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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8

[에덴클래식] #4 노년의 천재가 탄생시킨 걸작



흔히 무엇이든 다 때가 있다고들 말한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는 기적도 있지만, 대부분 쉬이 짐작할 수 없는 때를 위하여 부단히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죽음에 이르기 불과 몇 개월 전 역사적인 걸작을 탄생시킨 작곡가, 세상의 인정과 이해를 그토록 바랐던 천재는 노년에 그때를 만났다.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Franck,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major

벨기에에 관심이 높아진 것은 둘째 딸을 그 나라로 시집 보낸 후부터다. 대한민국 경상도 정도의 면적에 천만 명 조금 넘는 인구의 비교적 작은 나라지만 강소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불이 넘어 영국, 프랑스, 일본을 앞지른다. 비단 경제력뿐이 아니다. 2021년 FIFA 랭킹 세계 1위의 나라인 데다, 초콜릿과 맥주 등 먹거리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그렇지만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벨기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두 강대국에 번갈아 침략당해 속국 신세였다가 1839년 ‘런던조약’에 따라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따라서 유럽 문화의 황금기인 18~19세기에는 음악, 미술 분야에서 내세울 만한 예술가가 없었던 듯하다. 평소 앙리 비외땅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즐겨들었고, 세자르 프랑크의 교향곡과 실내악곡들도 좋아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비교적 덜 알려진 프랑스 작곡가들로만 알고 있었다.


세자르 프랑크(César Franck, 1822-1890)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동부의 리에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11세에 리에주 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로 건너가 15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아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부친과의 불화,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파리에 정착한 이후 10여 년 동안은 음악가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했던 성당의 오르가니스트organist가 되기로 결심했고, 몇몇 성당을 옮겨 다니다 36세인 1858년에 파리의 성 클로틸데 성당Basilique Ste-Clotilde의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한 이후 세상을 등질 때까지 30년가량을 봉직했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일반적으로 피아노를 동반한다. 그렇다고 피아노가 반주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크시대나 초기 고전파시대에는 오히려 피아노가 주악기고 바이올린이 반주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차르트 이후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역할이 대등해지면서 두 악기가 서로 대립, 화합하면서 멋진 조화를 만들어 내는 명곡들이 많이 탄생했다. 바이올린 소나타들 중 가장 인기 있고 자주 연주되는 곡은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가 남긴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이 대 작곡가들 작품 외에 한 곡을 추가한다면 서슴없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택하고 싶다.




1992년 발행된 프랑스 공립 우표.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활동한 세자르 프랑크를 담았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 무렵 유럽 음악의 중심지는 독일, 오스트리아 지역이었다. 브람스의 신고전주의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안톤 브루크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구스타프 말러 등 후기 낭만주의의 물결이 유럽 음악계를 주도했던 시기이다.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음악계에서는 오페라 등 극음악들이 주류를 형성했고, 교향곡이나 실내악 등 순수음악에 대한 관심도는 지극히 낮았다. 그런 가운데 파리의 한 성당 오르가니스트였던 세자르 프랑크는 바흐의 오르간곡을 연구하면서 틈틈이 오라토리오, 실내악곡, 오르간 독주곡 등을 작곡했으나 어느 한 곡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50세에 오르간 명연주자로 인정받아 파리음악원 교수로 임명된 이후에도 작곡가로의 명성은 얻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독창적인 천재성은 음악가로서는 매우 늦은 시기인 60세 이후에 나타났다. 낭만파 시대에 살았지만,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개척해 나간 결과물이 생의 끝 무렵에서나 탄생한 것이다. D 단조 교향곡, 교향적 변주곡,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사중주 등 그의 대표적인 명곡들은 모두 60세 이후 작곡한 작품들이다. 소박하지만 품격 있는 표현력, 그리고 깊은 신앙심에 바탕을 두어 내면적 성찰이 가득 담긴 프랑크 말년의 곡들은 가벼운 살롱풍의 음악에 점차 지겨움을 느낀 프랑스 청중들에게도 큰 감동을 준 듯하다. 67세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초연이 끝난 후 청중들의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받은 노년의 작곡가는 “이제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7개월 후 사고로 인한 늑막염으로 프랑크는 세상을 떠났다.




프랑크가 64세에 완성한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의 전 작품 중에서뿐 아니라 고금의 모든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명곡이다. 그의 고향인 벨기에 리에주 출신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Eugene Ysaye, 1858~1931)의 결혼을 기념해 증정한 곡으로 고국 벨기에에서 초연됐다.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작곡기법에 있어서 예술적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독일적인 엄격함과 프랑스적인 감수성이 함께 어우러져 냉철함과 정열, 그리고 환상과 사랑의 충만함이 가득 배인 아름다운 작품이다. 4개의 악장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전 악장이 기승전결의 구조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한 악장만을 따로 감상하는 것은 작곡가의 의도에서 벗어난다. 다행히(?) 전곡을 감상하더라도 30분이 채 안 걸리기에 1악장을 듣기 시작하면 좀처럼 중단하기 어렵다.


조용한 피아노 선율의 짧은 서주에 이어 바이올린의 신비로운 음색으로 시작하는 1악장은 차분하지만 마치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려낸다. 뭔가 예감하듯이 고요하게 1악장을 마친 후 이내 정열적인 분위기의 2악장이 전개된다. 사랑의 감정이 고조되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격렬하게 어우러진다. 때론 흥분이 가라앉기도 하지만 감정은 점점 고조되고 정열적으로 찬란하게 끝을 맺는다. 흥분이 가라앉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자유롭게 전개되는 3악장은 전반적으로 바이올린 독주가 마치 독백을 하듯 강렬하지만 아름다운 선율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1악장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끝을 맺으면서 클라이맥스인 4악장을 이끌어낸다. 클라이맥스지만 격정적이진 않다. 대신 밝고 상쾌함이 가득하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아름다운 화합은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화려하게 끝을 맺는다.




♪ 음악 들어보기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Franck,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major


2016년 베르비에 페스티벌 실황


1970년대 젊은 시절의 정경화가 라두 루프Radu Lupu와 함께 한 녹음은 손꼽히는 명연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16년 스위스의 베르비에 페스티벌Verbier Festival에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 정경화의 모습은 한층 더 세련되고 정열적이다.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격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