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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희망이 필요한 시기, 진정한 위로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80년대생들의 유서> 저자 홍경아가 세대를 넘어 위로가 필요한 모두에게 메시지를 전해왔다. 자발적 유서 쓰기를 통해 삶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 그리고, 삶의 한 가운데에서 죽음을 마주보아야 할 이유.
작년에 시작된 코로나 19를 기점으로 죽음은 일상으로 변해버렸다. 뉴스에서는 연일 사망자 수를 이야기하고, 미처 화장하지 못해 관이 쌓여 있는 해외 풍경이 보도되기도 했다. 길어지는 코로나 시국에 관계는 단절되고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한 죽음이 많아졌다.
내가 죽음을 가까이 마주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해 전 일이다. 번 아웃 증후군과 우울증을 겪으며 삶의 의욕을 몽땅 잃어버렸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칠흑 같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살 바에는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며 1층 주차장을 내려보면서, 한강 다리 위를 지나면서, 퇴근길 달리는 차의 바퀴를 보면서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도서관에서 실제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를 연구한 책을 보게 되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유서부터 이번 달 납부해야할 공과금의 1원 단위까지 정리해놓은 사뭇 영수증과 같은 형식까지 내용은 다양했지만, 그 본질은 삶에 대한 미련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떠나면서 무엇에 미련이 남게 될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마치 곧 죽을 사람처럼 유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생을 마친다고 가정해보면 현재의 고통도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내 인생에 어떤 것이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이어리에 짧은 유서를 써보던 중 문득 내 또래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독립출판물 ‘80년대생들의 유서'를 제작하게 되었다.
SNS와 지인의 소개로 섭외한 80년대생 14명으로부터 자필로 쓴 유서를 받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인생에서 고통스러웠던 시간까지 그 사람의 삶에 관해 물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한 꺼풀 걷어내고 들어가자 난치병 판정, 성폭행 피해, 반복된 취업 실패, 부모님과 깊은 갈등 등 각각의 인생마다 예상치 못한 고통이 끼어들어 있었다. 한 사람당 평균 90분의 인터뷰를 하고, 녹취한 파일을 여러 번을 듣고 텍스트로 옮기는 작업을 하며 공통된 접점이 있음을 느꼈다.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는 ‘나라는 존재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좀 더 세세하게 살피자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문화 속에 개성 또는 정체성이 거부당했거나,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형화된 모습을 강요받았거나, 경쟁 속에서 힘들어하는 것조차 나약함으로 여기는 환경 등이 삶을 더 힘들게 만든 것이었다. 이는 80년대생뿐 아니라 세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겪게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책이 나온 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리뷰를 많이 받았다. 그중에는 마치 일기를 보는 기분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가짜상담소 같은 역할로나마 고통을 들여다봐 줄 존재, 유서 쓰기와 같이 잠시 멈춰 삶을 돌아볼 순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를 깨닫기까지 여러 사람의 유서를 통해 고통과 삶을 나누는 과정은 내게도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계기가 되었다.
“보통 우울하다고 하면 항상 극복해야 하고 떨쳐내야 하는 거로 생각하잖아요.
근데 좀 멈춰봐, 뒤도 좀 돌아봐, 다르게 살아보라고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다고 느껴요.
여태까지와는 또 다르게 살아보라고 말하는 거 같아요.” -인터뷰 내용 중에서
최근 1년 동안 학교에 거의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친구들과 만남이 차단되고 오로지 화상으로만 세상과 연결되는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고 해 마음이 아팠다. 추측하건대 아이들은 이 고통을 끝낼 방법은 죽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면회가 금지된 요양원과 병원에 있는 어르신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책을 만드는 동안 ‘죽음을 생각해봐야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해왔는데, 이제는 코로나로 죽음이 정말로 도처에 있는 것 같이 느껴져 퍽 쓸쓸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에는 또 어떤 고난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2021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오늘을 또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혹시 지금 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고통에 매몰되어 희망을 지나쳐 죽음에 한 발짝 다가가진 마시라, 말하고 싶다. 곁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의 고통을 판단하고 평가하려 하지 말고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시라, 말하고 싶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는 최소한 서로에게 돌을 던지지는 말자고 덧붙이고 싶다.
홍경아 작가
밥벌이는 UI 디자인, 글로소득이 근로소득을 앞지르는 날을 고대하며 글을 쓴다. 유서 쓰기로 죽음을 마주하고 삶의 희망을 되찾은 경험을 통해 2020년 독립출판물 <80년대생들의 유서>를 제작했으며, 인문학 관련 매체의 시민기자로도 활동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