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낙원 :: 친절한 클래식,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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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클래식,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72년 봄, 종로 1가의 어느 음악감상실에서 흘러나온 베토벤 전원교향곡 1악장이 한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소년은 클래식 칼럼니스트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사진: 김정한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클래식 칼럼니스트 유재후라고 합니다. 현재 클래식 음악에 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동시에 ‘레코드 플레이어’라는 온라인 중고 LP 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 전에는 은행에서 근무한 것으로 압니다.

네, 사실 제 커리어가 대단할 게 없습니다(웃음).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입사해 33년간 근무를 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지점장을 거쳐 운 좋게 본부장까지 지냈죠. 하지만 2014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처음 클래식에 빠지게 됐나요?

사실 클래식을 좋아하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습니다. 제게 띠동갑 누나가 한 명 있는데, 누나로부터 처음 클래식을 추천받았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어렵기만 하고 귀에 들어오지 않았죠. 나중에는 오기마저 생기더군요(웃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종일 들으며 학교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몇 달 들으니 클래식이 점차 귀에 익더군요. ‘어, 이게 무슨 곡이지’하며 제목을 받아 적고. 그렇게 조금씩 배워갔어요.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종로1가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를 방문했던 게 결정적이었어요. 베토벤 전원교향곡 1악장이 흘러 나오는 순간 말 그대로 몸에 전율이 일더군요. 그때 클래식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김정한

중고 LP 숍을 운영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퇴직 후에 집에 머물며 한동안 못했던 음반 정리를 했어요. 그때 아내가 저를 보며 음반이 저리 많은데 좀 팔아서 살림에 보태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화를 냈죠. ‘그동안 내가 어떻게 이것을 모았는데!’하고요(웃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주 틀린 말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시장조사를 좀 해봤더니 세상에…. 몇 년 전부터 LP 붐이 일고 있었습니다.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한 동호회도 많아졌고. ‘이거 진짜 되겠다.’ 싶어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인 사위의 도움을 받아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부인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네요(웃음).

맞습니다(웃음).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항상 기도로 보필을 해주었어요. 사실 저는 스스로 아직 믿음이 약하다고 느끼는데, 돌이켜보면 아내의 기도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참 고맙죠.

그래도 열심히 모았던 음반을 떠나보내는 게 아쉽지는 않으세요?

사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다 들을 수도 없어요(웃음). 그래도 판매가 된 LP는 배송 전에 한 번씩 꼭 들어봅니다. 그 선율을 기억하려는 것이죠.

에덴라이브러리에서. 에덴파라다이스호텔 본동 아래에 위치한 이곳 서가에는 에덴낙원 멤버들이 기증한 '인생의 책'이 꽂혀 있다. 사진: 김정한

이번에 ⌜LP로 듣는 클래식-유재후의 음악 이야기⌟라는 책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클래식 칼럼을 쓰게 된 계기부터 말해야 할 것 같아요. 3년쯤 전에 어느 교육 신문으로부터 연재를 제안받았어요. 사실 취미로 음악을 즐길 뿐 전문적인 글을 써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막상 글이 나오니 뜻밖에 반응이 좋았어요. 그렇게 1년 반 정도 연재했는데요, 친한 선배님 중 유독 제 글을 좋아해 주는 분이 있었어요. ‘이거 꼭 책으로 내라’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사실 시큰둥했죠. 그랬더니 하루는 출판사 편집장까지 대동해 저를 찾아오셨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결국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선배님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네요(웃음).

네,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어요. 제가 워낙 게으른 탓에(웃음). 하지만 어느 날 그 선배님이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슬픈 내색도 하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사실 당시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하면 1년은 더 살 수 있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치료를 받은 다음 날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 세상을 떠나게 되셨어요. 그게 지난 7월이었습니다. 살아생전 선배님이 농담 삼아 ‘그래도 내가 항암 치료를 받으면 네 책은 보고 가겠구나’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마치 제게 남긴 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더 집중해 책을 집필하게 됐죠.

그렇게 나온 책 소개를 좀 해주세요.

사실 이미 시중에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책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대개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너무 어렵게 쓰인 거예요. 작곡가가 누구고, 몇 년에 어디서 만들었으며 하는 정보부터 나열하니 더 다가가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최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 4번 음반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의 지휘로 연주된 이 음반은 파리의 한 레코드숍에서 산 것인데요, 처음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와, 이런 연주가 있구나’ 싶었죠. 그런데 이후 우연히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음악가를 꼽아 달라는 어느 일간지 기자의 질문에 베토벤, 쇼팽, 브람스와 더불어 클라이버를 꼽은 기사를 봤어요. 무척 흥미로웠죠. 저의 ‘최애’ 지휘자를 조성진도 좋아한다니. 책에는 주로 이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딱딱한 음악 정보만 담는 게 아니라 제 경험 혹은 영화나 문학처럼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낄만한 이야기를 함께 녹여내 클래식과 좀 더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했죠.

사진 중앙에 붉은 색 커버 LP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4번 음반이다. 사진: 김정한

저 같은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팁도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글쎄요. 처음부터 교향곡 모든 악장을 마스터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느 곡이든 좋으니 딱 하나만 골라 적어도 30번 이상 반복해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클래식은 친해지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장르에요.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여 한 곡, 두 곡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훨씬 듣기가 편해질 겁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면, 음악의 배경, 즉 작곡가나 음악에 얽힌 사연을 알고 들어 보기를 바랍니다.

에덴낙원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어떻게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사실 에덴낙원을 안지는 꽤 되었어요. 이곳을 설계한 최시영 디자이너가 제 오랜 지인이거든요. 그래서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카톡으로 사진도 공유해주고 그랬어요. 흥미롭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사실 그게 다였죠. 보통 ‘봉안당을 꼭 가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웃음). 그런데 이후 한 일간지에 에덴낙원에 관한 기사가 큼지막하게 났는데, 알고 보니 그게 제 조카며느리가 쓴 글이더군요. 심지어 여기를 보고 너무 좋아서 자기 시아버지, 다시 말해 저희 형을 모시고 와 멤버십에 가입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조금 더 솔깃했죠.

사진: 김정한

흥미로운 인연이네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제 휴대폰으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받아보니 이곳 에덴파라다이스호텔의 전 대표님이었어요. 이분이 평소 클래식에 관심이 많아 양평에 한 음악감상실을 들른 적이 있는데, 마침 그곳이 제 후배가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클래식을 좀 체계적으로 알고 들을 수 있는 강의를 열고 싶은데 혹시 강사로 와줄 수 있냐고 후배에게 제안했는데 그가 저를 추천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만남이 성사되어 이곳 에덴낙원에서 클래식 음악 클래스를 열었어요. 지금은 코로나 19로 중단된 상황이지만. 이 정도면 꽤 깊은 인연이죠?(웃음)

그렇다면 에덴낙원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도 있나요?

다 좋은 공간이지만 하나만 선택하라면 정원을 꼽고 싶네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라는 점이 에덴낙원의 가장 큰 매력 같아요. 사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볼 수 있으니까요. 마침 집도 가까워 봄, 여름, 가을에는 늘 이곳을 찾았는데 올해는 눈 덮인 에덴낙원의 가든도 한번 보고 싶군요.

에덴힐 폰드에서. 사진: 김정한

에덴낙원의 봉안단에는 고인이 생전 사모했던 성경구절을 새길 수 있는데요, 선생님이라면 어떤 구절을 새기고 싶으신가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베드로전서 1:24)을 넣고 싶군요. 카톨릭에는 죽은 자를 위한 미사 음악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레퀴엠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보통 이 레퀴엠의 가사는 카톨릭의 전례를 따르는데요, 브람스가 작곡한 ‘도이치 레퀴엠’은 좀 독특합니다. 그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독일어 성경 구절을 따와 가사를 붙였어요. 거기에 나오는 성경 구절이 바로 베드로전서 1장 24절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년 에덴 미디어와 함께할 새 연재에 관해 소개 바랍니다.

매달 다양한 주제로 묶인 클래식 음악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클래식은 그 역사만큼 그 수도, 테마도 무궁무진해요. 독자 여러분이 이 매력적인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돕는 글을 쓰려고 하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웃음).

최명환 에덴미디어 편집장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미학을 공부했다. 다년간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칼럼니스트, 브랜드 기획자 등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 <에덴 미디어>의 초대 편집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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