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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7

[에덴 클래식] #1 겨울이 그려내는 선율



올겨울은 유독 추운 날씨와 코로나 19로 인한 집합금지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책과 음악에 친숙해졌다. 따뜻한 아랫목과 안락한 의자, 좋은 책 한 권, 그리고 이달 들려드릴 클래식 음악이 있다면, 겨울의 끝자락을 음미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사실 ‘겨울’이 연상되는 클래식 음악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비발디와 하이든이 ‘사계’라는 제명으로 각각 협주곡과 오라토리오를 남겨 계절의 변화를 실감 나게 표현해냈지만, 오롯이 겨울 만의 이미지를 그려낸 작품은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이 활동했던 낭만파 시대에 들어서나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비발디, 바흐, 헨델을 중심으로 한 바로크 시대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동했던 고전파 시대에는 특정 소재를 표현하는 표제음악보다 순수한 음(音)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절대음악이 주류였다. 또 낭만파 이전까지 문학, 미술 등 다른 분야 예술과의 교감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에덴낙원의 겨울


겨울 이미지가 가득 담긴 음악으로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도 겨울철엔 꼭 들어보고 싶은 곡이다. 또 하나 있다. 20세기에 태어난 러시아 작곡가 스비리도프Georgi Vasilyevich Sviridov의 ‘눈보라The snowstorm - Musical illustrations to Pushkin's Story’. 많이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지만 전체 9곡으로 구성된 ‘눈보라’ 중 4번째 곡 ‘로망스’만큼은 겨울 내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
185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를 졸업한 후 공무원 생활을 하던 차이코프스키Peter Ilitch Tchaikovsky는 틈틈이 음악 공부를 병행하다 1863년에 관리직을 포기하고 스승 안톤 루빈스타인Anton G. Rubinstein이 설립한 음악원에 입학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졸업 1년 후인 1866년(26세) 모스크바음악원 강사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같은 해 그는 첫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해 두 개의 악장을 발표했고, 2년 후인 1868년(28세)에 4개 악장으로 구성된 완전한 형태로 만들어 모스크바에서 초연했다.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는 6곡의 교향곡만을 남겼다. 사실 완숙기에 접어든 37세에 발표한 4번, 48세에 완성한 5번, 그리고 죽기 바로 전에 발표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돼버린 6번 ‘비창’에 비하면 초기 작품에 속하는 1, 2, 3번은 자주 연주되는 편이 아니다. 그렇지만 1번 교향곡에 대한 애착만큼은 매우 강했다. 아마 첫 대작인데다 스승의 냉담한 반응에 의기소침해져 수차례 개정을 거쳐 초연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차이코프스키는 초연 이후에도 한 차례 더 수정을 거쳐 작곡을 시작한 지 6년만인 1874년 최종 개정판을 출판했다.

1악장의 부제 명은 곡 제목과 같은 ‘겨울날의 환상’이다. 러시아 민요풍의 선율로 시작해 전반적으로 밝고 활기찬 느낌의 악장이다. 부제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어 작곡가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혹독한 추위로 활동이 제한된 겨울날, 환상 속에서나 그려보는 즐거운 여행길을 묘사하는 것 같다.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마치 환상에서 깨어나는 듯 고요한 선율로 여운을 남긴다.

2악장의 부제는 ‘황량한 땅, 안개의 땅’이다. 아다지오 칸타빌레, 즉 느리게 노래하듯이 연주하는 악장이다. 부제가 주는 삭막한 느낌은 전혀 없다. 현악기 합주로 시작하는 잔잔한 선율은 마치 안개 낀 광활한 대지를 묘사하듯 모호한 느낌이 나지만, 곧이어 나타나는 오보에 선율은 애절하면서도 서정적인 러시아 민요를 노래하고, 이후 변형된 주제들이 다양한 악기로 전개된다. 후반부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흥분된 호른이 큰소리로 주제 선율을 외치지만 다시금 온화한 분위기로 변하면서 조용히 끝을 맺는다.

3악장은 부제가 없다. 다소 익살스러운 스케르초 풍의 경쾌한 선율이 지배적인 악장이지만 중간에 노래하듯이 나타나는 현악기들의 선율엔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4악장 역시 부제를 따로 붙이지 않았다. 다양한 주제들이 때론 느리고 온화하게, 때론 격렬하고 활기차게 나타나, 서정적이기도 하고 정열이 넘치기도 한다.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자유로운 악상 전개 방식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힘차게 부르짖는 듯한 종결 부분은 언제 들어도 흥겹다.


♪음악 들어보기


차이코브스키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 (전곡)


차이코브스키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 (2악장)



스비리도프의 ‘눈보라’

러시아의 한 마을, 부유한 집안의 아름다운 한 처녀가 옆집에 잠시 머물고 있던 하급 장교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그 청년과의 결혼을 허락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처녀는 어느 날 밤 부모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몰래 가출해 이웃 마을 교회로 향한다. 하급 장교와 비밀리에 결혼식을 준비한 것이다.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던 그 날, 처녀는 무사히 교회에 도착해 청년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하급 장교는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새벽녘에야 교회에 도착했지만 이미 교회 문은 닫혀있었다. 하급 장교가 길을 헤매고 있는 사이 장교 복장의 다른 청년이 교회에 나타난다. 눈보라를 피하려고 들어간 교회엔 결혼식이 준비돼 있었고, 그 장교는 영문도 모른 채 신랑 자리에 앉혀졌다. 장난기가 발동한 청년은 신랑인 양 행세했다. 마침내 혼인 서약이 끝나고 입맞춤 순간, 처녀는 놀라 소리치며 기절해 버렸고, 청년은 허겁지겁 교회를 빠져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날 이후 처녀는 심한 열병을 앓아눕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하급 장교는 전쟁터로 떠났다가 전사했다. 세월이 흐른 후 부친을 잃은 처녀가 부유한 상속녀가 되자 주변엔 청혼자들이 몰려들지만, 그녀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차 그 마을에 머무른 한 고위급 장교가 아름다운 처녀에게 반하게 되고 이렇게 사랑 고백을 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청혼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 전 한 여인과 결혼한 몸입니다. 그 여자가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눈보라를 피해 들어간 교회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장난으로 한 결혼이지만 그 죗값을 치러야 할 몸이기 때문입니다.”


스비리도프의 고향 쿠르스크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의 단편 ‘눈보라’의 줄거리다. 러시아에서는 1964년 이 작품을 영화화했는데 영화 내내 스비리도프가 작곡한 음악이 흐른다. 스비리도프는 영화에 삽입된 곡을 중심으로 1975년 총 9곡의 음악을 발표한다. 제명은 영화와 동일한 ‘눈보라’. 1곡(트로이카), 2곡(왈츠), 3곡(봄과 가을), 4곡(로망스), 5곡(전원), 6곡(군대 행진곡), 7곡(결혼식), 8곡(왈츠의 메아리), 9곡 (겨울 길). 소제목만 읽어보아도 소설 속 이미지가 연상된다. 특히 로망스는 2003-2004 시즌 쇼트 프로그램에 참가한 김연아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더욱 잘 알려진 곡으로 겨울 사랑의 테마를 잘 표현했다.

♪ 음악 들어보기

스비리도프의 ‘눈보라’ 전 9곡

스비리도프의 ‘눈보라’ 중 4곡 로망스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배경음악)


에덴낙원은 매달 유재후 님의 추천 곡을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로 소개합니다.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격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