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미디어의 시작과 함께해온 ‘그곳에 가면’ 시리즈가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휴식, 자연, 위로와 믿음의 공간들을 두루 살펴온 정지연 편집장이 지난 8개월간의 여정을 돌아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누구나 떠올리면 마음 따뜻해지는 장소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집일 수도, 편안한 쉼을 주는 동네 카페일 수도, 추억이 깃든 여행지일 수도 있다. 이처럼 마음을 ‘데우고’ 위로를 주는 장소나 공간을 찾아, 건축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그곳에 가면’ 시리즈의 취지였다. 종교, 문화 및 예술, 역사 등 여러 분야에서 가치 있고 아름다운 공간과 장소를 골라 그 배경을 전하고자 했으나 쓰는 이의 부족함과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겹쳐 읽는 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소심하게 바란다면 글을 읽는 잠깐의 시간만이라도 쉼과 위안이 됐기를.
‘그곳에 가면’의 첫 이야기 ‘휴식 같은 하루’에 소개된 ‘나지요네’ ©한경택
연재를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소개했던 장소와 공간들을 되짚어 보다 새삼 발견한 것이 있다. 어느 곳 하나 정성이 모이지 않은 곳이 없고, 각각에 허투루 넘길 수 없을 탄생 스토리가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기억되고 사랑받아 사람의 발길을 모은 이곳들은 하나같이 기획한 이, 만든 이, 때로는 사용하는 이의 혁신적인 생각과 과감한 실험정신이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영감 가득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이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새로운 형태의 쉼과 체험을 선사하는 공간들로 첫 이야기를 채웠다. 제주 독채 민박 ‘나지요네’와 서촌 한옥스테이 ‘누와’, 그리고 ‘후암 프로젝트’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 단 하루라도 제대로 쉬고 싶다는 도시인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쉼과 휴식이 현대를 관통하는 핫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데, 글을 준비하던 내게도 쉼이 필요함을 깨닫게 했다.
한옥스테이 누와. 고즈넉한 감성이 돋보이는 이곳은 그야말로 풍류를 위한 장소다. ⓒtexture on texture
‘우중 산책’과 ‘빛, 바람, 물’에서는 자연과 건축(혹은 장소)을 연결 짓는 시도를 했다. 천혜의 자연이 있는 제주도의 ‘수풍석 박물관’과 ‘절물자연휴양림’, 강원도의 ‘뮤지엄 산’은 느린 걸음으로 빗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하나 되기에 충분한 곳이며, 루이스 칸Louis Kahn, 이타미 준, 안도 타다오 등 건축 거장의 마스터피스는 자연을 환대하며 하나 됨을 강조했다. 신이 주신 선물 두 가지, 자연과 지혜를 통해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완성한 것이다. 이런 건축가들의 도전과 응전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속 풍(風) 박물관. 출처: 네이버영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교회와 신앙 공동체를 소개한 글도 있다. ‘나를 사랑한 십자가’와 ‘한옥 교회’는 자칫 어렵고 딱딱하게 여길 수 있는 교회 건축을 쉽게 풀고자 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십자가가 갖는 의미를 성도들에게 극대화해 전달한 사례들을 소개했는데, 이중 아르헨티나의 개인 예배당 ‘카필라 산 베르나도Capilla San Bernardo’는 뚫린 교회 벽과 조형물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십자가를 만들어냈다. 그 형상은 시시각각 변할지라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십자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 한옥 교회에서는 우리 민족을 사랑한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되길 바랐다. 기존 한옥에 예배당을 설치하며 우리만의 독특한 교회 양식이 등장했는데, 공간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그보다 더 오래 눈길이 머문 것은 초대 교회의 운영 방식과 이에 참여한 선조들의 모습이었다.
카필라 산 베르나도 ⓒNicloas Campodonico
김제 금산교회. 설립자인 선교사 부부의 사진, 초대 장로가 선출되는 과정에 대한 자료, 장로회가 주축이 돼 진행한 1917년 당회록 등이 남아 있어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 사농공상이 분명했던 신분 사회에서 노비가 장로회를 이끌고, 노비의 주인인 양반이 그를 적극 지지했다는 대목에서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전라북도 공식 블로그
신앙 공동체를 이룬 마을 교회들을 소개한 ‘마을, 예수님’에서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며, 전도하기를 힘썼던 초기 교회 성도들처럼 공동체를 이뤄 서로 돌보고, 일상을 나누며, 믿음을 함께 키우는 교회들을 소개했다. 가평 ‘생명의 빛 예수 마을’, 양평 ‘모새골 공동체 교회’, 경산 ‘하양 무학로 교회’의 공동체 실험은 신앙적 도전으로 남았다.
은퇴한 선교사들이 모여 사는 ‘생명의 빛 예수마을’. 뛰어난 예배당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 이를 경험한 크리스천의 다음 단계는 그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낮은 데로 임하는 건축’은 이러한 생각에서 기획한 글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예수의 정신을 닮아 있는 사례들은 단순한 기능성 및 효용성을 넘어 큰 감동을 줬다.
이케아의 자선단체 이케아 파운데이션과 UNHCR이 개발한 ‘더 나은 주거’ 셸터 내부. 조립식 가구로 유명한 이케아의 특징을 선한 영향력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 셸터는 2017년 디자인 박물관의 디자인 도안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진정한 쉼과 위로, 영감을 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직업상 수많은 공간을 만나고 건축 과정을 이야기로 다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더 각인되는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것이다. 공간도 시간에 따라 노화되고 도시도 나이를 들어 늙어 간다. 재생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유기도 하다. 그럼에도 분명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공간이 있다. 아마 누군가와 함께 한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 아닐까. 사진 속 한 장면처럼 각인된 그 공간은 세월이 흘러도, 유행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내 마음의 공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 준 독자들과 애써 잘 담아준 에덴미디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연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