즐기는 중년들’이란 개념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액티브시니어의 도전은 현재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 활동은 각양각색의 형태로 자연발생적으로 진화하며 산업현장에서 삶의 터전에서 퇴출당하여 갈 곳을 잃은 시니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지금도 액티브한 시니어들은 좋은 강의와 아이디어를 찾아 헤맨다. AI, IoT, 코딩교육, 3D프린터교육, 코엑스의 창업전시회, 서울 50+, 정부지원사업 등 각종 설명회에 가보면 아는 얼굴을 또 만나고 또 만난다. 그런 곳은 앉을 자리가 없이 가득 찬다. 요즘은 팬데믹 시대라 모두가 ZOOM으로 IN하고 있다. 모두에게 응원을 전하고 싶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정년까지 채웠는데 좀 쉬지, 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느냐’고. 나는 오히려 반문한다. ‘당신은 앞으로 남은 30년을 어떻게 살 거냐’고. 즐기며 하는 일은 절대 힘들지 않다. 누구의 강요도 간섭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마지막으로 액티브시니어의 슬로건을 외쳐본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자체가 이미 기적이다. 무조건 살아라.” 나는 요즘도 하루하루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살고 있다.
손경순 이지인재개발진흥원 원장
㈜이지, 출판사 이솝 대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중등 국어교사와 진로상담부장, 학교교육관리자로 정년 퇴임했다. 이후 목공건축, 조경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액티브시니어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모바일앱 색채도형심리진단검사를 개발하여 색채도형심리상담사가 신직업으로 선정되는 데 이바지하였다. 저서로 <삶과 사랑, 그리고 행복>, <색채도형심리>, <인간 이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